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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May 07. 2022

자그레브에서 리예카

크로아티아 여행, 셋째 날

제렁이는 오버부킹에 아주 치를 떨었는지 가는 길을 서둘렀다. 

버스 타기 전에 슈퍼에 들러서 물과 간식거리를 샀다. 

맛있어 보이는 것과 신기한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신기한 걸 고르는 편인데, 그 모험이 엿을 먹이는 경우도 꽤 많지만 의외로 성공할 때도 많다. 오히려 성공하면 김 빠지는 이상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먼치멜로(Munch mellow)라는 동글동글 귀여운 과자를 골라 들었다. 물방울 같이 생긴 마쉬멜로우에 바닥에는 과자, 겉에는 초코 코팅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세르비아의 국민 간식이고, 초코파이 같은 거라고. 많이 달긴 했지만 맛있었다. 마시멜로우가 도톰해서 초코파이가 채워주지 못하는 그 마시멜로우 지수를 채워준달까. 



버스가 휴게소에 들른 참에 하나 까먹으려고 꺼내다가 옆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권했는데,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거절해놓고 본인의 프레첼 과자를 뜯었을 때는 아주 공격적으로 권하였다. 한두 개씩 몇 차례 집어먹다 나 이제 진짜 괜찮아!라고 해도 거듭 권하셨다는. 위장 깨끗이 비워서 리예카 도착한 다음 해산물 요리로 꽉 채워야 한다고요. 


헝가리는 내륙이라서 해산물 요리가 흔하지 않다. 육가공품이 발달해 온갖 종류의 베이컨이며 소시지가 넘쳐 나지만 이제 슬슬 지쳐 가던 때였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해산물을 잘 안 사 먹게 되었는데 생선구이를 좋아하던 엄마에게 그건 꽤나 슬픈 일이었나 보다. 아직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바닷가 지역에 살았다. 언젠가 엄마는 어째서인지 꽁치 구이에 꽂혀서 일주일 내내 꽁치를 엄청나게 구워대었다. 심지어 인당 한 마리였다. 꽁치가 너무나도 싸서였는지 엄마가 사실은 꽁치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꽁치에 신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물론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특별히 해산물을 좋아한다고 느끼진 못했는데 헝가리의 강력한 육가공품+심이 섬유 부족의 어택을 받고 해산물! 깔라마리! 생선! 을 외쳐대며 리예카에 내렸다. 


도착하기 직전, 돌 언덕 위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버스가 달리고, 빨간 지붕의 집들이 점점이 보이고, 산 너머로 퍼런 바다가 드러나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자고 있는 제렁이를 깨우고 열심히 영상을 찍었는데 역시나 그때의 감동이 핸드폰에 남아있지는 않았다. 



리예카는 항구도시답게 부산에서 볼 법한 커다란 기계며 보트들이 줄줄이 떠있었다. 

화창한 날씨와 파란 바다, 하얀 보트들, 노랗거나 베이지색인 오래된 건물들이 쏟아지듯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유명한 시장이 있다길래 걸어가면서 구경하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야채들이 있는데 헝가리에서는 대체 왜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는 거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렁이가 버스에서 찾은 로컬 해산물 맛집을 찾아다녔다. 걷는 길에 본 야외에 나와 있는 테이블과 그 위에 깔린 흰색, 빨간색의 체크 식탁보마저도 너무나 바다 마을 같았다. 

그곳은 수산물 시장이었는데, 장 보러 온다기보다는 납품을 하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리 찾아도 구글맵이 알려준 곳에 식당 비슷한 게 없어서 오는 길에 보았던 다른 식당에 앉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먹물 리조또와 씨 배스 구이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뭔가 활기차고 친절하고 바빠서 계속 가게와 바깥 테이블을 통통 거리며 오갔다. 생선구이를 주문할 때 사이드 디쉬, 야채 좋아하면 어쩌고 하더니 큼직한 생선과 함께 시금치와 삶은 감자를 으깨서 섞어놓은 요리가 곁들여 나왔다. 처음 보는 시금치 요리였는데, 그때 이후로 이틀 동안 모든 해산물 요리에 같이 나와서 이제는 정이 들었다. 목 막히는 감자튀김은 여행 내내 입에도 대지 않고, 사이드 디쉬를 고르라면 무조면 시금치를 외쳤다. 




매쉬드 포테이토보다 훨씬 가볍고 올리브 오일의 향이 나는 부드러운 요리이다. 

접시를 깨끗이 싹싹 비우고 식전 빵도 올리브 오일에 소금 살짝 뿌려 다 먹어 치우고는 식당을 나섰다. 원래는 동네라도 살살 둘러보려 했는데, 갑자기 사람이 많아진 바람에 계산서를 달라고 아무리 쳐다봐도 오지 않아서 버스시간이 다 되어 버렸다. 아쉽지만 다시 터미널로 가 크르크로 가는 버스를 탔다. 1시간이면 크르크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섬에 들어갈 때의 풍경이 참 예뻤다. 바다는 어디든 각각 다른 색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안 가본 다른 바다들도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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