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걱정하세요, 그냥 읽으세요

독서는 당신의 지성을 가꿔줄 것입니다

by 비터스윗


책은 늘 가까이에 있다


"누구세요?"

"책 왔습니다!"

아버지가 또 책을 사셨나 보다. 인쇄가 화려한 전집류의 여러 묶음이 도착했다.

어머니는 "이 양반이 또 샀네, 또." 하시며 책장 앞에 옮겨놓는다. 책으로 가득 차 책장에 빈칸이 없다.

아버지는 근사한 서재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셋, 할머니까지 여섯 식구에 이모, 고모 등 늘 집에 객식구가 많았던 우리 집에 남아 있는 방은 없었다.

신문기자셨던 아버지는 스스로 어릴 때부터 문학소년이었다고 말씀하셨고 돌아가신 큰아버지도 문학 전공이셨다.

하루 종일 활자와 씨름하셨을 텐데 아버지는 퇴근 후에도책을 탐독하셨다.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던 소녀


책벌레까진 아니어도 나도 책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주문했던 예전 전집들은 책갑(slip case)에 한 권씩 들어가 있었다. 나는 거실 책장에 있는 한국 근현대 문학, 역사책 등을 한 권씩 꺼내 읽어보고 조심스레 다시 책갑에 끼워 넣어 두곤 했다.

돌잡이 때 연필을 잡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기억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내겐 학업이 늘 우선순위였던 까닭에 숙제를 다하고 문제집도 다 풀고 난 후에 시간이 남으면 책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용돈을 모아 학교 앞 서점에서 샀던 책들은 영미 소설, 프랑스 소설 등 번역 소설이었다. 내 기억에 그 당시 서점에는 외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重譯)한 문고판이 대부분이었다. 제목도 일본어 번역 그대로 가져왔다. '소공녀(小公女)', '삼총사(三銃士)', '암굴왕(몬테크리스토 백작, 巌窟王)' 등등. 그 외 '좁은문', '데미안', '제인 에어', '키다리 아저씨', 한국 근현대 소설로 '김약국의 딸들',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이 내 성장기와 함께 한 책들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고, 외국 문학을 전공해서 자연스럽게 교재로 원서를 읽었다. 그때부터 내 서가는 전공 서적, ㅇㅇ학 개론 같은 교양 과목 교재, 사회과학 서적들로 다양하게 채워졌다.

결혼 후 나의 독서량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 집 책장은 이제 아이들이 채웠다. 큰 애가 좋아하는 과학책들, 둘째가 좋아하는 소설들 그리고 아버지처럼 내가 산 전집들이 빠르게 들어찼다.


책에서 위안을 얻은 나


10여 년 전 막막한 시간이 있었다. 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은 이어지고 낮에는 불안, 밤에는 불면이 번갈아 나를 괴롭혔다.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였기에 오직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과 걱정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지만 기분을 풀기 위해 돈을 쓸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때 책을 펼쳤다.

먼저 집에 있는 책들을 읽고, 서점으로 갔다. 중고책방에서도 사고 가끔은 두세 권의 새책으로 기분전환을 했다.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는 것보다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도서관으로 갔다. 친구가 도서관을 추천해 주었던 까닭이다. 당연히 지역 주민이면 시립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대여할 수 있다. 최근엔 '상호대차제도'가 잘 돼있어서 내가 원하는 책이 가까운 도서관에 대출 중이면 멀리 있는 도서관에서 내가 지정한 도서관으로 친절히 가져다준다.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었다. 침대에서도 식탁에서도 소파에서도 책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읽었던 책 목록과 나름의 평점을 적어두었는데, 사라진 기록 대신 내 기억에 의존해 보면 7개월 동안 80 여권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많이 읽을 때는 일주일에 세 권도 읽었는데 단편집과 짧은 소설 등은 하루에 한 권도 읽을만했다.

책에 집중하니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갈등하고 때로는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도 하고, 소세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고양이'가 되어 사람들을 탐구하기도 했다. (소세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국적,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번아웃 되었던 나는 꺼져가던 불씨가 점차 살아나듯 자존감을 회복했다.


잃어버린 취미를 찾아서


우울한 중년들이 많다. 중년뿐인가, 전 세대에 걸쳐 우울한 이들은 정말 많다. 부디 이 글은 시간이 많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도 우울해하는 중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호황기는 지났고 몇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중년들의 통장 잔고는 빠듯해졌다. 그래도 SNS를 보면 어디를 그렇게들 돌아다니는지. 온통 여행사진 밖에는 없다. (원래 SNS는 그런 용도다. '누가 누가 잘 나가나')

실상을 보면 지인들과 여행 경비로 착실히 적립했던 적금, 동창회나 동호회에 모아두었던 회비를 충당해서 가는 것이거나 나만의 버킷리스트 달성을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기도 하다. 누릴만하다.

하지만 여행도 몇 번 다녀오면 심드렁해진다. 제대로 취미를 하나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 건강을 위해 운동으로 눈을 돌려 본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겐 골프가, 언제든지 또 멀리 안 가도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테니스나 탁구가 인기다. 이 정도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용으로 취미를 유지하면 좋을 것이다.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말이다.

평생 꼭 배우고 싶었던 악기를 배우는 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다소 저렴한 비용으로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하면서 레슨도 가능하고 연습도 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더불어 동호회 회원들과의 친목도모가 꾸준히 이어지니 적당히 시간을 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귀찮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소박한 밥상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게 즐거움인 이들도 있다. 건강히 오래오래 만나자며 술잔을 부딪치는 아이러니(?)를 감수하면서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특별히 견인하는 요소나 리더가 없으면 이런 모임은 갈수록 줄어들기 마련이고 또 그마저도 담이 되는 이들은 하나둘씩 빠지기도 한다.


독서, 지성을 가꾸는 소박한 취미

내돈내산을 추구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에 1만 원~2만 원 정도, 많아야 한 달에 5~6만 원 정도 지불하는 취미. 아니 내가 직접 걸어가서 빌린다면 교통비조차 들지 않는 취미. 이런 소박한 취미가 무얼까? 바로 독서다.

언제부턴가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독서는 평소에 늘 하는 것이지, 취미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이들은 눈뜨자마자 책을 펼치고 밥먹듯이 책을 읽나 보다.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고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책을 읽고. 그런데 왜 카페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을까.

너무 평범해서 취미라고 내세우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나의 인격이 좀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취미를 찾는다면 독서만 한 것이 있을까.

독서는 지성을 '가꾸는(cultivate)'방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상상력이 무한히 확장되며, 어휘도 풍부해진다. 이해력과 사고력도 높아진다. 요즘 말하는 '생각하는 근육'이 발달한다.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하나가 '품위 유지비'다. 품위유지를 위해 드는 비용으로 나이 들어서도 품위유지비를 적잖이 지출해야 한다는 뉴스를 자주 보게 된다.

(일부 지자체에서 어르신들께 지급하고 있는 품위유지비는 '이·미용 서비스와 목욕 시설 이용비'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의류구입비, 미용비, 경조사비, 각종 회비까지 대략 불요불급한 비용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러면 품위가 뭐지? 이미 품위를 넉넉히 갖추고 있어야 품위유지를 하는 게 아닌가.

주름 없는 얼굴, 골프 타수,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개수, SNS 팔로워 숫자,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이런 것이 품위의 척도는 아닐 텐데.


일단 휴대폰은 내려놓고 책을 한 권 찾아 펼친다. 이 책을 언제까지 읽을지 계획을 세워보는 거다. 말끔한 새 책은 동기 부여가 되지만 일단 집에 있는 책을 먼저 읽고, 탄력이 붙으면 새로운 책도 사보고 도서관에서도 빌려서 보고 내친김에 지인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로 쫓기는 걸 싫어해서 스터디그룹 말고는 독서모임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지만 약간의 강제성을 좋아하는 이들은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런 후에 리뷰코너든 SNS든 감상문을 써서 올리는 거다. 아니면 일기에 써도 되고 나만 보는 블로그에 올려도 좋다. 길게 쓸 필요는 없고 짧게 그때의 느낌을 써 보는 습관은 중요하다.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은 과부하 혹은 소화불량을 부른다.


현재는 우울하고 미래는 불안하고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은 그만하고 먼저 책을 읽자. 읽으면서 답을 찾아도 된다.

품위는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엉뚱한 데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