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나의 500만 원짜리 무모함이 가르쳐준 것

by 이상기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살까 말까 할 때는 사라. 그 돈과 시간만큼의 자산을 남기면 된다."


3년 넘게 내 책장을 지키고 있는 책, 《아무튼, 달리기》를 다시 꺼내 읽다 멈춰 선 문장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고등학생 시절 윤리 시간에 들었던 "인생은 갈등과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고민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늘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원한다. 누군가는 효율성을, 누군가는 시간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나 역시 매 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려 애쓰지만, 돌아보면 결과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과감했고, 결과적으로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최고의 선택'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스무 살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일이다.


내 인생의 게임 체인저를 만나다

19살, 수험생활의 번아웃이 극에 달했을 때 김희경 작가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만났다. 동생을 잃은 슬픔을 안고 걷는 순례길, 그 위에서 만난 인연들과 깨달음. 그 글은 좁은 교실에 갇혀 있던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

당시 나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한 길 위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상당히 매혹적이게 느껴졌다. 그곳에서라면 내 인생의 향방을 바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미성년자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는 바로 다음 해인 스무 살 여름이었다.


넘어야 할 네 가지 장벽

목표는 정했지만, 현실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에겐 네 가지가 없었다.

첫째, 해외여행 경험이 없었다. 단체로 다녀온 일본 여행이 전부였다. 둘째, 언어가 문제였다. 스페인어는커녕, 공용어인 영어조차 수능 6등급의 '울렁증' 수준이었다. 셋째, 체력이었다. 800km를 매일 20~30km씩 한 달간 걸어야 하는데, 내 운동량은 체육 시간 축구가 전부였다.

마지막이자 가장 큰 벽은 경비였다.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고, 부모님은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며 대학 첫 학기 등록금 외에는 지원이 없다고 못 박으셨다. 사회 경험도 없는 스무 살이 혼자서 유럽으로 떠난다는 건,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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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는 방법을 찾아낸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내 의지뿐이었다.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간절히 마음을 먹으니 안 될 것 같던 일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정보와 언어: 커뮤니티를 뒤져 정보를 모았고, 수능 직후부터 EBS로 스페인어 독학을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엔 바늘구멍 같은 스페인어 교양 강의를 뚫어내며 기초를 다졌다.

체력: 부족한 체력은 철저한 준비물 다이어트로 보충했다. 비누 무게마저 줄이려 종이비누를 챙길 정도로 악착같이 짐을 줄였다.

경비: 가장 치열했던 부분이다. 어릴 적 세뱃돈과 입학 축하금을 털어 100만 원을 만들었다. 등록금이 싼 지방 국립대에 진학해 부모님이 주신 등록금 차액 200만 원을 확보했고,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 100만 원을 보탰다. 여기에 학자금 생활비 대출 100만 원을 더해 총 500만 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예산의 한계로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정식 루트는 포기해야 했지만, 나는 타협안을 찾았다. 시작점을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로 조정해 일정을 맞췄다. 그렇게 나의 첫 순례길은 무모함으로 시작해 담대함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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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의 96%는 쓸데없다

그때의 경험은 내 인생 전반에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못 할 게 뭐야?"라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심어주었다.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96%는 쓸데없는 것이다.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사소한 고민, 4%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은 단 4%뿐이다.

망설여지는가? 일단 시작해 보라. 시작하는 순간,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문제들은 '해결 가능한 과제'로 바뀌기 시작한다. 해결 불가능한 일은 적절한 타협안을 찾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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