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찾아서

불안을 양분삼아 살아온 또 다른 자아를 위로하며

by 이상기
“저는 커서 OOO(본명)가 될 거예요!”


세상이 뭔지, 사람이 뭔지, 돈이 뭔지 모르던 어린 시절. 누군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내가 내놓은 대답이다. 어린 녀석이 당돌하게도 철학적인 대답을 내놓았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남들과 다르고 싶어 던진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추구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꿈이 뭐냐는 질문에 누구보다 소박하게 답하곤 했다. “그냥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어른이 된 지금(여전히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낯설지만), 나는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고민하곤 한다. 이제는 내 삶의 궤적이 어느 정도 그려졌고, 그간 내가 했던 말들과 살아온 시간들이 어우러져 어릴 적 그 대답의 윤곽을 조금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다던 바람과 달리,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성공을 향해 달렸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선택해 왔다. 집안 형편과는 무관하게 ‘자사고’라는 이름의, 소위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이 모이는 기숙사 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내내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들만 골라 했다. 남들이 자정까지 공부할 때, 나는 잠이 중요하다는 강박에 빠져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과학 탐구 과목도 물리, 화학, 생물처럼 평범한 선택지를 거부하고, 학교에 수업조차 개설되지 않은 과목을 골라 들을 정도였다. 그때 선택한 ‘지구과학’ 때문에 천문학자를 꿈꿨고, 결국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기상학을 전공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도 기후변화는 장래가 유망한 분야라고들 했다(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야는 여전히 장래‘만’ 유망하다).

그 고집은 대학 입시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오로지 기상학과 관련된 전공만을 고집했다. 당시 대기과학과는 전국 국립대에나 겨우 있었고, 서울엔 이름 들어본 사립대 단 한 곳뿐이었다. 공대를 선택했다면 훨씬 수월하게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겠지만, 나는 대기과학이 아니면 안 된다며 항공대와 대기과학과만 골라 쓰는 처참한 입시 전략을 고수했다. 결국 일부 장학금을 주겠다는 수도권 대학 대신, 전액 장학금을 제안한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대기과학을 공부하게 됐으면 거기에 만족할 법도 한데, 대학에 가자마자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군 문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인 결정이었다. ‘운항관리사’가 대기과학 전공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 판단했고, 그 직업의 핵심 전공인 항공우주공학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기상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면 완벽한 커리어가 될 거라는 설계까지 마쳤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가장이 되기 위한 노력치곤 참 과했다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사정으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기숙사를 유지하기 위해 지독하게 공부했다. 방학에는 다음 학기 과목을 예습하고, 학기 중엔 시험 기간과 무관하게 도서관을 안식처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공부벌레로 보이기 싫어 동아리를 만들고, 발표를 잘하고 싶어 세미나를 찾아다녔다. 순례길에서 맛본 걷기 여행의 매력에 빠져 국토대장정을 다녀오고, 그 경험으로 공모전에도 나갔다.

공부 쪽도 지독했다. 공대 복수전공을 하다 보니 졸업 학점은 이미 기준을 훌쩍 넘겼고, 조기 졸업을 하겠다며 살얼음판 같은 학기를 보냈다. 조기 졸업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학과 사무실 조교님은 “복수전공자가 8학기 만에 졸업한 사례도 없는데, 공대 복수전공은 아예 불가능하다.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내 반골 기질을 건드렸다. ‘두고 봐라, 내가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고 조기 졸업까지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 인생은 평범한 가장과는 거리가 먼, 성공의 욕망에 충실하며 밖에서 보기엔 완벽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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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졸업을 1년 남긴 시점, 다시 진로 고민이 시작됐다. 대기과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으로. 눈을 돌렸다. 전문연구요원으로 박사 학위와 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옵션도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이미 내가 도파민에 절여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기왕 대학원에 갈 거라면 더 좋은 학교로 가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국 4학년 여름, 서울의 한 대학원 인턴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입학했고, 5년 전쯤 마침내 박사 학위까지 마무리했다.

이 여정 속에서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고, 순례길을 다시 걷고, 겨울 도보 여행을 다니는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기억들을 떠올려보니, 내 인생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편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이름의 한자는 편안함을 의미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대로 편안하게 살고자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누구보다 불편하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절여진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이상함을 느낀 건 박사 학위를 마친 뒤였다. 초등학교부터 박사 졸업까지 총 6번의 졸업식을 치렀다. 나는 단 한 순간도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 어떤 졸업식에서도 기쁘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그 순간에도 늘 다음에 할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박사 학위 졸업보다 최근 블로그 애드포스트 승인을 받았을 때가 더 기뻤던 것 같다.

박사 학위까지의 과정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족시키거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수행한 과제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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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한 뒤, 균형을 맞추다

질 볼트 테일러의 저서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에 따르면, 우리 뇌에는 네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좌뇌와 우뇌에 각각 논리형과 감정형 자아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들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주도권을 쥔 자아가 다른데, 나의 경우 ‘좌뇌 논리형’ 자아가 내 인생의 독재자로 군림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좌뇌의 두 자아는 각각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내 라운드 테이블의 주인공은 항상 미래의 불안을 기반으로 나를 채찍질하는 이 녀석이었다.

반면 우뇌의 두 자아는 어떤가. 하나는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한 어린아이 같은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만물과의 균형을 중시하며 평온함을 유지하는 범우주적 존재 같은 자아다. 내 인생에서 이 두 녀석은 의사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아니,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얘네가 등장하면 일을 그르칠 거라 생각하며 마음 속 깊은 구석에 가둬두었을 뿐이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은 좌뇌 논리형이 주도했고, 가끔 좌뇌 감정형 친구 목줄에 묶인 채 조언을 건네는 정도였다.

많은 심리학 책이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말한다.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에는 내 정서적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인다. 그 뒤로 결국 과거의 성공 패턴, 나 같은 경우 나를 갈아 넣어 인정받는 방식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뇌과학 책은 조금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네 자아를 모두 라운드 테이블에 불러 모으고 각자의 발언권을 보장해주라는 것이다. 누구도 다른 자아의 말을 막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이 네 자아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중 우뇌 논리형, 즉 범우주적 평온함을 지닌 자아의 이름이 바로 ‘이상기’다. 나는 내면의 회의를 시작하며 사회자 자리를 ‘상기’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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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회의를 시작하자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불안’과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만 모든 결정을 내려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평범한 가장을 꿈꿨던 어린 소년은 어느덧 인정 욕구에 사로잡혀 자신을 갉아먹는 악마가 되어 30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존재를 악마라 부르지 않는다. 그 자아 역시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오기 위해 총대를 메고 고군분투했던 소중한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네 자아 중 그 누구도 나를 해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여태껏 나를 지켜준 그 친구에게 이제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간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라운드 테이블에서 그의 역할을 ‘참여자 1’로 조정해주었다. 대신 30년 동안 목줄에 묶여 있던 좌뇌 친구를 풀어주었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우뇌 친구들을 밝은 테이블로 안내했다. 너무나 작아져 있던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발언권을 주었다. 그리고 부처 같은 나의 ‘상기’에게 테이블을 주도할 사회자 직책을 맡겼다.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네 친구야,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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