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의 신화 너머

상처투성이 용이 바다로 간 까닭

by 이상기
“개천에서 용 난다”


어릴 적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20대 중반까지도 믿었던 것 같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성실과 열정만으로 성공을 이루어내는 자수성가 이야기. 그 끝은 늘 해피엔딩이라 믿으며, 나 또한 개천에서 날아오를 용이 되리라 다짐했다.


용은 오직 개천에서만 나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이 믿음은 점차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고생 끝에 얻은 성공만이 ‘진짜 성공’이며, 좋은 환경에서 쉽게 얻은 성공은 ‘반칙’이라 치부하게 된 것이다. 내게는 자수성가만이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였고, 드넓은 바다에서 태어난 용은 용이 아닌 그저 배부른 이무기일 뿐이라 굳게 믿었다.

이러한 비뚤어진 신념 덕분에 얻은 것이 있다면, 그건 지독한 생존력이었다. 이 생존력은 학창 시절 유일한 성공 지표였던 성적을 올리는 데 나를 몰아붙였고, 공부 외의 웬만한 난관들도 악바리처럼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방의 한 기숙사형 자사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17살 어린 나이에 집과 멀리 떨어져, 군대보다 더 집에 가기 힘든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이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나는 물리적인 안식처뿐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마저 잃어버렸다. 가족들은 새로운 터전에 자리 잡느라, 또 당시 고3이던 형을 뒷바라지하느라 내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사고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곳 친구들은 대부분 ‘개천’이 아닌 ‘바다’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교육 지원을 받으며 중학생 때부터 외고, 과고 입시를 준비해 온 친구들이 많았다. 고1 입학 당시, 이미 수능 외국어영역 만점을 받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6등급 성적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을 보며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공부 투자는 기본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까지 ‘플러스알파’로 누리는 친구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그들 틈에서 매 순간 가랑이가 찢어지는 듯한 버거움을 느꼈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형편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바다에서 온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개천도 아닌 작은 물웅덩이에서 용이 되겠다고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 친구들은 그런 나를 가엾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좌절했는가? 아니, 절대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개천 용’ 신화에 더 강력하게 나를 결박했다. “바다에서 태어난 게 무슨 용이야? 그냥 배부른 이무기지.” 나는 그렇게 그들을 비웃으며 버텼다. 자사고 3년은 내가 용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쩌면 나는 영영 미꾸라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씨앗을 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의심이라는 이름의 싹이 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이 지난 시점, 박사 과정 1년 차 무렵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바로 고3 수험생들의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지도하는 컨설팅이었다. 매해 가을마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이 일을 무려 7년 가까이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내 안에 심어진 의심의 씨앗을 싹 틔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학부모들은 자기소개서 및 면접 컨설팅에 상상 이상의 큰돈을 지불했다. ‘내가 부모라도 합격 확률을 1%라도 높이기 위해 이 큰돈을 쓸까?’ 싶을 정도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컨설팅 자리는 매년 가을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치열했다.

일을 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컨설팅의 유무가 대학 합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3 학생들은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시간도 여력도 없다. 그들이 처음 들고 오는 자기소개서 초안은 교수님들 눈에는 그저 어린애의 낙서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볼품없는 초안이라도 전문가의 가이드가 더해지면 글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직접 써주지 않고 2~3번의 피드백과 방향성 제시만으로도 ‘읽기 힘든 글’이 ‘읽을 만한 글’로 바뀐다. 코딩으로 치면 0과 1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한 변화다.

컨설팅 유무에 따른 정확한 합격률 데이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 자기소개서의 퀄리티 차이는 확실했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바다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훨씬 수월하게 용이 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신념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과연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하는 걸까?


'노오력' 신화를 걷어내며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능력주의와 재능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던진다. 흔히 재능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능력 있는 자가 성공한다”는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마치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처럼,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개인의 ‘노오력’만 있다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교묘한 함정이 있다. 우연히 주어진 ‘재능’(운, 환경)과 개인의 의지인 ‘노력’이 뒤섞여 하나의 ‘능력’으로 퉁쳐진다는 점이다. 그 결과 누군가가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그것을 단순히 ‘능력 부족’이라 칭하며, 그것이 재능의 부재인지 노력의 부족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오해 속에서 성공한 사람은 그 성공을 오롯이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 여기고, 실패한 사람은 재능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닌 오직 ‘노력 부족’이라 자책하게 된다. 이 함정이 현대인에게 끝없는 불안과 자기 비하를 만들어낸다.

나의 컨설팅 경험에 비추어보자. 똑같은 노력을 기울인 두 학생이 있다. 한 명은 고액 컨설팅을 받았고(주어진 환경), 다른 한 명은 받지 못했다. 전자가 합격하고 후자가 불합격했다면, 전자는 자신의 노력으로 합격했다고 믿을 것이고, 후자는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노력이 부족했다’는 질타를 받을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문제다. 만약 후자의 학생이 합격한다면,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며 또다시 노력 신화를 찬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학생은 애초에 재능이 뛰어났거나, 남들보다 몇 배의 피나는 노력을 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컨설팅을 받을 재력이 있는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재능까지 물려주었을 확률이 더 높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는 ‘개천에서 난 용’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다만 바다에서 유유자적 자란 용보다 크기도 작고 여의주도 없으며, 비늘 여기저기가 뜯겨나간 상처투성이 용이라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내 모습을 훈장처럼 여기며, 개천에 남은 미꾸라지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해왔다. “너희도 노오력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개천 위를 힘겹게 날아다니는 용이 아니라, 좁은 민물을 지나 넓은 바다로 나아간 자유로운 ‘바닷장어’로 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노력만 하면 다 된다”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성공한다 한들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딱 하나, 지금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것이다.


당신의 실패는 오롯이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니 부디,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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