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3 아사히신문 사설을 읽고
일본인들은 대체로 섬세한 편이다. 이들과 함께 살아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폐를 끼치지 않는 것(迷惑かけない)에 대한 가정교육이 시작된다. 일례로 나는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내가 먹을 과자를 챙겨 가곤 했다. 나에게는 친구와 약속한 방문이지만 친구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방문일 수 있기 때문에 간식 준비로 신경 쓰지 않도록 나의 부모가 상대측 부모를 배려하는 문화였다. 그 시절에는 휴대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엄마, 나 오늘 학교 끝나고 친구랑 같이 집에서 놀 거야"라고 미리 전달하지 못하는 시절이었으니까. 늘 배려하고 조심하는 문화. 지하철에서도 웬만하면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사적인 통화도 하지 않는다. 지금 지하철이나 버스 안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면 상대가 바로 수긍하는 나라.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동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 그들만의 문화인 것이다.
통번역사로 일하는 나는 아침 일과로 일본신문 사설면을 읽는다. 논설위원들의 글을 통해 표현을 익히기도 하지만 오늘의 이슈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부터는 그 내용들 중 기록해 둘 만한 내용들을 적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11.3자 아사히신문 사설 제목은 「共生社会と政治 豊かな関係 育む先頭に」. "공생사회와 정치, 풍요로운 관계 만들기에 앞장서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사설의 내용은 갓 출범한 다카이치 정부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이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국적과 상관없이,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서로의 인권과 존엄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를 지지하며 활기 있는 삶을 영유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글이었다. '공생사회'라는 말은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선 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오히려 '상생'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두 표현 모두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11.15~26 기간에 데플림픽(Deaflympics)이 개최된다. 데플림픽이란, IOC의 승인을 받아 국제 청각 장애인 스포츠 위원회가 주최하는 청각 장애인이 참가하는 세계 스포츠 대회이다. 1924년부터 시작되었고 일본에서는 최초로 개최된다. 이 사설에서는 동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가 남긴 말을 인용했다. "'공생사회'라는 말은 실은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말이에요. 주변에 다양한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저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살 인권이 있어요" 이미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니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상대방과 내가 같은 인권을 존중받는 존재임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수화기 너머로 이런 멘트를 듣게 되었다. "수화기 너머에 존재하는 상대방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아진 사회를 살고 있음을 느낀다.
혹시 데플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곧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나는 몰랐다. 관심이 없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알든 모르든 이 대회는 192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존재해 왔다. 모를 수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알아차리는 힘(気づく力)'이 필요하다는 논설위원의 글에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미 '알아차리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는 비단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을 걷다가 문득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허물어진 건물을 보며 어느 가게가 문을 닫았는지 알아차리기도 한다. 대화를 나누다가 순간 찡그리는 상대의 표정을 보고 어딘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늘 정해진 시간에 마주치던 이웃집 어르신이 보이지 않자 '무슨 일 있나?' 하고 변화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고독사를 막거나 알리는 일도 있다. SNS를 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연락한 누군가의 행동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알아차리는 힘에는 주변을 향한 관심이 수반된다.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그제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차린 사람에 의해 "우리,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무브먼트가 시작된다. 그러한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어느새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의 '알아차리는 힘'이 건강한 방향으로 발휘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