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04 도쿄, 11.06 닛케이신문을 읽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질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내 말과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끝까지 감당하려 애쓸 때,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직 어린아이가 어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행동할 때면 부모는 마음 아파한다. 아이는 원래 천진난만하게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존재인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듯한 모습이 미안한 탓일 것이다.
최근 며칠간 읽은 일본 신문 사설에서 두 가지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しわ寄せ와 棚上げ다. 두 단어 모두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논조에서 사용되었다.
しわ寄せ : 어떤 일의 여파가 미치다
천에 주름(しわ)이 잡히듯, 사회의 한쪽이 구겨지면 그 주름은 다른 쪽으로 번져간다. 도쿄신문(11월 4일 자)은 2024년 교수-학습국제조사(TALIS) 결과를 인용하며, 일본 교사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長時間労働で教員が疲弊すればそのしわ寄せは子供たちに及ぶ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 장시간 근무로 인해 교사가 피폐해지면 그 여파는 아이들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 현장의 부담이 교사에게 집중될 때, 그 주름은 결국 아이들에게 옮겨간다는 뜻이다. 올해 일본은 교사의 업무량을 경감하는 법을 개정했지만, 교직원 수가 늘지 않으면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책임의 균형이 무너질 때 생기는 '주름'을 펴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棚上げ:자신에게 불리한 상황, 잘못 등을 못 본 체하거나 언급하지 않는 모습
두 번째 키워드인 '棚上げ'는 직역하면 '선반 위에 올려두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다루기 불편한 문제를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올려둔다는 뉘앙스가 있다. 닛케이신문(11월 6일 자)은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회 질의를 다루며 이 표현을 썼다.
首相は財政の持続可能性とマーケットの信頼を確保しながら政策を具体化すると述べたが、財源を棚上げして「責任ある」と言えるだろうか。
: 총리는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며 정책을 구체화해나가겠다고 했으나, 재원을 선반 위에 올려둔 채(확보방안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면) 과연 '책임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주장하는 '책임 있는 적극재정(責任ある積極財政)'과 관련하여, 정책의 방향은 제시하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을 회피하는 모습을 꼬집은 문장이다. 사설은 총리뿐 아니라 야당 또한 자신들의 정책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임을 선반 위에 올려두려는 태도가 여야 모두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고, 누군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 있다면 그만큼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책임을 다하기로 약속했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서로를 탓하기 전에,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만큼 책임을 지려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주름을 펴고, 선반 위의 책임을 다시 내려놓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몫을 감당하며 책임을 미루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조각보처럼 이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