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는 아닙니다만

운동 가르치는 사람의 지나가는 환경 생각.

by 서울체육샘

'월든'이라는 책이 있다. 미국의 월든 호수 근처에 2년 2개월간 오두막 하나를 짓고 살았던 '소로'라는 작가가 쓴 책이다. 작은 오두막에서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으로 입고 자연을 벗으로 살았던 소로의 생각이 담겨 있는 이 책은 후대에 자연주의, 채식주의, 미니멀리즘, 환경보호 등과 같은 자연친화주의적 사상이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수많은 사람이 그가 쓴 책을 읽고 자기만의 '월든'을 찾고 있으니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19c의 미국판 '나는 자연인이다.'인 셈.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김밥집에서 나무젓가락을 받지 않으며 카페에서는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한다. '월든'에 깃들어있는 '소로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환경을 조금 덜 파괴할 것이라 알고 있을 뿐 전혀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결국 환경에 해를 가하는 짓을 '덜' 하는 것이지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숨만 쉬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먹고 쓰며 경제활동도 해야 한다. 나는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운동을 통하여 가르치는 사람이다. 나에게 경제활동이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체육관에서 운동장에서 때로는 교실에서 수업을 한다. 수업을 할 때는 체육복을 입는다. 한 때 말끔한 사복 차림에 수업 전후로 체육복으로 갈아입어보기도 했지만 현재는 출퇴근복과 수업 복장이 같다. 옷을 만드는 것도 염색이다 뭐 다해서 물이 엄청나게 들어간다고 하고 환경에 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출퇴근복과 수업 복장의 통일은 절반 정도 환경에 해를 덜 준다고 볼 수 있다. 기특한데?


기특함도 잠시, 수업 때 사용하는 수많은 용품들과 환경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하계, 동계 올림픽 전후로 불거지는 환경 파괴 문제(경기장 건설로 인한 난계발)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었지만 매일 하는 체육 수업 내에서의 환경의 문제를 생각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형형색색의 운동복을 입는다. 원색이나 형광빛 옷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시중에 컬러풀한 옷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고 구입해서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입는 옷에만 손이 가고 대부분은 옷걸이나 서랍 속에 고이 접혀있다. 다 입지도 못 할 옷들을 왜 그렇게 사서 쟁여놓았는지 모르겠다. 의류 염색에 쓰이는 물의 양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나의 근무복이 환경에 해가 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이 나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는 우리 집 구성원 중에서 체육복이 많은 편이지만 체육을 업으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적은 편인 것 같다. 운동을 한 번쯤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운동복은 화려하다. 수 없이 많은 종목에 운동 애호가들. 그들이 소비하는 스포츠 의류에서 빼야 할 부분은 없는지 다 같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체육 용품 중 과도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들은 없을까? 경기장 건설도 문제지만 사용하고 있는 용품에 관해서도 생각해보자. 배드민턴 수업에 쓰이는 셔틀콕이 있는데 대부분 학교에서는 플라스틱 셔틀콕을 사용한다. 비용과 내구성을 고려하여 깃털콕보다는 플라스틱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리나 거위의 털을 동냥받아 좀 쓰는 것 정도는 넘어가기로 하고 이 플라스틱 콕 사용량이 생각보다 많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와 달리 체육 현장의 분위기는 여기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단, 셔틀콕은 일회용은 아니고 다회용이지만 이것이 의외로 잘 파손된다. 아이들은 정타(라켓의 가운데 부분에 셔틀콕을 맞추는 것) 비율이 낮기 때문에 셔틀콕의 플라스틱 깃 부분이 잘 상하는 것이다. 요즘 탁구공은 전체가 플라스틱이다. 폴리 공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 불에 취약한 재료로 만들다가 이동 시 화재의 위험을 줄이고자 플라스틱으로 공의 재료를 바꿨다. 생명력이 플라스틱 셔틀콕보다는 오래가긴 하지만 시합구는 몇 회의 시합을 거친 후 연습공으로 강등되는 과정을 거쳐 살짝 깨지기라도 하면 그 소명을 다하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된다. 체육 수업 때 사용하는 탁구공은 그리 좋은 공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수시로 밟아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로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는데 연두색으로 곱게 염색된 테니스공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는 이 밖에도 수많은 스포츠 용품들이 학교 안에서 혹은 밖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스포츠 용품 소비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환경을 위해서 예전처럼 축구공 하나로 수업이 해결되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윔블던 경기처럼 모든 스포츠 참여자에게 흰색 옷 착용을 강제하자고? 그건 아니다. 많은 종목을 매개로 학교 현장은 체육교육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되는 용품들은 일회용품이 아닌 필수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 번쯤은 체육활동과 환경을 연관해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이다. 인간이 생활하면서 환경에 해를 주지 않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해를 덜 주거나 늦추는 방안, 그리고 이 문제를 교육에 활용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은 교육이다. 체육시간에도 체육활동과 관련한 환경교육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입고 사용하는 것들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고 좋은 스포츠를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는 동시에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독려해야 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 글을 읽고 누군가가 환경보호 철학에 입각하여 스포츠 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신체활동의 학풍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환경보호 철학 체육수업가 몇 명보다는 모든 체육 교사가 한 학기에 한 번이라도 환경 문제를 교과와 연계하여 교육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10명의 열렬한 환경보호가 보다는 1만 명의 보통 선생님들이 조금씩 실천하는 편이 산술적으로도 낫기 때문이다.


플로깅을 활용하여 수업을 하고 과제를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일하게 교과 활동을 하면서 환경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고 학생들도 달리기나 산책과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병행한다는 것에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실천했다. 플로깅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어떨까? 학생들은 체육 기구나 용품들을 더 아끼게 될 것이고 이것은 안전한 수업과 학교 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요즘 교육은 효과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효율성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이란 환경의 문제를 말한다. 교육의 효과를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은 교육종사자로서 더없이 좋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자본과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19는 그것을 더 부추겼거나 새로운 형태의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가속화했다. 디지털 기기다. 전 세계가 노트북이나 태블릿 피씨 등을 어마어마하게 소비했다.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기기들을 지급했다. 이러한 기기들의 보급은 고릴라 서식지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우리가 누리는 것 이면의 것들을 바라보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 과거에 비해 효과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가? 그만큼의 자본과 자원을 소비한 만큼 효율적으로 교육을 하였는가? 또 내 체육 수업은 그러했는가? 현실적으로 환경적인 효율성을 따지기 어렵다면 교육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월든'에 깃든 '소로의 정신'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