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좀 하고 오겠습니다.

12년차 체육샘 대학원 파견썰

by 서울체육샘

"연구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10년 넘게 일 했으면 좀 다른 경험도 해봐야지.'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2009년에 대학졸업, 해병대 장교 임관, 교원임용고사 합격 3가지를 다 이루었다. 해병대에서 짧고 굵게 2년 근무 후(ROTC출신 단기장교 근무기간은 해병대가 육군에 비해 4개월 짧다.) 2011년 2월 28일에는 전역을 했다. 그리고 딱 이틀 후인 3월 2일에 학교에 출근했다.


특별한 사명과 철학 없이 학교에서 일도 수업도 그냥 열심히 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둘 낳았다. 행복한데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휴직도 생각해보았지만 형편상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다 교원 석사 파견 제도를 알아보고 지원했다.


석사 파견은 말 그대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등록금까지 내주지는 않지만 월급은 준다. 교직 초기에 공문을 찾아보며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 당시는 선뜻 지원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아저씨가 된 후에야 지친 일상과 힘든 육아에서 조금 벗어나 보고자 덥썩 지원한 것이다. 더군다나 20년과 21년은 코로나 여파로 대학원 수업은 원격으로 진행되었다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다.

"그래 코로나 막차 한 번 타보자!"

결국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시험 준비를 핑계로 아이 둘 육아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수업과 업무에 계속 시달렸다. 속한 지역에서는 체육 교과 1명을 선발하기 때문에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내가...될까?"

5개월 정도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 시험이 있기 한 달전 즈음해서는 주말에도 온전히 공부를 할 수 있게 아내가 배려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시험이 2주 정도 남았을 때 일이다. 둘 째가 고열과 함께 온몸에 심한 반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원 치료를 해도 좀 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가와사키'라는 병이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 첫 째가 고열과 기침을 하더니 역시 입원을 했다.

결국 시험을 1주 남기고는 가족이 모두 병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밤에도 병원 복도와 계단에서 대학원 전공 시험 공부를 하며 이게 맞는건가 하는 질문을 되풀이 했다. 아이들이 회복되기만 바랄뿐 되면 좋고 안되도 그만이라는 마음이 커갔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어쨌든 퇴원했다. 시험 전날 대학 근처로 내려와 숙소를 잡았고 다음날 일찍 시험에 응시했다. 나이를 먹으면 시험 따위에 긴장하지 않을줄 알았는데 10대 20대 처럼 똑같이 떨렸다. 문제에 적잖게 당황도 하면서 차분히 공부한만큼 써냈다.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결과는 합격. 나이를 먹어도 어딘가에 합격한다는 것은 여전히 기뻤고 과정을 아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눌 가족들이 있었기에 더 감격스러웠다.

뒤늦게 공부를 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등록금을 내주겠다는 가족들의 손길도 고마웠다. 눈물 흘릴 일도 잘 없는데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렇게 2022년부터는 대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학교 업무도 수업도 안해도 된다. 아직은 코로나 시대. 대학원 수업은 온라인으로 할꺼 같고 아내가 복직하니까 아이들 등하원을 책임지고 좀 쉬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그런데...


"선생님 연구실 출근은 9시 까지 하시고 6시에 퇴근하시면 됩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