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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체육샘 Mar 14. 2024

나의 호각 일기

두 손의 자유, 벅찬, 숨찬 하루

주문한 호각이 왔다. 115dB이라…운동장용으로 구매한 녀석이다. 운동장 잔디 색상에 맞추어 초록색을 신청했는데 품절이라 파란색이 왔다. 나와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던 걸까.

체육관용 호각은 노란색으로 싰다. 바닥 색깔에 맞추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노란 호각은 95dB이다. 실내니까 조금 소리가 작은 걸로. 내일 와있겠지.


코로나 2년, 파견 2년을 지나 거의 4년만에 입에 호각을 무는 날이다.

호기롭게 목에 호각을 걸고 1교시 수업을 나간다.

아이들을 정렬을 시키고 출석을 확인한다.

체조대형으로 벌린 후 팔벌려뛰기를 시킨다.

드디어 입에 호각을 문다. 호각 입구를 감싼 실리콘의 말랑함이 치아에 전해진다. 윗니 아랫니로 호각 입구를 단단히 물고 숨을 불어넣는다. 혀로 구멍을 막았다 땠다하며 한숨씩 불어넣을 때마다 아이들은 일제히 팔벌려뛰기를 한다. 혀가 이렇게 예술적일 수 있을까? 마지막 호각소리는 “삐비비빅”이다. 군대에서 익힌 호각법은 마치 자전거 타기와 같았다. 오래 불지 않았지만 감각이 살아있었다. 영원히 까먹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전자호각은 흉내낼 수조차 없는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호각을 불면 두 손이 자유롭다. 전자호각은 손에 잡은채 버튼을 눌러야 소리가 난다. 반면, 호각을 입에 물면 두 손은 자유다. 호각을 입으로 불면서도 체조, 스트레칭이 가능하다. 운동장에 퍼지는 호각소리가 제법 날카롭다. 꽤 강하게 숨을 불어넣어야 115dB의 소리가 호각 구멍을 찢고 나왔다. 4년만에 부는 호각은 가슴 벅차기도 했지만 숨이 차기도 했다. 준비운동을 다 마치니 숨이 딸렸다. 적응이 필요하리라.


정신없는 3월의 하루는 이렇게 또 흘러간다. 인상깊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호각에 숨을 불어넣은 그 느낌이 오늘 하루를 살렸다. 그리고 이 글로써 완성됐다.


삐비비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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