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

by 랑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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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해석이 포함되어 있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우연히 표류하게 된 소년과 호랑이의 우정 이야기를 다룬 다소 뻔한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런 내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여운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색을 해야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보다 주제가 무겁고 깊이 있는 영화였다.


일단 주제를 떠나서 영상미가 엄청나다. 밤바다의 해파리씬이나 밤이 되면 산성화 되어 식인 섬으로 변하는 설정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전체적으로 색감이 너무 좋았다. 특히 파이가 바닷속에서 배가 침몰하는 걸 바닷속에서 지켜보는 장면은 구도도 좋았고 절망적이면서 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못 본 게 정말 아쉽다. 제발 재개봉 좀...


바다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파이를 찾아온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런 전개 참 좋다.)


대체적으로 평을 보면 도입부가 지루할 수도 있다는데, 우려와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파이가 배에 승선하기 전까지 20분 정도 유년시절을 보여주는데 뭐랄까...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란 이름을 가진 소년이 어떻게 '파이(π)'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힌두교, 이슬람교, 천주교를 모두 믿는 파이에 대해 종교보다는 이성을 믿으라는 아버지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종교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보여준다. 후에 호랑이와 바다에 표류하는 중에 파이는 이성과 신앙을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파이의 여자 친구 '아난디'가 추을 추며 손으로 연꽃이 피는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식인 섬에서 연꽃을 펼쳐보니 사람의 치아가 들어있는 장면과 연관이 있었다.


이렇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대사나 이름, 장면 하나하나가 무엇을 상징하는데, 이 모든 걸 제대로 이해하려면 힌두교에 나오는 신의 유래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나처럼 해석을 찾아보던가 ㅋㅋ)


밤에 산성화 된 식인섬의 모습

식인 섬도 그런 상징 중 하나다. 밤에 신성화가 될 때 섬 전체 모습이 보이는데, 잘 보면 여자가 누워있는 모양이다. 이는 힌두교의 주신 '비슈누'가 잠든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사랑과 자비의 신 '비슈누'가 잠이 들면 모든 게 허망한 세계가 된다는 파이의 대사처럼 허망한 세계를 밤이면 산성화가 되어 생물을 모두 녹여 삼켜버리는 식인 섬으로 표현된 듯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가 마지막에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열린 결말이 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식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이 죄책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대체시킨 존재들(호랑이,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즉 동물원의 동물들과 식인 섬)로 멋지게 시각화한 영화다.


그럼 동물들은 같이 구명보트에 탔던 사람들일 테고 식인 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보면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 있고 연꽃을 펼쳤을 때 뜬금없이 나온 사람의 치아를 봐서는 식인 섬 자체는 파이가 식인을 한 시체일 가능성이 크다. 파이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섬의 식물을 뜯어먹는 장면이나, 엄청난 수의 미어캣들은 시체의 구더기였고 호랑이가 미어캣을 잡아먹은 건 아마도 파이가 허기에 미쳐서 시체의 구더기까지 먹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파이와 함께 표류하는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동물원 등록 과정에서 서류가 뒤바뀌는 사고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설정은 호랑이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파이의 또 다른 자아처럼 의인화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알 수 있듯, ‘리처드 파커’는 곧 파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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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맹수와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파이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구명보트에 호랑이와 단둘이 남았을 때도 파이는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피난처를 만들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은 ‘리처드 파커’라는 존재는 파이가 생존의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파이는 표류 중 호랑이를 구해주고 길들이려 하며 일정한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아름다운 우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씩 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리처드 파커(호랑이)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맹수는 결국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


결국 파이는 약 270여 일을 버티고 극적으로 구조된다. 구조 이후, 선박 사고 보험 문제로 침몰 원인을 조사하러 온 일본 조사관들에게 파이는 믿기 힘든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조사관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을 텐데요?”라고 의심을 한다.


그러자 파이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가 침몰한 뒤, 구명보트에는 다혈질의 주방장과 다리를 다친 일본인 불교 신자, 그리고 파이와 그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주방장은 일본인의 다친 다리를 자르고, 그것을 미끼 삼아 낚시를 한다. 이를 참지 못한 파이의 어머니가 항의하자, 주방장은 그녀를 바다로 밀어버린다. 분노한 파이는 결국 주방장을 죽이고, 혼자 남아 생존을 위해 시체까지 먹으며 표류하다 구조되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이 이야기를 앞서의 미화된 이야기와 대입해 보면, 주방장은 하이에나, 일본인 불교 신자는 얼룩말, 파이의 어머니는 바나나 더미를 타고 온 오랑우탄, 그리고 파이는 호랑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바나나의 존재는 다소 미묘하지만 사실 바나나가 물에 뜨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바나나는 물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더 그럴듯한 두 번째 이야기를 들은 조사관들은 더 이상 바나나로 태클을 걸지 않고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첫 번째 이야기를 공식 보고서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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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를 들은 작가에게 파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세요? 사람은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게 진실이 됩니다.”

이 대사는 인간과 종교, 그리고 믿음에 대해 말한다. 종교를 믿는 데 있어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을 믿는 것이 자신에게 의미 있고 유익하다면, 그 사람에게 신의 존재는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


P.S 바나나가 물에 뜨지 않는다는 말은, 조사관이 파이에게 진실을 끌어내기 위해 던진 낚시용 질문이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바나나는 실제로 물에 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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