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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Feb 17. 2024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도둑이 제 발을 저릴 때 나타나는 증상


문제의 팀장이 오고 근 5개월 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그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회사 내에서 감사를 받고 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는 일을 여러 차례 같이 진행했던 업체와 담당자인 나의 유착 관계가 의심스럽다며 업체에 나의 지인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쳤던 일이다.


그 일은 팀장을 알게 된 지 한 달이 채 안되던 시점에 일어났는데 항상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며 좋은 결과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진행하는 점을 나름의 능력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당시 당황스러웠지만 상사가 요구하는 것이기에 그의 말에 따라 어떻게 특별한 유착 관계가 아님을 증명할지 고심하며 업체 사장님과의 카톡 내역 등을 제출하기 위해 준비도 했었다.


그러던 중 ‘도대체 알게 된 지 몇 년 차부터 지인으로 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일전에 그가 자랑하듯 ‘사장님이 자신을 채용하고 처음 내리셨던 지시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언론사 관계자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고 떠벌리기도 했었는데,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결과물을 실제로 생산하며 알게 된 나의 인맥은 유착 관계가 의심스럽고 핸드폰 속에 리스트로만 존재하며 기업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지 모르는 자신의 인맥은 가치를 지닌다는 내로남불의 사상을 지닌 사람에게 현실에서 당한 것이다.


해당 업체 사장님에게는 항상 일을 하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시도 때도 없는 부탁과 할인을 요청하면 군말 없이 가능한 선에서 항상 편의를 봐주며 일을 진행했던 사장님이었다. 거래했던 내역과 금액을 보면 ‘후려치기’라면 모를까 절대 ‘유착’의 의심을 가질 수 없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신이 유착하여 불법의 이득을 취한 경험이 있어서 순수했던 나와 사장님의 관계를 의심했던 것이다.




팀장이 감사를 받는 이유는 부적합한 법인 카드와 연차의 사용에서 출발했다. 물론, 과정에서 그보다 많은 부정이 발견되었지만 주요 원인인 부적절한 법인 카드 사용 중 상당 부분이 유착관계가 의심되는 지인 접대 건이다. 5개월 간의 업무를 통해 봐 왔지만 그 지인들은 회사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심지어 접대만 받았을 뿐 일 자체를 같이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퍼줘야 하는 유착 관계만 맺었을 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는 내가 지인인 것 같아 보이는 업체와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부러웠던 것 같다. 그도 지인들과 회사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같이 일을 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비용을 절약하며 결과를 내기 위해 업체 사장님께 신세를 졌지만 그는 자신의 지인들과 일을 핑계로 비싼 술과 밥을 먹었다. 입사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순간부터 회사 돈으로 부당 이익을 취해 왔다.  




이번 일은 나에게는 인생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없어서 비상식적이고 근거 없는 의심을 하는 팀장에게 휘둘리며 나름 정의로운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던 스스로를 의심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10년 가까운 사회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겪는 상황에 휘둘렸고 나답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누군가 비상식적인 의심을 나에게 제기한다면 그 의심의 동기부터 파악하며 여유를 가지고 대처하겠다. 필요하다면 초기부터 강력하게 대응하여 불란의 싹을 잘라버리겠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당신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상식적이지 않은 의심을 제기한다면 반대로 그를 의심해 보라. 그가 ‘뭐’여서 ‘뭐’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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