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상(蛇吞象), ‘뱀은 코끼리도 삼킨다’
蛇(뱀 사) : 虫(벌레 훼) + 它(남 타)
갑골문 蛇(뱀 사)는 구불구불 뒤튼 몸통과 마름모꼴 머리다. 비록 윤곽선만으로 심하게 약화(略畫)되었지만, 살아 있는 입체감이 똬리를 튼 한 마리 뱀을 떠올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 【 표 】 1 )
엇갈린 격자들은 피부를 덮은 비늘이고, 마름모는 벌어진 아가리다. 목구멍 끝은 점 하나로도 선명하다. 입체파 거장 피카소인들 흠칫하며 놀라지 않을까 싶다. 주 1)
蛇자는 금문 이후부터 돌연 머리와 복부가 급격히 커지고 부푼다. 자기 몸통보다 훨씬 큰 먹잇감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뱃속에서 으스러뜨려서 마침내 녹여내는 엄청난 소화력을 가진 뱀의 놀라운 생태 능력을 포착한 것이다. 글자 하나가 가히 ‘동물의 왕국’ 스틸 한 컷인 셈이다. ( 【 표 】 2~13 )
蛇의 고자(古字)는 也(어조사 야)와 它(남 타)이다. 그런데, 이 글자들은 각각 어조사(也)와 대명사(它)로 가차 된다. 그러자, 애벌레의 상형인 虫(벌레 훼)를 더해서 뱀에 대한 지칭성이 강화된다. 그것이 오늘날의 蛇와 虵이다.
蛇가 만들어지자 它(남 타)는 사물에 대한 3인칭 대명사로 그 의미가 확실히 굳어진다. 사물과 분별하여 사람에게는 它 대신에 他(남 타)를 쓴다. 그 여성형 她(남 타)는 亻(人)이 女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통의 직접 주체인 ‘나’와 ‘너’ 이외의 모든 타자적 대상을 가리키는 한자들은 하나 같이 뱀을 소환한다.
3인칭 대명사는 대화가 불가능한 존재를 가리킬 때 쓰인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물이거나, 지금 이곳에 부재(不在)하거나 현재(現在)한다 하여도 대화에서 배제된 사람이 그 대상이다. 옛날 중국인들이 그런 소외된 존재들에 대해서 하필이면 혐오스러운 뱀을 연관시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사족! 사탄상(蛇吞象), ‘뱀은 코끼리도 삼킨다’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탐욕스러움을 빗대어 비판할 때 중국사람들이 쓰는 문구다. 그런데, 이 사탄상(蛇吞象)이, 《어린 왕자》 속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하게 한다.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모자를 두고서 뱀을 그렸노라 거짓말한다고, 아이를 놀렸다. 아이는 실망했다. 그런데, 정작 거짓말을 한 것은 어른들 자신이었다. 보아뱀에 투영된 그들의 욕망이 드러남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른들은 일부러 모른 척한 것이다. 급기야 그것은 모자일뿐이라고 억지를 부리기까지 한다. 어른들의 그 부당함으로부터 상처입은 어린 화가 지망생은 부득이 꿈을 접고 비행사가 되었다.
이천 여년 전에도 처음에는 그저 뱀 자를 고안했을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내 그 글자 속에서 흉측스러운 자신들의 욕망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 뱀(它)을 ‘나’ 또는 ‘나와 타협한 너’가 아닌 타자들을 가리킬 때에나 쓰기로 공모한다. 그렇게 해서 뱀은 그것(它)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숨겨진 자기욕망의 타자화를 사람 간에 적용한 것이 他 (人+也 )이고 她(女+也)이다.
욕망의 타자화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저 뱀의 유혹에 끌려 선악과를 먹었을 뿐이라는 비겁한 변명의 빌미를 만든 것은, 자신의 욕망을 뱀을 빌어 타자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뱀이 등장한다.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워너브라더스의 미드 V는, 지구를 정복하려는 선진 파충류 외계인(Reptilian)과의 싸움을 다룬 선풍적인 인기 드라마다. 인간과 똑 같은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그 피가 녹색인 파충류 외계인들은 온갖 기괴함과 잔혹함 그리고 탐욕으로 가득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뱀을 이용한 인간욕망의 타자화와 다름 아니다.
뱀과의 싸움에서 부디 필승(Victory)! 주 2) 哈哈。
주) 1. 관절이 없고 인대로만 연결된 턱뼈를 가진 뱀은 그 입의 탄력도가 엄청나다. 그 입을 크게 벌리면 정면에서 볼 때 머리 부분 전체가 사라져 버리고 벌어진 입이 마름모꼴로 보인다. 먹잇감은 물론이고 포식자조차 기겁하지 않을 수 없다.
2. 대문 그림은 미드 V의 한 장면이다. V는, 렙틸리언(Reptilian= Reptile + Alian)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결국은 승리(Victory)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