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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Dec 31. 2023

[한자썰91] 饌, 엄마손맛의 기원

경배와 순종 그리고 부드러움...

饌(반찬 찬) = 食(먹을 식) + 巽(부드러울 손)


饌(반찬 찬)은 먹는 것(食)을 부드럽게 하는 것(巽)이다. 그중에 食은 갑골문을 보면 뚜껑이 덮인 그릇이다. 그래서 음식 또는 그것과 관련된 일들을 가리킨다. 이해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巽이 좀 어렵다. 사전을 보면 巽은 ‘부드럽다’, ‘유순’, ‘공순(恭順)’ 또는 ‘사양’이다.


왜 그런지는 역시 갑골문에 답이 있다.  【 그림 1 】 1은 두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좌측 방향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허리는 굽히고 손은 내려 모았다. 우러르거나 두려워하는 어떤 대상을 향하여 경배나 복종을 표시하는 장면이다. 주 1)


【 그림 1 】 巽의 자형변천

무릇 경배나 복종하는 자의 말과 행동은 삼가고 저어하게 된다. 상대의 원함을 족하게 하고, 그 심기의 불편함을 살펴야 한다. 말에 반대함이 없고 행동에 격함이 없다. 그럼에도 그 잘 된 결과에 대해서 내로라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점잖게 일러서 예(禮)라고 한다. 주 2)


'부드러움'이란, 그것에 닿아도 스스로 상하지 않고, 그 건드린 것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외부를 받아들이되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경배와 복종' 그리고 '부드러움'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그러니, 巽의 새김이 '부드럽다'가 된 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옛날에는 쌀과 밀(飯)이 먹기에 꽤나 거칠었나 보다. 품종개발이 조악하고 도정기술이 허술하기도 했다. 소출이 넉넉지 않으니, 그 꺼풀을 깊게 깎기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찾는 슈퍼푸드를 먹어 보면 그 거침이 어떤 것인지를 금세 알 수 있다. 혀에 감으면 거칠고 이로 씹으면 둔하다. 취향에 달렸겠지만 그 맛 역시도 달지가 않다. 그래서 곁들여 먹은 것이 찬(饌)이다.


거친 반(飯)이 순한 찬(饌)을 만나 입 속에서 섞이니 향기롭고 부드럽다. 그래서, 반찬(飯饌)이다. 반찬(飯饌)은 밥을 부드럽게 한다는 뜻이다.  


그 반찬(飯饌)을 어디 아무나 먹었겠나! 고대는 반()으로 겨우 끼니 삼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시절이다. '있는 사람'들 아니고서야 반찬 차리기가 쉽지 않다. 조미할 재료를 구하는 부담과 익히고 묵히느라 드는 수고와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찬(饌)을 허락하지 않는다.


찬모(饌母)가 가족을 위해 찬을 정성껏 차려 내는 어머니 같은 여자처럼 얼핏 읽힌다. '엄마손 맛'과 맥락이 같은 말이다. 아마도 찬()의 처음은 '엄마손'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엄마손맛의 정체는 '미원'이 아니라 '존경과 순종 그리고 부드러움'이다.


그러나, 차차로 '있는 사람'들은 직접 찬을 만드는 데에 수고와 시간을 들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남의 집에서 반찬 만드는 일을 맡아서 하는 여자'의 의미로 찬모(饌母)가 쓰인다. 종속적이고 차별적인 말이 되어 버렸다. 찬()에 계급이 생겨난 것이다. 손(巽)의 태생이 복종과 순종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길을 가다 보면 '엄마손 식당'이라는 믿기 어려운 간판들이 참 허다하다.


사족, 선물(膳物)에 선(膳) 자는 원래 음식을 가리키는 글자다. 육(月=肉) 자가 들어간 것을 보면 고기 음식을 가리켰을 것이다. 거기에 선(善) 자가 붙었으니 보통 고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사상이나 왕의 수라상에 올리는 특별히 귀한 음식을 선(膳)이라 했다.


상선(尚膳)은 그래서 왕의 음식을 관장하는 벼슬이다. 내시가 그 일을 맡았는데, 왕의 음식을 궁외인에게는 맡길 수가 없으니 그랬을 것이다. 상선(尚膳)은 종이품으로 그 품계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근에서 왕을 모시고 있으니 제아무리 재상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 상선(尚膳)이 왕에게 올리려고 챙기는 음식이 선(膳)이다.

물산이 적고 먹는 것이 중했던 옛날에, 그나마의 선물은 주로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의 밥보다는 반찬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제사나 수라에만 올리던 것이니 얼마나 귀했겠는가! 그 선물에 존경과 순종 그리고 애정을 담뿍 담았을 것이다. 그게 진짜 선물이다.


새해 첫날에 부드럽고 향기로운 찬(饌)과 선(膳)으로, 정겨운 가족들과 따뜻한 밥(飯)을 즐겁게 나누련다. 哈哈。


주) 1. 갑골문 이후 巽은 복잡한 자형변천을 거친다. 하지만, 단순한 모양의 변형일 뿐이다. '한쪽으로 무릎 꿇은 두 사람'이라는 최초의 모티브는 일관된다. 변천은 글을 적는 재료와 서풍(書风)의 변화가 반영된 영향일 뿐이다.

2. 예(禮)는 원래 수직적 관계에서 만들어졌다. 제단(示)과 제물(豊(곡식이 담긴 그릇))이 신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禮)의 기원이 복종과 의존이다. 그런데, 신도 아닌 사람들끼리 자신의 예(禮)는 돌아보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함부로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 필히 피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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