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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16. 2024

[한자썰93] 玄, 하늘이 왜 검을까?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玄(검을 현) :  亠(돼지해머리 두)  +  幺(작을 요)


금문 玄(검을 현)은 무언가(十)에 실타래(幺)를 걸어 둔 모양이다. 염색 물을 들인 실은 줄에 널어 햇볕과 바람에 일정시간 말려 줘야 한다. 玄이 묘사한 장면이다. 그래서, 玄은 원래 懸(매달 현)의 고자(古字)였다. '검을 玄'이 아니라 '매달 玄'이었다는 것이다.


실타래가 가득 매달린 건조대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공중에 각색으로 빛나는 실들 사이로 하늘이 펼쳐진다. 그렇게 언뜻 거리는 아득한 하늘! 그 하늘의 색깔이 바로 玄(검을 현)이다. 실-염색-매달다-건조-공중-하늘-검다! 원숭이 엉덩이가 백두산에 앉은 구전 동요와 가히 동급이다.


【 그림 1 】 玄의 자형변천

천지현황(天地玄黄)! 누구나 아는 천자문의 첫 절구다.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일자무식 취학 전인지라 그러구 읊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한 것이 가마솥은 검고, 누룽지는 누렇다. 그러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와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땅이 황색인 것은, 황하 유역에 드넓은 퇴적 토양이 그러니 자기들 눈으로 본 대로를 적었겠다 싶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하늘도 본 대로라면, 어찌 그걸 검다 했는지 납득이 안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르고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하늘빛이 아니던가! 중원의 하늘이 딱히 검었어야 할 하등에 이유는 없다.


아니나다를까, 玄이 원래는 검은색이 아니었다. 선진(先秦) 때까지는 청색 혹은 남색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무려 2~3천 년이다. 그러다가 한대(汉代)에 비로소 지금의 적흑색(赤黑色) 또는 흑색(黑色)이 된다. 전자는 청명한 날에 한낮이고, 후자는 여명 직전의 어둑한 새벽녘이거나 깊은 밤이다. 주 1)


그렇게 玄의 실제는 역사적이다. 그리고, '본 대로'의 하늘빛깔과 완전히 일치한다. 碧(푸를 벽), 绿(푸를 록), 青(푸를 청), 蓝(푸를 란), 蒼(푸를 창)이 모두 玄이고, 黑(검을 흑)과 검기의 짙기가 다른 그 변색들 모두가 玄이다. 푸른색과 검은색 계통의 많은 색들을 모두 포괄한다. 玄은 하늘 빛깔의 변화무쌍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늘이 검다'가 된 것은, 편이상로 우리가 쓰고 있는 '검을 현'이 우리의 사고를 가두었기 때문일 뿐이다. 天玄은 '하늘이 검다'가 아니다. 하나뿐인 '하늘이 푸르기도 하고 검붉기도 하고 칠흑(漆黑) 같기도 하다.'가 옳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그냥 '하늘이 현(玄)하다'해야 옳다. 그래야, 변화무쌍하고 유원(幽远)하고 오묘(奥妙)한 하늘의 본 모양을 말하는 것이 된다.


사족, 우주홍황(宇宙洪荒)! 천자문의 두 번째 절구다. 위로는 하늘과 아래에는 땅이 있는데 그 사이에 놓인, '이 세상이 드넓고 그 끝이 없다.'라고 풀이한다. 천자문에 우주(宇宙)는 천지지간(天地之间), 하늘과 땅 사이, 즉 '본 대로'의 세상을 의미한다. 현대적인 개념의 우주(Space)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천지를 먼저 제시하고 우주를 부연으로 설명하는 절구배열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천자문은 천지를 포함한 광대한 우주가 아니라 천지가 있어 그 사이를 차지한 공간으로서의 우주를 설명하고 있다.


우주(宇宙)는 두 글자 다 집을 뜻한다. 우(宇)는 집의 처마에서 따온 것이고 주(宙)는 들보와 기둥에서 따온 것이다. 좀 더 들어가면 우(宇)는 공간을, 주(宙)는 시간을 상징하는 글자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주(宇宙)는 공간과 시간이 함께 얽혀 운행하는 곳이라는 뜻이 된단다.


천지현황(天地玄黄)처럼 우주홍황(宇宙洪荒)도 글자별로 헤쳐서 풀면, 이 세상은, 공간(宇)이 한없이 드넓고(洪), 시간은(宙)이 거칠고 허황(荒)된 곳이다. 얼마나 넓은지 그 끝이 없으니 다 알려고 할 필요조차 없고, 시간은 변화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나 그 실상은 비어 있어 공허할 따름이니…. 그 다음에 떠오로는 말이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 그림 2 】 고구려 벽화의 현무(玄武)

그 숱한 가지가지 색들을 내포한 玄이 어떻게 검어졌는지 그 사유를 알래야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렇다. 복합적이고 모호하다. 많은 설명들이 얼버무리기 일쑤다.


현무(玄武)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다. 거북과 뱀이 서로 몸을 얽고 있는 아주 해괴망측한 양성동체 괴물이다. 그런데, 그 거북의 등은 검기도 하고 검붉기도 하다. 이 동물은 생명의 끝, 곧 죽음을 알리는 북쪽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 북쪽의 상징색은 역시 검은색이다. 그래서, 玄이 검은 색이란다. 앞뒤 없는 뒤죽박죽이다. 그게 玄이다. 주 2, 3) 哈哈。


주) 1. 선진(先秦) : 신석기부터 춘추전국까지의 시기를 이르는 말

2. 현무를 포함해서 사방에 사신이 있는데, 청룡(동, 청색), 백호(서, 백색) 주작(남, 적색)이 나머지다. 서남아시아를 주변으로 북, 남, 서편에 위치한, 흑해, 홍해, 지중해의 상징색이 흑색, 홍색과 백색인 것과는 무슨 연관일까?

3. 우리나라 주력 무기 중 하나인 장거리 미사일 현무(玄武)는, 북쪽(玄)을 지키는 괴력의 무기(武)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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