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썰26] 醋, 묵은 술의 변신
초 그리고 락이라...!
醋(초초) : 酉(술 유) + 昔(옛 석)
醋(초 초)는, 술(酉)과 옛날(昔)의 합자인데, 그 조자 유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다. 술을 더 오래 두어 발효시키면 만들어지는 것이 초지만, 지식이 덜 깨인 선인들이 그 둘의 차이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마시다 남긴 술이 초가 되면 그저 고주(苦酒)라 부른다. 신 맛이 강해져서 마시기가 고통스러워진 술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그 둘의 차이를 구별하게 되자, 고래(古來)로 고주(苦酒)라 부르던 유별난 음료를 '옛날 술', 즉 醋라 구분해 부르기 시작한다. 술과는 맛이나 효능, 용도가 판이하게 달라서, 특별한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게다. 물론, 이런 설명은 어디에도 기록된 바 없는 필자의 순수 뇌피셜이다.
醋(초 초)는 원재료와 첨가물, 제조법에 따라, 맛과 향, 색, 효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醶(엄), 釅(엄), 䤂(매), 䤕(학), 䤘(참), 酨(대), 䣳(사), 醦(참), 酸(산), 醯(혜), 酢(초), 醓(탐), 䤈(혜), 酪(락), 酮(동), 嗠(락), 醷(억)…! '초' 또는 '시다'는 뜻을 가진 글자들이 이렇게 허다해진 이유다. 주 1)
지금은 하도 복잡해서 대부분 醋(초)나 酸(산)이라 하는데, 중국 고대에 전자는 서방(西方)에서 후자는 동방(東方)에서 초를 부르던 말이다.
우리는 주로 맑고 투명한 백초(白醋，White Vinegar)를 주로 먹는다. 알코올(酒精) 자체에 초산균을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흑초(黑醋)를 즐긴다. 쌀, 보리, 수수 류의 곡류 또는 그 기울에서 전분을 분리해내서 당화 시킨 다음에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이물질이 많이 들어가고 색깔이 검다. 신맛은 백초보다 덜하고 짠맛은 조금 더 강하다. 그리고 깊은 맛을 즐길 수가 있다. 내 생각이긴 한데, 중국 반점(飯店)에서 물만두(餃子(교자, 쟈오즈))를 백초에 찍어 먹는 것은 교양이 아니다. 哈哈。 주 2)
사족, 酪(락)은 우유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우유를 써서 만든 술이나 식초, 음료를 가리키기도 한다. 낙농업(酪農業)에 낙(酪) 쓰이는 이유다. 낙농업이 우유나 치즈, 요구르트 만이 아니라, 술이나 초와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유로 술을 만든다는 게 의아한가? 그런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게 뭐든 전부 술로 만들 수가 있다고 한다. 우유를 효소로 처리하면 유당과 포도당이 분해되어 나오는데, 이 당 성분을 이용하면 술을 거뜬히 만들 수가 있다. 궁금하시면, 중국 내몽고나 몽골을 가면, 말젖으로 만든 독주인 마유주(馬乳酒)와 일종의 발효 음료인 타락(駝酪)을 꼭 맛보시라! 주 3)
타락(駝酪)은 그냥 우유를 뜻하기도 한다. 조선에 임금들은, 중간쯤 익은 죽에 물 대신에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駝酪粥)을 보양으로 잘 드셨다 한다. 종로구 창신동 뒷산을 낙산(酪山)이라 하는데, 임금에게 드릴 우유를 짜는 소를 키우던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평생 낙산(樂山)인 줄로만 알았다.
주) 1. 여기 적은 것 말고도 십 여자가 더 있는데, 글자 DB에 없어서 써서 업로드하면 글자가 깨져 버린다. 그만큼이나 초가 많다.
2. 우리는 다 만두라고 통칭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만두(饅頭, 만토우)는 소가 없이 찐 밀가루 덩어리다. 교자(餃子, 쟈오즈)는 다양한 소를 넣고 얇게 밀가루 피로 싸서 물로 삶은 물만두다. 포자(包子, 바오즈)는 만두에 소를 넣은 것을 말한다. 그밖에 더 있지만 천천히... 다음에...
3. 타락(駝酪)은 낙타의 젖이라는 뜻이다. 동물의 젖을 먹는 것은 유목민의 문화였다. 말이나 낙타의 젖을 먹던 북방문화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타락(駝酪)이 소젖, 우유를 포괄하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p.s. 다음 한자썰은 妖(요사할/어여쁜 요/교)입니다(feat. 이후승 작가님의 강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