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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Feb 06. 2024

당신의 쉼터는 어디인가요?

친구와 나의 이야기가 섞여 소설이 되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서로 차지하려다 평소 바리톤이던 그의 목소리가 테너로 변했다. 27층이 들썩거렸다. 위아래 옆집이 알까 민망했다.

“그까짓 바둑 한번 안 보면 어때서!”

리모컨을 꽉 쥐고 앞만 바라보는 남편을 향해 불을 뿜어대는 용처럼 쏘아댔다. 뜨거운 열기에도 꿋꿋하게 앉아있는 그를 째려보며 나는 작은방 문을 힘껏 닫았다. 코뿔소처럼 씩씩대며 침대에 누웠다. 딸아이 방이던 작은방 천장에 붙은 여러 가지 색깔의 별과 달을 올려보다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둘 다 나이 육십이 넘었는데도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다니. 난 그가 시원한 맥주라도 들고 어색한 미소를 띠며 들어올 거라 기대했다. 두 귀를 토끼처럼 세우고 방문만 바라봤다. 산 세월만큼 무뎌진 남편은 보던 바둑 티브이 볼륨만 더 키웠다. 난 분수처럼 솟구치는 화를 다독이며 뒤척거리다 싸움도 잊은 채 잠이 들었다.     


늘 자던 안방 침대가 아닌 탓인지 새벽 5시쯤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어 보려 했지만, 오히려 눈이 더 말똥말똥해졌다.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흔들렸다. 이른 새벽이나 저녁 늦게 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이 아닌데.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였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른 새벽에 무슨 일이야?”

“나 좀 살려주라. 숨이 막혀 죽겠다. 나 너한테로 도망가면 받아줄 거지.”

친구는 어항에서 튀어나와 팔딱거리는 금붕어처럼 쉬지 않고 말했다.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하라 했지만, 나에게 오고 싶단 말 이후 울기만 했다. 난 울음소리만 들었다. 친구는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며 떼쓰는 아이처럼 계속 울었다. 울음 사이사이에 자신 주먹으로 가슴 치는 소리도 들렸다. 친구 울음소리가 사그라들 때쯤 뭉그적뭉그적 해가 떠올랐다.

친구와 난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어제저녁 사소한 일로 싸움을 했더니 새벽부터 이런 전화도 받나 보다. 작은방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나온 난 평소처럼 커피콩을 갈았다. 자동분쇄기 소리에 어슬렁거리며 거실로 나온 남편은 소파 쪽으로 간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내가 앉아있는 식탁 위에 툭 던진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둘이 하는 모양이 딱 아이들이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지금 막 내린 커피 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무승부다.     


어제저녁부터 많은 눈과 강추위가 예상되니 조심하라는 안전 문자가 쏟아졌다. 광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 친구와 난 제일 먼 곳으로 떠나자며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결혼 전 둘이 ‘낙안읍성’에 다녀온 후 여행은 처음이다. 새벽에 큰 소리로 울던 친구는 언제 그랬냐는 표정이다. 그녀 숨통을 꽉 쥔 것으로부터 멀어져서일 거다. 광주는 눈이 흔하지만 내가 사는 순천은 귀한 편이다. 난 서울 가는 동안 펑펑 내리는 눈에 내 눈을 꽂았다. 친구와 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두고 온 것들을 잊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즐겼다. 어둑해져 도착한 서울 강남터미널은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한파주의보 안전 문자에 최대한 몸을 감싸고 왔는데도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우린 버스를 타고 오면서 속닥속닥 세웠던 계획은 깡그리 무시하고 근처 호텔로 들어갔다.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고 따뜻한 온돌방에 등을 대고 누웠다.

“앗따! 나이는 못 속여. 좋아 버려. 여기가 천국이당께.”

난 호텔 방이 쩡쩡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치는 친구 입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가시내야! 여긴 전라도가 아니고, 서울이랑께. 독어 불어는 고만해부러.”

(제2 외국어를 배우던 고등학교 시절 우린 '당께'를 독어로, '부러'를 불어라며 많이 웃었다.) 

친구와 난 입을 틀어막고 한바탕 웃었다. 거센 바람에 콧물이 줄줄 흘러 외출은 포기했다. 따뜻한 바닥 때문인지 전신이 흐물흐물 풀린 친구는 가볍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내가 마트에서 사 온 것들로 둘만의 파티를 준비했다. 새근새근 자는 친구를 깨웠다. 친구는 자는 동안에도 울었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소파로 왔다. 날씨와 상관없이 따뜻한 방에 둘이 앉아있으니 결혼 전 자취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놀던 때가 생각났다. ‘다정’이 지병이라는 친구는 음식 만들어 같이 먹는 걸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우리들은 친구 자취방에 모여 먹고 놀았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알 듯 말 듯 한 시답잖은 이야기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추위와 상관없는 호텔 방에 20대였던 우리가 60대가 되어 마주 앉았다.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신 친구는 숨통이 막힌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부 교사인 친구의 시댁은 남아선호사상이 확실했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에게 딸만 있는 집 며느리는 별로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 집은 아들 넷에 딸 하나라고 당당한 목소리로 자랑도 했다. 친정어머니는 아들보다 딸이 더 좋은 세상이라고 받아쳤다. 친구는 딸만 둘인 집 둘째다.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 가고 친구만 광주에 산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 부부는 그렇게 시작된 양가 어머니들 기싸움에도 결혼했다. 아들 넷 중 셋째인 친구 남편을 좋아하는 시어머니는 친구 집을 당신 집처럼 드나들었다. 살림 참견도 많이 했다. 순둥이인 친구는 한마디 대꾸도 안 하고 살았다. 친구가 딸 셋을 낳고 난 후에도 시어머니 아들 타령은 계속이었다. 친구 남편은 셋째 낳고 난 후 정관수술을 했다. 시어머니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며칠 전 친구 나이 사십 중반에 낳은 막내딸 대학 합격 축하 자리에서 큰소리가 오갔다. 양가 어머니께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 자식이 더 아깝다며 비아냥거려서다. 그 일 이후 서로 당신 말이 맞는다며 친구한테 수시로 하소연 전화를 한단다. 곧 구십이 될 두 어머니의 끝없는 전화와 하소연. 방학이라고 세끼 밥상을 원하는 남편. 수시로 엄마 반찬이 먹고 싶다며 전화하는 직장인 두 딸. 퇴직 1년 반을 앞두고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만 하는 친구의 고충이 합쳐져 오늘 새벽에 터진 거란다.

새벽에 느닷없이 전화통을 붙들고 우는 친구를 남편은 그냥 바라만 봤고. 놀다 늦게 들어와 잠든 막내딸은 어떤 소리에도 움직이지 않고 자고 있었다 한다.     


이야기를 마친 친구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번째 잔을 들었다. 새벽에 나에게 전화하고 집을 벗어났더니 숨은 쉬어진다며 맥주를 마셨다. 안주를 먹던 친구는 두고 온 가족 걱정에 집으로 전화했다. 난 그런 친구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전화를 마친 친구는 내 표정과 상관없이 날 바라보며 같이 있어 줘 고맙다고 한다. 창밖에 내리는 눈처럼 하얀 얼굴과 여전히 긴 머리가 어울리는 친구가 짠하기도 했다.

“가시내! 진즉 우리 집도 오고 그러지. 내가 언니니깐 많이 보듬어 줄 건데.”

“넌 모르겠지만 가까이 사는 양가 어른이 다 내 몫이야. 난 주말도 없어. 모두 다 나만 원해. 나만 바라봐. 애들도 어른도. 심지어 남편까지도. 지금도 걱정돼 전화했더니 라면 어디 있냐고 묻는다. 나 이렇게 산다.”

“다 버려. 아무것도 못 하겠다며 떼도 쓰고. 아프면 드러눕고. 당분간 전화도 하지 말고. 그냥 너만 생각해.”

“어찌 그런다냐. 나 아니면 다 굶을 건데.”

난 친구 등짝을 때렸다. 무엇이든지 자기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을 했다. 숨 막혀 헉헉거렸으면서도 잊어버리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친구가 미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조개껍데기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야! 영화 델마와 루이스 생각나지. 우리 둘이 이렇게 있으니 꼭 영화 한 장면 같다. 그러지 않냐”

우린 영화 이야기와 가족 흉을 보며 여행 첫날밤을 눈처럼 하얗게 보냈다.     


친구와 갑작스럽게 떠난 23일을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마쳤다. 헤어지기 전 친구는 날 안으며 속삭였다.

“지금처럼 계속 살겠지만 그래도 네가 있어 좋았어. 날 숨 쉬게 해 준 넌 나의 쉼터야. 고마워. 살다 힘들면 또 날아올게.”

광주행 버스에 먼저 몸을 실은 친구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나도 순천행 버스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 이야기이고 네 이야기인지 뒤죽박죽인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리모컨으로 싸운 뒤 집을 나선 탓일까. 집안이 깔끔하고 따뜻했다. 남편이 집안 정리를 했나 보다.  거실 탁자에 얌전하게 올려진 리모컨이 더 우스워 남편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2박 3일 동안 추웠는데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여기가 내 쉼터지.”

무슨 말이냐며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가 있어 이곳은 나에게 아니 친구에게 영원한 쉼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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