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기
2023년 12월. 나는 가족에게 "요새 지쳤다. 미국으로 연구년을 가자!"라고 선언을 했고, 부인(S)에게 딸(J)가 초등학교 2학년인 현재 적기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S는 이왕이면 물가가 적당하고 너무 작지 않은 도시이며 이왕이면 H마트 등의 큰 한인마트가 있는 날씨가 좋은 도시이길 바란다며 조건을 얘기했다(사실 어려운 조건이다). J는 나는 친구도 없고, 영어만 써야 하는 곳에 왜 가야 하는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며 반대 의사를 얘기하였다. J는 남은 기간 동안 설득하기로 하고, S의 요구조건을 맞추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작업을 해보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4월에 연구년을 신청하는데, 그해 9월과 그다음 해 3월에 연구년을 보낼 교원을 뽑는다. 이것을 모르고 2024년 3월에 못 나오고 9월에 나오게 된 사정이 있다. 만약 나와 같은 계획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해당 기관의 신청기간과 요건을 꼭 잘 알아두길 바란다.
연구년을 통해 방문교수를 가기 위해서는 상대방 학교 교원의 초대장과 해당 학교에서 비자발급을 위한 서류처리를 담당해줘야 한다. 학위를 외국에서 한 교수들의 경우 보통 자신이 수학한 학교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으나, 나는 순수 국내파라 이러한 과정이 아닌 내 힘으로 알아봐야 했다.
처음에는 정석적으로 나의 연구분야에 맞춰 글로벌 Top 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살펴보고, 미국에 소재한 대학의 저자들을 탐색한 후 연락한 후에 초대 허가를 받아야 했기에 이렇게 접근했다가 1주일 정도 작업해 보고 자료 준비에만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될 듯하여 포기하였다. 나는 학과 내에서 맡은 일들, 그 이외의 외부 활동 등으로 이미 스케쥴링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며, 차선책을 찾아 나섰다.
수학했던 학교의 선후배들, 현재 근무 중인 선후배 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리고 한참 추린 끝에 포틀랜드(오레곤), 보스턴(매사추세츠), 칼리지스테이션(텍사스)이 가능할 것으로 도출되었다. 이 중 S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이 포틀랜드인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지역 학교의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첫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기에, 최대한 신경 써서 보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하다면 그것에 들어가는 비용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물론 작은 비용이지만, 평상시 즐겨 쓰던 Chatgpt를 통해 초대장을 받기 위한 이메일을 작성하였다. 나의 소개, 연구분야, 방문 후 계획 등 다양하게 썼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유료 사이트에서 작성한 이력서로 다시 한번 표현하여 첨부 후 보냈다. 결과는 환영 이메일과 함께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미국의 비자를 발급받기 위하여 DS-2019라는 자료가 필요한데,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상대방 학교 교수의 초청장은 DS-2019라는 서류의 준비를 위한 기초자료이다. 이 DS-2019 또한 상대방 학교의 국제교류부에서 담당을 한다. DS-2019를 내 손에 쥐어야 미국대사관 인터뷰 일정을 잡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1) 호스트 학교 교수의 초청장 받기
2) 소속 기관에서 연구년 교원 신청 및 뽑히기 (코로나 기간 이후 경쟁률이 심화)
3) 호스트 학교로부터 DS-2019 받기
4) 미국대사관 인터뷰 및 비자 발급
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앞서 말했듯이, 워낙 계획도 일찍 했고 초청장도 빨리 받았기에 비행기표를 저렴하게 예약하기 위하여 2024년이 채 되기도 전에 미리 2024.7.15. 에 맞춰 항공권 예약을 완료하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거라고 믿으며..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2번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미리 진행하지 않고 2달 전부터 DS-2019 업무가 시작될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키고는 발급에 필요한 서류는 모두 제출한 상태에서 더 이상 진척이 되고 있지 않았다. 결국, 7월 초까지 DS-2019가 발급되지 않아 비행기표를 7.22일로 1주일 연기하였다. 이때, 금전적 손해를 약 2백만 원 정도 보았다. 계속해서 예의를 지키며 보챘더니 그제야 빠르게 진행이 되었는데, 기존에 허용이 되었던 영어실력 보증 서류가 허용이 불가하게 되었다며 급하게 이메일이 와서 부랴부랴 해당 학교에서 인정하는 테스트의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 벼락치기로 공부한 후 시험 성적서를 제출했고, 7월 17일에 DS-2019를 받게 되었다. 이제 미국 대사관 인터뷰가 문제인데, 인터뷰 일정을 잡고 7.22에 비자를 발급받기는 불가능이었다. 그래서 결국, 또 항공권을 7.29로 연기하였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비자는 J1, J2 비자로 인터뷰 일정은 그 당시 매우 빠르게 잡을 수 있었다. 결국 원래 미국으로 떠나려고 했던 7.22에 미국 비자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2024.7.22. 미국대사관 J1 비자 인터뷰.
인터넷을 살펴보니 방문교수로 가는 J1, J2 비자는 너무나 간단하게 끝난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등을 보고 간단한 질문 몇 개에 대해서는 준비를 해서 갔다. 하지만.. 인터뷰를 받기 얼마 전 미국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총격 사건이 있었고, 이 일 때문인지 인터뷰가 생각보다 힘들게 진행되었다. 나에게 무슨 이유로 미국에 가는지,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한국에서는 무엇을 강의하고 연구하는지를 물어보고 부인인 S에게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매우 세세하게 물었다. 이때, 딸 J의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대사관 오피서에게 인사하고 대화한 것이 아주 살짝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I am tenured professor of national university in Korea, I will return as soon as possible after DS-2019 period. You don't need to worry about that"이라고 강하게 말하고서야 인터뷰가 얼추 끝났다. 인터뷰를 보는 오피서마다 차이가 있는 듯하고, 그 이후 인터넷 카페에서도 비자 거절에 대한 얘기가 꽤 올라왔었다. 사실 비자 인터뷰를 거절당하면 관광비자도 안 나온다는 사실을 미국에 입국하고서야 알았다. 그 당시 알았다면 더욱 긴장했을 듯하다.
미국대사관 인터뷰 전후, 출국 전까지 준비한 사항들.
출국까지 거의 3주 동안은 매일이 송별회였다. 나와 S의 스케줄을 조정하며 서로 저녁시간과 점심시간을 배정하고, J의 친구들도 집에 초대하여 송별회를 해주었다. 나와 S가 자주 했던 말인데 딱 1년 나가는데 영원히 못 볼 것처럼 송별회를 했었다. 지나고 보니 함께해 준 모든 분들께 사실은 감사한 마음뿐이다.
비자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남은 1주일 동안 짐을 정말 미. 친. 듯. 이 쌌다. 분류하고, 쓰고, 무게 재고, 또 나눠 담고를 반복하였으며 집을 그대로 두고 나가기로 결정해서 냉장고 청소에도 매우 고생이 많았다.
이와 동시에 미국에서 집을 구하기 전 살아야 할 숙소를 Airbnb로 찾고 예약했으며, 그동안 움직일 수 있는 렌터카를 그 기간에 예약하였다. 그리고 Zillow, Apartment.com, 구글링 등을 통해 미리 방을 봐두고 투어신청을 했었다. 대충 미국 중고차의 모델들과 가격들을 봐두고, 가서 바로 써야 할 돈들을 통장에 준비해 두었다. 한국에서 미국의 핸드폰 개통이 가능했기에, 미리 개통을 해두었다. 부동산 투어 신청 등을 위하여 현지 전화번호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미국 입국 후 렌터카와 관련한 이벤트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미국 물가는 보통이 아니구나.. 였다. 마음의 준비가 아닌 무장이 필요했었다.
2024. 7.29. 드디어 출국.
나는 부산에 사는 관계로 김해공항 -> 인천공항 -> 시애틀 타코마공항 -> 렌트 후 직접 운전하여 포틀랜드 Airbnb 숙소까지 운전하여 도착의 코스로 계획을 짰다. 사실 항공권을 2번 변경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 이슈가 있기 전에는 김해공항에서 수속 후 인천공항 터미널로 바로 올려주는 내항기가 꽤 많았지만, 현재는 대한항공에서 하루에 1, 2편 정도만 운행하게 되어 매우 불편한 구조로 변경되었다. 다행히 내항기를 이용할 수 있는 항공권으로 변경했기에 김해공항까지 미리 예약해 둔 미니밴에 정성스럽게 싼 엄청난 짐들을 테트리스 하듯 집어넣고, 드디어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