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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첫날부터 장난 아니네..

입국 첫날.

by 지역이음이

2024. 07. 29. 시애틀 타코마 공항 입국, 포틀랜드 도착.


출국 전 인터넷을 얼추 확인하고, 다음의 2가지 사항을 마음에 두고 왔다.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린다. 그리고 이 오래 걸리는 입국 심사는 까다롭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가족들이 긴장하지 않게 무덤덤한 척을 하며 짐을 찾으러 갔다. 이 2가지 사항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짐을 찾는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으며, 입국심사를 위한 줄도 많이 서지 않았다. 입국심사 시 서류를 대충 보더니 이상한 음식 가지고 오지 않았는지를 물었고, 우리는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햇반을 제외한 어떠한 음식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햇반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하였다. 입국심사관은 자신은 김치를 싫어한다는 말과 함께 싱겁게 심사가 끝났다.

시작이 좋았다. 그래서 기분 좋게 미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시애틀 타코마 공항의 렌터카 회사들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차를 찾아야 했다. 3명의 가족이 가져올 수 있는 최대한의 짐을 가져왔기에 우리는 공항 카트 2개에 몇 층을 쌓아둔 짐을 가지고 렌터카 셔틀버스 장소로 이동하였다. 줄을 서다가 느낀 점이 우리만큼 짐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 우리의 짐을 저 버스에 실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우리는 미국 핸드폰 번호를 미리 개통하여 왔으므로 연락을 하기로 하고 부인과 딸을 공항 터미널 짐과 두고 내가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공항 터미널 근처에도 이미 노숙자들이 많았기에 빨리 차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셔틀버스를 잘 타고, 렌터카 사무실에 가서 예약 번호를 말하니, 알아듣기 힘든 뭉개진 영어로 뭐라 뭐라 말을 했기에 조금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하니 한숨과 함께 '네가 신청한 사이즈의 차가 지금 없다. 일단 기다려라'라는 의미였다. 한국에서 Socar을 활용하든,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활용하든 언제든 내가 예약한 차는 미리 그 자리에 있었고, 이게 상식이었기에 일단 여기서 1차 쇼크였다. 그리고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짐이 많을 것 같아서 7인승 SUV를 신청해 놨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 타고 가고, 하물며 예약도 안 한 사람도 차를 잘 빌려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살짝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다. 30분이 지나가니 나를 부르며 또 뭉개진 영어로 느린 것 같으면서도 알아듣기 힘든 말을 했기에 또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니 '네가 신청한 사이즈의 차가 없으니, 한 사이즈 UP을 해줄 테니 타고 가라'는 의미였다. 일단 급한 대로 좋다고 했다. 나의 딸은 아직 카부스터를 해야 할 나이였기에 이를 신청했는데, 이 부분을 체크해 보니 또 뭐라 뭐라 했었고 나는 급하니 일단 차는 탈 수 있는 거지?라고 확인하고 맞다기에 위치를 빨리 알려달라고 하였다. 막상 차 위치를 가보니 내 생각보다 차가 너무나 컸다. Full size SUV라고 분류하던데, 닛산에서 생산하는 Armada라는 차였다. 후에 찾아보니 8 기통 5,600CC의 차로 어쩐지 차가 큰데 잘 나간다 싶었다. 그리고 약 2주 이상 운전하며 느낀 점은 정말 기름 먹는 하마였다.. 카부스터와 관련하여 가족과 상봉하고 알았는데, 내가 신청한 사이즈의 카부스터보다 작은 사이즈였고, 카부스터 대여 가격은 그대로 받고, 되는대로 빌려준 것이었다. 포틀랜드까지 가는 몇 시간 동안 딸은 엉덩이가 낀다고 힘들어했었다. 결국 미국의 첫 번째 아마존 주문은 딸의 카부스터였다.

차에 타고 마음이 급했다. 터미널에 가족들이 있으니..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사무실로 오면서 유심히 살펴본 결과 공항 주차장의 입구가 2개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항의 터미널이 2개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고, 어느 쪽 주차장, 어느 쪽 방향으로 가야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이러한 상태에서 차에 애플 카플레이어를 연결하려 했더니 전혀 되지 않았다. 유튜브로 차를 타기 전 급하게 검색하여 연결 방법을 살펴봤는데 복잡하지 않았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동차의 화면을 보니 등록된 기기가 6개 이내로 줄이고, 내 기기가 그 안에 들어와야 연결이 된다고 하였기에 다른 기기들을 삭제하고 6개째에 내 기기가 들어옴을 확인하였음에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자동차 내장 내비게이션은 공항 터미널 주차장을 검색하지 못하고 직원용 주차장 만을 검색하였고, 나의 핸드폰은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지만 공항 터미널 주차장이 검색되었다. 결국 2개 모두 키고 운전을 시작하였다. 입국심사가 너무 수월했을까.. 터미널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옆에 두고 빙빙 돌면서 결국 나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내가 한국에서 살던 부산의 경우 업무 상 김해, 창원 등을 갈 일이 많았는데 고속도로에서 길을 한번 잘못 들면 1시간이 지나고 시를 하나 넘어갔다 와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뒤집어 놓으니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참다못한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웬만하면 전화를 걸지 않으려 했는데, 무언가 잘 못된 것은 이미 직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이 짐들과 딸만 놔두고 화장실을 갈 수 없기에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하여 전화를 하였다 한다. 이제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빨리 가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는 정신을 차리고 일단 공항 방향으로 가기 위한 출구로 나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 지시를 보고 빠져나갔다. 공항 근처로 가서 나는 내비게이션을 모두 꺼버리고, 차들이 가장 많이 향하고 있는 곳, 그리고 이정표를 보며 결국 스스로의 감으로 공항 터미널과 연계된 주차장을 찾았다. 주차장에 들어온 후 마지막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터미널은 2개이고 주차장의 어느 방향이 어느 터미널과 가까운지 쓰여 있지 않았다. 이 또한 감을 믿고 내가 생각한 방향의 끝까지 간 결과 결국 맞았다.

그렇게 나는, 우리 가족은 머나먼 미국 땅에서 감격의 상봉을 하는데.. 내가 렌터카를 찾겠다고 헤어진 지 약 2시간 만이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차를 찾고, 빠르게 달려 6시 안에 미리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저녁을 먹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거의 5시가 다되어 만나 이렇게 그냥 가면 저녁도 못 먹고 지친다.. 공항 내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 많이 비싸도 커피와 식사가 될 수 있는 빵류를 샀고, 딸의 간식거리도 샀다. 말이 거창하지 커피 2잔, 말라비틀어진 빵 3개, 에너지바 같은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의 물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정말 한국에서는 절대 사 먹지 못할 말도 안 될 가격(약 7만 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포틀랜드로 드디어 출발하였다! 이제 가족도 만났기에 어차피 늦은 거 애플카플레이는 제대로 세팅하고 가자고 하여 차분히 살펴보고 차에 저장되어 있던 다른 기기들을 모두 지우니 허무하게 연결이 잘 되었다. 그 후 목적지를 설정하고 운전을 시작하였다. 내비게이션은 살면서 처음 보는 스케일을 보여주었는데, 직진 320Km 와 같은 무지막지한 숫자를 제시하였다. 입국 후 약 2달이 지난 현재 미국에서 이곳저곳 다녀보니 이 정도는 보통의 거리임을 지금은 알고 있다. 우리가 늦게 출발하였기에 하필 퇴근 시간대에 딱 걸렸고,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10시가 조금 넘었다. 4시간이 넘는 거리를 한 번에 운전해서 도착하였다. 가다가 쉬면 뻗는다라는 생각이 너무나 강했었다.

밤늦게 돌아다니기는 너무나 험난한 분위기의 주택가, 너무나 배고픈 우리는 쌀도 계속 씹으면 단 맛이 나온다고 하니 맨밥이라도 먹자는 심산이었다. 차에 짐을 두면 도난의 위험이 있기에, 많은 짐을 숙소로 옮기고 일단 먼저 세수를 하였다. 호스트가 준비해 둔 것이 무엇이 있나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믹스 너트류, 에너지바, 초콜릿, 과자, 와인들이 눈에 보였다. 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밥 대신 여러 가지를 흡입하고 내일은 알람 맞추지 말고 잘 때까지 자자며 잠을 청했다.

나는 완전히 지쳤고, 부인은 짐을 풀며 첫 번째 숙소에서의, 앞으로의 미국 생활을 말없이 담담하게 준비하였으며, 딸은 한국어가 나오는 유튜브를 TV로 보며 좋아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 시절 네덜란드에 교환학생을 갔었고, 유학생들끼리 미드를 보며 겨우 영어 콘텐츠와 한글 자막을 구해 보던 기억이 마지막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그때 딸은 물었다. "미국에 와서 뭐가 좋은 거야?".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 가족 모두 미국 생활은 처음이니까.. 그냥 주위에서 좋았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 전공 상 새로운 스타트업, 비즈니스, 서비스나 제품을 먼저 체험해 볼 수 있고, 연구를 위하여 사례를 보기에도 미국이 좋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를 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딸에게 웃으면서 앞으로 같이 알아가 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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