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5. 캐나다 헬스케어 PointClickCare

온타리오에 시작한 유니콘 :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by 지역이음이

실리콘밸리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꿀 원대한 비전, 파괴적 혁신, 그리고 수십억 달러의 기업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런 화려함 속에 있지 않다. 진짜 이야기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장, 자금이 바닥나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는 절망, 그리고 투자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문을 닫아버릴 때 시작된다.


PointClickCare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섹시하지 않다.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 캐나다 미시소거라는 변방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기술 기업들이 무시하던 장기요양시설, 연필과 종이 서류가 여전히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그곳에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창업가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1. 아이디어는 총알이 아니다: 고객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다


창업가들은 종종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성공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틀렸다.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 진짜는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PointClickCare의 공동 창업자 마이크 웨싱어는 기술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장기요양시설에 기술 제품을 파는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기술이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매일 목격했다. 환자 정보는 종이 서류에 수기로 작성되고 있었고 , 이로 인한 비효율과 오류는 환자의 케어 품질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그는 이 시장이 "매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는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고객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에 집중했다. 마이크와 그의 형 데이브 웨싱어는 어머니를 통해 이 산업과 개인적인 연결고리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한 열정에서 비롯된 사명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고객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파고들었다. 이것이 위대한 기업가정신의 첫 번째 특징이다. 시장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것.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할 정도로 몰입했던 그의 모습은, 그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사였음을 보여준다.


2. "엄마, 아빠, 그리고 하키팀 친구들": 닷컴 버블 붕괴 속에서의 생존


훌륭한 아이디어와 불타는 열정이 있어도, 현실의 벽은 높다. 웨싱어 형제가 PointClickCare를 설립한 시기는 최악이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며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노인들의 건강 기록을 온라인에 올리겠다"는 아이디어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 정신 나간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마이크 웨싱어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에게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은 '엄마', '아빠', '삼촌', '이모', 그리고 '하키팀 친구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업의 ‘어려운 진실’이다. 당신의 비전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당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첫 7년간 그들이 조달한 돈은 고작 60만 달러였다. 이 돈으로 회사를 시작한 순간, 성공에 대한 책임감은 단순한 비즈니스 목표를 넘어 개인적인 의무감이 된다.


이러한 자금 부족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마이크 웨싱어는 "사람들에게 제약을 가하지 않으면 혁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이 부족했기에 그들은 고객에게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데만 집중해야만 했다. 고객 만족이 곧 회사의 생존("모기지 지불")과 직결되는 절박함이 그들의 DNA에 "악착같은 근성"을 심어주었다.


3. 2004년의 나락: 거의 모든 것을 잃을 뻔하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반드시 죽음의 계곡을 건너게 된다. PointClickCare에게 그 순간은 2004년에 찾아왔다. 그들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유는 명확했다. 너무 많은 시장을 너무 빨리 공략하려 했기 때문이다. 초점을 잃고 자원을 분산시키면서 그들은 핵심을 놓쳤다.


이 위기를 통해 그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집중의 힘: 수많은 시장에 얕게 진출하는 것보다 하나의 핵심 시장에서 깊은 전문성을 갖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

고객이 왕이다: 단기적인 매출 성장보다 고객 만족이 우선되어야 한다.

올바른 시장: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만큼이나 올바른 타겟 시장을 선택하는 것이 생존에 결정적이다.


이것이 바로 전쟁 중인 CEO가 내려야 할 결정이다. 모든 전선에서 싸울 수는 없다.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전선을 선택하고, 모든 화력을 그곳에 집중해야 한다.


4. 역발상: 클라우드와 30일 해지 조항


살아남기 위해 PointClickCare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했다. 바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모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들은 이미 구독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웨싱어 자신도 당시에는 그걸 'SaaS'라고 부르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업계의 판도를 바꾸는 수가 되었다.


그들의 접근법은 대담했다.

초기 비용 제거: 기술에 보수적인 요양시설들이 값비싼 서버를 구매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

30일 해지 조항: 업계 최초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30일 안에 해지하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제품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는 선언이다. 고객의 위험을 회사가 떠안음으로써, 그들은 기술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을 허물었다. 이는 자금도, 명성도 없던 회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 즉 제품에 대한 확신과 고객 문제 해결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전략이었다.


5. 창업가의 덕목: "그릿 지수 (Grit Quotient)"


결국 회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마이크 웨싱어는 그것을 "그릿 지수(grit quotient)"라고 부른다. IQ나 EQ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살아남는 사람은 벽을 만나면 위로 넘든, 아래로 기어가든, 어떻게든 돌파해 내는 투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PointClickCare의 역사는 이 '그릿'의 증거다.

헌신: 마이크 웨싱어는 가족들이 "같이 식탁에 있어도 당신은 여기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 이것은 희생이다. 창업가는 기꺼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겸손: 그는 스스로를 "업계 밖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개인의 명성보다 실질적인 성과가 말하도록 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것은 과시하지 않는 캐나다적 정신이자, 내실 있는 성장을 이끈 동력이다.

책임감: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돈으로 회사를 시작했기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 책임감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데이브 웨싱어 역시 "서로를 배려하는 환경이 성공을 키운다"는 신념 아래, 사람 중심의 문화를 구축했다. 사람(People), 열정(Passion), 성과(Performance)라는 3P 가치는 이 회사가 12년 연속 캐나다 최고 관리 기업으로 선정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6. 전략적 'No': IPO를 거부하고 금융 요새를 구축하다


수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시장은 마침내 그들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1년 JMI Management로부터 5,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첫 번째 기관 검증을 받았다. 회사는 꾸준히 성장하여 2016년에는 이미 연 매출 1억 6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흑자를 내고 있었다.


이때 대부분의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화려하게 시장에 데뷔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PointClickCare 역시 2015년에 IPO를 신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2017년, 돌연 IPO 계획을 철회했다. 이것이 바로 전시 CEO와 평시 CEO를 가르는 결정이다. 평시 CEO는 눈앞의 이익을 좇지만, 전시 CEO는 장기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IPO 철회는 신의 한 수였다. 그들은 상장 기업으로서 분기별 실적 보고와 주주들의 단기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대신,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실행할 자유를 얻었다. 이 자유를 바탕으로 그들은 가치 기반 케어(VBC)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고, 복잡한 인수합병 전략을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다.


결과는 숫자가 증명한다. 잠재적 IPO 가치가 10억 달러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는, Hellman & Friedman, Dragoneer와 같은 장기적 파트너들과 손을 잡았다. 그 결과 기업가치는 2021년 40억 달러를 거쳐 , 2024년에는 연간 반복 매출(ARR) 5억 달러, 기업가치 50억 달러 이상을 자랑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돈을 태우며 성장에만 집착하는 전형적인 유니콘들과는 다른, 수익성 있는 성장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7. 캐나다라는 앵커: 홈그라운드를 무기로 바꾸다


대부분의 창업가들은 매출의 95%가 미국에서 나온다면, 주저 없이 본사를 실리콘밸리로 옮겼을 것이다. VC들은 그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압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웨싱어 형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캐나다에 남았다. 이것은 단순한 애향심이 아니다. 이것은 통제권을 유지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이었다.


그들은 캐나다라는 홈그라운드를 경쟁 우위를 위한 비밀 무기로 만들었다.


인재 확보의 역발상: 처음에는 캐나다에 대규모 테크 기업 경험을 가진 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실이 어디든 최고의 사람을 모신다"는 철학으로 일찍부터 원격 근무 문화를 도입했다. 이는 코로나19가 닥치기 훨씬 전에 이미 분산된 팀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축적하게 만들었다. 이후 토론토-워털루 혁신 코리더가 성장하자, 현지 대학의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기 위해 개발 허브를 설립하며 지역 생태계를 적극 활용했다.


최고의 테스트베드: 캐나다 정부가 지원하는 CAN Health Network 참여는 신의 한 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캐나다의 단일 지불자 보건 시스템 내에서 자사의 신기술을 직접 시험할 수 있었다. 이는 거대하고 복잡한 미국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위험 부담이 적은 환경에서 제품을 완벽하게 다듬을 수 있는 이상적인 시험장이 되어 주었다.


숨겨진 경쟁 우위: 캐나다의 개방적인 이민 정책은 미국 기업들과의 인재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마이크 웨싱어는 지구 반대편의 인재를 몇 주 안에 회사로 데려올 수 있는 이점을 경쟁 우위로 꼽았다.


PointClickCare는 캐나다에 단순히 머무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역 생태계를 활용하고, 그 성과를 다시 지역에 환원하며, 캐나다 자체를 자신들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만들었다.


8.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미래의 전장


초기의 고난과 인내, 그리고 집중은 결국 강력한 경쟁 우위로 돌아왔다.


네트워크 효과: 북미 27,000개 이상의 의료 기관, 3,100개 이상의 병원, 그리고 미국의 모든 주요 건강 보험사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새로운 경쟁자가 넘볼 수 없는 해자를 구축했다.


데이터 해자: 북미 최대 규모의 장기요양(LTPAC) 데이터셋은 더 나은 AI 기반 예측 분석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높은 전환 비용: 그들의 플랫폼은 고객의 핵심 업무 프로세스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어, 한번 도입하면 다른 시스템으로 바꾸기 어렵다.


물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AI 기술의 표준화, '정보 차단'과 관련된 규제 압력, 그리고 플랫폼으로서 파트너와 경쟁해야 하는 딜레마는 그들이 마주한 새로운 전장이다.


하지만 PointClickCare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위대한 기업은 종종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불굴의 의지를 가진 창업가들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화려한 비전 대신 고객의 고통에 집중했고, VC의 투자 대신 가족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섰으며, 절망의 순간에 가장 대담한 혁신을 감행했다. 그것이 바로 '어려운 일'의 본질이며, 진정한 기업가정신의 정수다.


※ 이 글은 Google Gemini, Chatgpt, Perplexity 등 인공지능과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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