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93.2점의 판결 :진주(珍酒)의 탄생
1985년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국가 차원의 최고위급 주류 감정회가 열렸다. 장소는 준이시 석자포의 시험 공장.
심사위원단의 면면은 화려했다. 중국 바이주 업계의 태두 주항강(周恒剛)이 조장을 맡았고, 훗날 '마오타이의 대부'라 불리게 되는 계극량(季克良) 등 20여 명의 국가급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평가 방식은 엄격한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원조 마오타이주와 시험 공장에서 만든 술을 라벨 없이 나란히 놓고 맛보는 방식이었다. 10년의 노력이 이 순간에 판가름 나는 것이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93.2점(시험주) vs 95.2점(마오타이주)
2점 차이. 100점 만점에서 93.2점이면 분명 고득점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오타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감정 위원회는 최종 감정서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
"색이 맑고 약간 황색 투명, 장향이 돌출하며, 우아하고 세밀하며, 부드럽고 달콤하다... 기본적으로 마오타이주의 풍격을 갖추었다(基本具有茅台酒風格)."
이 "기본적으로 갖추었다"라는 표현은 절묘했다.
기술적으로는 마오타이의 품질에 상당히 근접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원조 마오타이와는 미묘하게 다른 개성을 지녔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아닌 판정이었다.
10년간 원료, 설비, 기술, 인력, 심지어 흙과 먼지까지 똑같이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130km 떨어진 곳에서는 마오타이와 100% 동일한 술이 나오지 않았다. 2점의 차이는 숫자로는 작아 보이지만, 그 의미는 심대했다.
실험은 과학적으로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마오타이 복제'라는 원래 목표 관점에서는 실패였다.
그렇다면 이 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이 술에 '마오타이 2공장'이나 '준이 마오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이 술만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기로 했다.
1985년 12월, 당시 부총리였던 방의(方毅)가 이 술을 시음했다. 그는 감탄하며 붓을 들어 네 글자를 썼다.
"酒中珍品(주중진품)" — 술 중의 보물.
이 휘호에서 '珍(진)'자를 따와, 시험 공장의 술은 '진주(珍酒)'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86년 6월 11일, 시험 공장은 '귀주진주창(貴州珍酒廠)'으로 정식 명칭을 변경하고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 마오타이와는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기업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마오타이를 복제하려던 10년의 시도가 '진주'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후 두 술의 운명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마오타이는 역설적이게도 준이로 이전하지 않고도 저우언라이의 '1만 톤' 꿈을 마오타이진 안에서 이루어냈다. 계극량의 주도 하에 환경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공정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2003년에는 1만 톤을 돌파했고, 2009년에는 2만 3천 톤에 도달했다.
진주는 시장경제의 파고 속에서 고전했다. "마오타이와 똑같은 술"이라는 마케팅은 역설적으로 '아류'라는 인식을 주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무리한 확장과 시장 침체가 겹치며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민간 자본에 인수된 진주는 "국가 1호 공정"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재발굴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23년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홍콩 증시 바이주 1호'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현재 연간 4만 4천 톤을 생산하는 구이저우성 제3위 바이주 기업으로 성장했다.
10년 실험의 '부산물'이 어엿한 명주로 자리 잡은 것이다.
※ 이 글은 Google Gemini, Chatgpt, Perplexity, Claude 등 인공지능과 함께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