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핸드폰 오른쪽 끝에 세로줄이 생겼다. 형광 빛 연두색 줄이다. 어제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떨어뜨려 액정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한다. AS를 받으러 가야 하나. 다행히 줄이 한쪽 끝에 생겨 보는 데 큰 불편이 없으니 자꾸 미뤄진다. 아직은 쓸만한데, 혹시나 교체해야 하면 아까워서 어쩌나. 그래도 최신 핸드폰으로 바꿔 적응해 볼까. 처음 전화기라는 것을 잡았을 때만큼 당혹스럽지는 않겠지. 옛적을 생각하면, 전화기에 관한 한 나는 엄청난 문명인이 되어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 전화 왔다고 교무실로 부르셨다. 월남에 간 사촌 오빠가 있느냐고 물으시고는 눈짓으로 전화기를 가리킨다. 전화기 옆에 수화기가 내려져 있었다. 수화기를 잡아 귀로 가져갔다. 선생님이 웃으며, 수화기를 거꾸로 잡았다고 돌려 잡으라는 신호를 하신다. 얼마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전화를 끊고 돌아와 사촌오빠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났다. 전화라는 걸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통화를 어떻게 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괜히 학교로 전화한 사촌 오빠만 원망했다.
현재의 베트남에 파월장병으로 갔던 사촌오빠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국군 장병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 쓰기를 강력히 권고하던 때였다. 당연히 월남에 있는 사촌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친구에게도 써달라고 했다. 친구와 사촌오빠 간에 편지가 몇 번 오갔다. 나중에 생각하니, 사촌오빠는 그 친구가 보고 싶어 학교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전화 적응기가 또 있다. 서울 오빠 집에 다니러 가게 되었다. 마을 소꿉친구가 서울에 살고 있었다. 친구 어머니께 서울 가서 만나보고 오겠다며 전화번호를 받았다. ‘2 – 1234’ 번이다. 가게 옆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주황색 공중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2를 돌리고 다음의 – 표시를 돌리려고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도 창피했다. 결국은 연락을 못해 보고 돌아왔다. 지금 같으면 모른다는 게 뭐 그리 창피한 일이겠는가마는 그때는 그랬다. 행여 시골 촌사람이라고 웃을 것 같았다. 어렵게 서울이라는 곳까지 가서 친구를 못 만나고 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고유기능인 통신은 물론 생활 속의 많은 일들을 손 안에서 해결한다. 아마도 외부에 나가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어렵게 전화 문맹기를 거친 결과다. 그리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익히려는 의지다. 조금씩이라도 세상의 변화 속도에 따라가려 노력한다. 요즘 대세인 키오스크가 있는 곳을 일부러 이용하기도 한다. 그냥 생각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자손들과 소통도 안 되는 답답한 할머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대비다. 최신 핸드폰 기능을 따라 쓸 줄 알면 최소한 세상의 흐름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전화기 사용만으로도 가슴이 콩알만 하게 쭈그러들었던 내게, 온 세상이 다 들어 있는 스마트한 핸드폰이라는 날개를 달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