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코로나 후유증, 라일리 증후군
2021년 1월 14일 저녁에도 지상파 8시 뉴스에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보도가 나갔다. 정부 발표를 인용한 보도로 주로 탈모를 언급하면서 폐섬유화와 우울증, 피로감 그리고 운동 시 숨찬 증세나 근육 약화 및 수면 장애 등을 언급했다. 이 보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후각 상실과 미각 상실도 대표적인 코로나 후유증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후유증들은, 코로나를 독감과 같은 다른 유사 질병들로부터 구별해주는 특별한 증세가 되었다.
앞서 15회에서 지금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장례식은 짧아졌고, 요양병원은 면회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우리는 ‘이방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장례식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요양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점점 줄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앞 단락의 따옴표 부분은 메스트로비치가 쓴 ‘탈감정사회’에서 옮겨온 것이다. 코로나가 오기 훨씬 이전인 20세기 말에 쓴 책이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잘 맞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 시대가 이전 시대와 비교하여 희생자임에 대한 새로운 숭배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특정 집단에 속할 때에만 그 사람이 희생자로서 자격을 갖는다’고 말한다. 오늘날 희생자가 된 사람이건 희생자를 애도하는 사람이건, 카메라 앞에서 너무나도 기꺼이 자신의 감정을 재연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연출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탈감정사회’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사적이어야 할 감정이,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의 ‘맥도날드화’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먹는다는 것은 TV서 나온 먹방 프로그램의 리액션을 따라 하는 행위다. 그것은 우리의 미각세포에 의존하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인 행위에 동참하는 의식이다. 우리는 진실한 의미에서 미각세포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점점 죽음에 무관심해져 가던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진정한 애도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죽음을 애도할 때, 가까이 2019년에 코로나와 유사한 질병으로 돌아가신 분들, 호흡기 결핵으로 돌아가신 1,492명과, 만성하기도질환으로 돌아가신 6,176명과, 코로나와 가장 유사하게 폐렴으로 돌아가신 23,168명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하여 특별한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희생자뿐 아니라, 특별한 후유증들이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초기부터 논란이 되었던 폐섬유화는, 우리가 허파꽈리라 부르는 폐포 사이의 섬유질이 두꺼워져 탄력을 잃는 증세를 말한다. 요즘은 폐섬유증이라 한다. 코로나뿐 아니라, 폐렴을 앓고 나면 생길 수 있는 후유증이다. 이번에 판결이 나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습기나 분진이 원인이기도 하고, 자가면역성 질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심지어 역류성 식도염과도 관련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폐섬유화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나이를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근육 약화'라니, 병원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게 근육 약화다. 우리가 요양병원에 입소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장 크고, 피할 수 없는 증세가 근육 약화다. 후유증이라기보다 암이나 당뇨만큼 피하고 싶은 '신종노인성케어증후군'이라는 이름의 ‘병’이다.
작년 11월 말, 중앙임상위는 기자회견 대신 간담회를 열었다. 다른 이슈도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도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은 ‘코로나19를 앓고 나면 신경계나 심혈관계 합병증이 있을 수 있지만 독감도 혈관이나 신경계 합병증이 있다’면서 ‘코로나19 후유증이 결코 독감에 비해 심한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중앙임상위는 ‘코로나19 환자 전체를 생각하면 후유증을 겪는 환자는 많지 않다는 게 중앙임상위의 공통적 의견이며, 탈모나 피곤감, 우울증 등은 다른 질병에서도 관찰된다’고 덧붙였다.
후각 상실과 미각 상실은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감기나 독감을 앓았던 사람들은 잠시 기억을 떠올려보라. 앓고 있을 때도 그랬고, 앓고 난 후에도 한동안 경험했던 일이다. 물론 혀의 상피세포에 ACE2 수용체가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져, 코로나19 감염 초기에 미각 장애가 많이 나타나는 것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후각 수용체를 통해 후각 신경을 타고 올라가 신경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후유증의 강도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각이나 후각의 상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미각이나 후각 등 우리 감각의 최종 재판관은 뇌이다. 특히 대뇌 겉질이 최종 심급에 있다.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이 최종 법원까지 가는 경로가 다르다. 청각이나 시각이나 미각과 달리 후각만 변연계를 경유지로 삼는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어떤 질병보다 특별할지 모른다. 변연계는 우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다. 잠시 이곳에 들른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른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공포와 두려움의 스위치만 남겨 놓은 채 유유히 자리를 뜬다. 불쌍한 라일리는 피곤하고, 우울하며, 밥맛이 없고, 베개에서는 어릴 적 행복했던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