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은 질문
그 오징어(1)에 이어집니다.
어제 올린 글에서 수정했습니다.
최종본입니다.
나는 언제나 은영과 함께했다. 은영이 내 곁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면서도, 내 옆엔 그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기에 나는 늘 은영을 내 눈에서 벗어나지 않게 했다. 그건 은영이 바랬던 걸지도 모른다. 그는 적당한 때에 나에게 이런저런 것을 제안했고, 나는 쉽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밀쳐내면서 말이다. 전시회도 그랬다. 은영은 내게 그것을 제안했고, 나는 어찌되었든 그와 전시회장에 와 있다. 이렇게.
K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사십 층의 건물에서 한 개의 층을 빌려 하는 전시. 복합문화센터라며 지어놓은 건물이지만, 문화의 요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쇼핑센터가 가득한 소비의 건물이었다. 전시회장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두세명이 지나다니며 꽃을 놓았고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유화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에 대한 것이었다. 바다 속의 거북이, 물고기, 헤엄치는 사람, 바다 위의 배 같은 것들. 푸른색이 가득했지만, 작품마다 그 푸른빛이 조금씩 달랐다. 어느 그림은 창백한 푸른빛이었고, 어느 그림은 맑은 푸른빛이었다. 질감은 거칠었고, 그 안에서 온갖 대상물은 바다 속에 표류하면서도 강렬히 빛났다.
은영이 멈춰 선 그림은 오징어가 그려져 있었다. 깊은 바닷속에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오징어. 푸른빛은 공허했고, 오징어는 축구공만한 눈으로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다리를 흐느적거리고 있다. 은영은 한참동안 그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목은 ‘공(空)’ 이다. 제목대로 비어 있는 느낌이지만, 뭐가 비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은영은 한참 뒤에 말을 꺼냈다.
K 다운 그림이네.
K 다운 게 뭐지. 얘랑 K랑 잘 아는 사이인가? 그런 것 같진 않았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 K와 은영을 떠올렸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야자시간에 감독교사 몰래 친구와 영화를 보던 K와 늘 말이 없던 은영이었다. 그와 동시에 후덥지근한 남고생들의 교실 공기가 머리 위로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너 K 잘 알아?
아니.
또 다시. 늘 이런 식이다. 다 알고 있다는 말투.
근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K 다운 그림이라니.
은영은 찬찬히 내 표정을 살피곤 말했다.
그냥.
우리는 말없이 돌아왔다.
잠자리를 가졌지만 우리는 건조한 관계를 유지했다. 평소처럼 거리를 뒀고, 평소처럼 붙어 다녔다. 나는 가끔 Y를 떠올렸고, 그녀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던 게 그토록 잘못된 일이었나 되짚었다. 술을 마시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고,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시회를 다녀온 몇일 후 은영이 내게 찾아왔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소주와 마른오징어를 사들고 와서는 방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소주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곧 직접 오징어를 구워왔다. 의아한 모습을 보며 뭔가 일이 생긴 거라고 직감했다. 나는 그런 은영을 말없이 받아들였고, 술이 약한 은영은 곧 취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K가 불쌍하다, 그림은 좋은 것이다, 넌 나쁜 놈이다, 나는 Y가 싫다 같은 말들. 혀가 뒤엉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더니 씹던 오징어를 내려놓고 말했다.
그 그림이 꿈에 나왔어.
무슨.
나는 은영이 질겅이던 오징어 다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징어. 아주 큰 오징어. 눈이 축구공만 하던.
공(空). 나는 그 거대한 허무가 바다를 헤엄치는 모습을 떠올렸다. 공허한 붓칠. 은영은 풀린 눈과 붉어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너는 나쁜 놈이야.
왜.
끝이 헤진 오징어 다리 위로 은영의 눈물이 떨어졌다.
K가 불쌍하지도 않아?
그러더니 곧 내 품에서 골아 떨어졌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은영을 안고 생각했다. 왜 하필 바다였을까. 내가 왜 나쁜 놈일까. 은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곧 술잔을 옆으로 밀어놓고 침대 위로 은영을 옮겼다. 은영을 안고 자야 할까, 아니면 그냥 자야 할까. 은영과 함께 누워야 할까, 바닥에 누워야 할까. 은영은 잠꼬대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들었다. 나는 침대 밑에 누웠다. 오늘은 그의 옆에서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K를 떠올렸다. 언제나 셔츠단추를 풀어헤치고 나에게 이런저런 농을 걸던 K를. 은영은 K가 불쌍하다 했다. 그가 그린 그림을 생각했다. 푸른빛은 제각기였지만, 그림은 하나같이 어딘가 쓸쓸했다. 그 그림을 생각하면 그가 불쌍하다는 은영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왜 바다여야 했을까.
곧 은영의 꿈에 나온 그림을 떠올렸다. 거대한 허무가 헤엄치는 그림을. 오징어의 다리에는 뭔가 잡히는 것이 있을까. 빨판이 있으니 잡히는 게 있기야 하겠지. 그런데 혹시 다리에 잡히는 모든 것은 미끄러지며 빠져나가지 않을까, 그러니까 빨판에 힘을 더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온 힘을 쥐어짜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몽상을 했다. 아주 잠깐 오징어가 가엾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순간, 오징어가, 아주 큰 오징어 한 마리가 축구공만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천장을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오징어의 다리가 은영을 감았다 풀었다.
침대 위로 올라갔다. 결국 은영의 옆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몇일이 지나도록 은영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처음엔 숙취 때문에 집에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술도 못하는 놈이 그토록 마셔댔으니 별 수 없지. 하지만 은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은영의 방에도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방에 있는 집으로 내려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은영의 자취방 근처를 맴돌았다. 나중엔 그의 방에서 생활했다. 돌아오겠지. 결국 돌아올거야.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와 멀어지고 싶었지만, 막상 그가 멀어지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매일 스무 통이 넘게 전화를 걸었고, 수업도 나가지 않았다.
은영이 돌아온 것은 일주일 뒤다. 은영은 자신의 자취방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놀란 것 같았고, 곧 아무렇지 않게 할 일을 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그를 때렸다.
은영은 말없이 내 주먹과 발길질을 견뎠고, 나는 욕을 하며 은영의 몸에 푸른 자국을 남겼다. 개새끼, 이 씨발놈아, 진짜 뒈지고 싶냐? 은영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멍 자국이 가득한 은영을 끌어안고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Y의 생각을 했고, K의 생각을 했고, 오징어생각을 했고, 은영의 생각을 했다. 은영은 내 품에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나는 다시 그를 안았다.
K가 죽었대.
은영은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은영의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잘은 몰라 나도. 친구한테 들었어.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은영을 안은 채로 풀어헤친 K의 교복을, 실밥이 풀린 교복 단추를, 쾌활하게 웃던 K를, 그러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그를 생각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은영이었다.
정말 몰랐어?
뭐가.
은영은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K가 너 좋아했었는데.
불이 나간 형광등을 바라보며 은영의 말을 곱씹었다. 날 좋아했었다. 그가 날. 갑자기 은영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닿고 싶어도 가 닿을 수 없는 사람. 난 은영과 멀어지고 싶어 하던 게 아니었나. 그를 꼭 껴안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형광등을 바라보면서.
다음 날 수업을 가려는 은영을 뜯어말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워낙 심하게 맞은지라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소견을 들었다. 나는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은영에게 말했다.
미안해.
뭐가.
그냥 다.
괜찮아. 됐어.
단추를 채우는 은영의 손은 참 작았다. 인상을 쓰며 단추를 꼬깃꼬깃 채우는 게 힘겨워 보였다. 은영의 손을 치우고 내가 단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있잖아.
그에게 뭔가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말고도 다른 말이. 난감한 것은 있잖아- 하고 말을 꺼냈지만,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은영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 걸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니, 나는 그 말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뱉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은영이 불편했다.
아니야.
은영은 단추를 채우는 내 손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래.
입원실을 나올 때 끈끈한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은영은 공허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이 K의 그것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다시 은영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은영의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K생각을 했다. 이 녀석은 K를 알고 있을까.
있잖아.
침묵.
너 K 알아?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기척이 들렸다. 곧 말했다.
네.
어떻게 알아?
은영이형이 자주 말했었어요.
그래.
다시 침묵.
은영이가 걔를 어떻게 아는지 알고 있어?
그게요.
은영의 동생은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둘 다 서로를 잘 모른다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냥. 그런 느낌이 있었대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나는 은영의 말투를 떠올렸다. 은영이 그의 입으로 둘 다 서로 잘 몰라 그냥 그런 느낌이 있어 서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했다.
김은영이 그렇게 말했었니.
아니요.
그럼?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엔 길었다. 나는 형광등을 갈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K 형이요.
잠시 형광등의 불빛이 들어왔다 나갔다.
언제 만났는데.
어제요.
수화기를 내려놨다. 형광등은 갈지 않기로 했다.
은영은 K가 죽었다 했었다. 억울했다. 뭐가 억울한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억울했다. 이불을 말고 희미한 은영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꿈속엔 거대한 허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길이 9미터의, 축구공만한 눈을 굴리는, 거대한 허무가 환자복을 입은 은영을 감싸 안았다. 그것은 내 근처에서 헤엄을 치더니 곧 나도 감싸 안았다. 나는 오징어의 빨판을 느꼈다. 오징어가 힘을 주면 강하게 들러붙는 그것을. 은영은 내게서 너무 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았다. 오징어 다리는 내 목과 은영의 목을 졸랐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은영은 힘겹게 넌 나쁜 놈이야 하고 말했다.
꿈에서 깨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울었다. 은영과 K와 Y를 감싸던 허무가 내게 찾아왔고 나는 그 허무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K와 연락이 될 방법은 없었고, Y에겐 전화를 걸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은영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하지 못했다. 은영의 전화를 받을 사람은 없는데다 은영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은영의 말대로 나는 나쁜 놈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렇게 떨어진다. 은영이 그랬던 것처럼. 높이 사십 층의 건물에서 수직낙하한다. 세찬 공기를 맞는 지금, 어떤 느낌도 없다. 늘 그랬듯, 은영이 선택한 것을 똑같이 선택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떼어놓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손을 내밀면 공(空)만이 잡히는. 나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은영의 그림자가 되겠다. 은영이 나의 그림자가 되어주던 것처럼.
이십 팔 층쯤 되었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은영이었다.
은영은 오징어 꿈을 꿀 것이다. 내가 본 오징어를 볼 것이다. 길이 9미터의, 축구공만한 눈을 굴리는, 거대한 허무가 은영의 꿈속을 유유히 헤엄칠 것이다. 그 꿈속에서 은영은 졸린 목으로 나에게 넌 나쁜 놈이야 하고 힘겹게 말할 것이다. 그 때 나는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병신같이.
그가 보고싶다.
-fin
32. 한 남자가 40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28층을 지날 무렵 핸드폰 벨소리를 듣고 뛰어내린 것을 후회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