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은 질문
01 그 오징어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01-1
그 오정이 부부는
싸울 때
서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01-2
그 오징어 부부는
다리가 뒤엉킨 채
징하고 징그러운 세월을 살아왔다
01-3
그 오징어는 죽을 때
혼자
다리로 얼굴을 감싸고 울지 모른다
01-4
눈이 축구공만한 초대왕오징어는 길이 9미터의 허무를 끌고 캄캄한 심해의 고요 속을 돌아다닌다, 라고 눈 오는 밤 백지에 쓴다
최승호 <그 오징어>
은영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니, 아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은영은 오래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통화가 연결되었을 때에는 그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영의 동생은 긴 침묵 끝에 건조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우리 형은 죽었어요.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수화기 너머의 말을 되뇌었다. 죽었다. 은영은 죽었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그가 덧붙였다.
형이랑 같이 갔던 전시회장 건물 있죠. 거기서 떨어져 죽었어요. 자살이요.
나는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은영은 나와 함께 갔던 전시회장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침대로 돌아와 은영을 떠올렸다. 베게에서 은영의 냄새가 흐릿하게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죽었다.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오래도록 은영의 냄새를 맡았다. 은영과 함께 전시회장에서 보았던, 은영의 꿈에 나타난 거대한 오징어를 떠올리면서.
은영과 내가 처음으로 몸을 섞은 건 몇 달 전이었다. Y와 헤어지고 돌아온 날이었다. 그녀는 짧은 단발을 뒤로 넘기며 자신이 나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그녀를 외롭게 했고, 늘 이기적이었다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나를 외롭게 했고, 늘 이기적이었다. 나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들을 되새기면서. 당신은 날 너무 외롭게 해. 게다가, 이기적이야. 그녀는 그녀의 말만 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것인 줄만 알았다.
오는 길에 소꿉친구인 은영을 떠올렸다. 그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와 술을 할지 생각했다. 안 될 것 같다. 그놈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걸. 집에 들어가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외투도 벗지 않고, 핸드폰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고 이불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불에서 그녀의 채취가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결국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뭐하냐.
나? 그냥.
수화기 너머에선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책 읽어?
응.
누구?
하루키.
야. 우리 집에 좀 와.
무슨 일 있어?
좀 와봐.
알았어. 아니, 그.......
은영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술 마셔야해?
마시기 싫음 말고. 넌 마시지 마. 술은 집에 있으니까.
알았어, 그럼. 그냥 간다.
우리는 늘 그랬다.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서로가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대학에 같은 과까지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은영은 내게 감정의 하수구 같은 존재였다. 내가 은영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나보다는 은영에게 어른스러운 면이 더 많았다. 나는 그에게 내 모든 감정을 쏟아냈고, 은영은 그런 나를 묵묵히 견뎠다. 나는 그런 은영과 함께 있는 것이 못견디게 힘들면서도 좋았다. 내 모든 것, 나의 치부까지 알고 있는 남자는 아무래도 거북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은영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나를 섬세히 이해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피하면서도 절실히 그를 찾았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헤어졌어, 나.
은영은 새우깡을 씹으며 말했다.
저런.
별로 놀란 것 같아 보이진 않네.
정말 그랬다. 은영은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조용히 새우깡을 먹으며 내 말을 들었다. 가끔 맥주를 홀짝였고, 멀뚱멀뚱 새우깡을 쳐다봤다.
음. 사실, 오래 가진 못하겠다는 생각은 했어.
나는 은영의 표정을 살폈다. 은영은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에게 어마어마한 일이 생겨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은영은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Y와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알고 있었어? 넌 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더라.
은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내 표정을 살폈다.
기분 나빠?
아니.
그래.
은영은 새우깡을 오물거리다 말했다.
너랑 안맞아 보였어.
나는 천장을 올려봤다. 형광등이 깜빡였다. 등을 갈아야 할 때가 온 건가.
뭐가 안맞아 보였는데?
그냥.
술을 못하는 은영이 별 수 없이 맥주를 홀짝였다. 살짝 붉어진 얼굴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맥주가 넘어가는 목을, 새우깡을 씹는 입술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는 그 날 두 가지를 알았다. 나도 남자와 잘 수 있다는 사실과 은영은 남자가 아니라면 몸을 섞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녀를 생각하며 은영을 품에 안았다. 형광등이 깜빡이더니 곧 빛을 잃었다. 우리는 말없이 형광등을 바라봤다. 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난 이기적인 사람인걸까. 은영이 말을 꺼냈다.
이번 주 주말 시간 돼?
주말? 별 일 없는데.
곧 내 말을 후회했다. 은영은 주말을 나와 함께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일이 있다 말했어야 했는데. 그래야 은영과 더는 엮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늦었다.
전시회가 있어. 네 친구 K 기억해?
나는 그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별 특징은 없는, 그러나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어. 알지.
그 사람 전시회를 한다던데.
나는 K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 놈이 전시회를 연다고? 그토록 특징 없던 인간이?
뭐야. 전혀 그럴 법한 인간이 아닌데. 뭐, 미술이라도 하는 거야?
나도 몰라. 여하튼, 가볼래?
은영과 함께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K 그놈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를 끌었다.
그래. 가보자.
형광등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등은 마지막으로 온 몸을 떨며 반짝이더니 곧 명멸해 버렸다. 은영은 품에서 잠들었다. 나는 Y를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외롭게 했던 걸까. 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 엉기는 부드러운 머리칼. 은영은 그녀와 내가 헤어질 걸 어떻게 알았을까.
몇일 후에 뒷이야기 업뎃하겠습니다.
오징어 관련 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네요.
비슷한 느낌의 해파리라도 올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