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번. 포물선

글쓰기 좋은 질문

by 도단

얼마 후면 그녀에게 이 소포가 도착할 것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날이면 그녀의 집으로 소포를 보낸다. 처음에는 편지도 같이 보냈지만 그녀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 관두었다. 내 마음을 대신하는 것들, 스웨터, 목도리, 수첩, 향수 같은 것만이 그녀의 집에 도착한다. 이혼한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을 접을 수 없다. 얼굴은 보지 않는다. 일 년 내내 그녀생각을 하다 때가 되면 선물을 보내는 것. 내가 그녀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다. 처음 몇 해는 전화가 걸려 왔었다.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이제 끝난 사이야...... 나는 미안해 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수화기 너머에선 한숨소리밖에 들리질 않았다. 이제 전화도 걸려오지 않는다. 소포는 제대로 도착한 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소포를 보낸다.

배송지를 옮겨 적는데 늙은 여자가 내 옆에 섰다. 가는 주름 선이 얼굴에 가득했고, 꽉 다문 입과 차가운 눈매가 엄하게 보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불현듯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보는 거지. 내가 사십이 넘었으니, 그래. 그녀는 칠십이 다 되어가겠구나. 어머니였다. 이십 년 동안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던 어머니. 편지봉투에 정성스레 주소를 적고 있었다. 말을 걸어야 하나. 옆에 선 이 남자가 아들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어머니는 우편주소 란에서 멈칫했다. 신 주소에 맞춰 나온 봉투라 예전 우편번호를 쓸 수 없다. 나는 말을 걸어 보기로 결심했다.

저, 제가 도와드릴까요?

어머니는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구석구석 뜯어보는 눈. 경계하고 있었다. 그 차가운 눈 때문에 잠시 망설였으나 역시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말했다.

아니요. 도와드릴게요.

그리고는 컴퓨터로 가 우편번호를 찾았다. 처음 보는 주소와 처음 보는 이름. 어디로 보내는 걸까. 무슨 사이인 걸까. 어머니는 이십 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낸 걸까. 용기 내어 물었다.

저, 저를 혹시 모르세요?

어머니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을 응시했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

이십 년이에요. 이십 년이란 시간 동안 한 번도 연락 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그냥, 제 잘못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아시죠? 설마 모르시진 않겠죠. 하지만 제 생각엔 어머니 잘못도 있었어요.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어머니는 제 어떤 마음도 받아들이질 않으셨잖아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여기 우편번호 있네요.

어머니는 내 말을 막으며 우편번호를 적고는 뒤돌았다. 여직원에게 편지를 맡기고 있다.

저, 제 말 좀......

죄송하지만,

그녀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네요.

차가운 눈초리. 내가 들어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무슨 말이지. 사람 잘못 봤다니. 어머니가 맞는데. 이름도 어머니 이름이고, 내 앞에 있는 이 늙은 여자는 어머니가 분명한데, 이게 무슨 말이지. 혹시 정말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걸까. 여자는 나를 남겨 두고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직원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소포를 붙였다. 화장품이 들어 있는 소포. 그녀에게 잘 도착할 것이다. 여직원은 상냥히 인사했고,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우체국을 나왔다. 어머니가, 그 여자가 저 앞에서 걷고 있었다.

정말 내가 잘못 본 걸까. 아니면, 나를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아했던 걸까. 하기야.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의 공백은 그만큼 길었고,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체부가 편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어머니인지, 잘못 본 여자인지 에게 눈을 떼지 못하자 말을 걸었다.

여보슈, 저 여자 아는 사람입니까?

아. 저. 잘못 봤다고 그러더라구요. 제가 아는 사람 같은데.

그런가.

서글서글한 얼굴선이 헬멧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저. 아는 분인가요?

아. 어디로 편지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매주 와요. 그 때문에 얼굴만 알고 있지. 말을 많이 하는 사람 같지도 않아서 몇 번 말도 안 해봤는데.

그런가요.

가벼운 무게로 내리는 눈송이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려오다 올라갔고, 올라가다 내려왔다. 옆으로 휘었고 다시 위로 떠올랐다. 어지러운 포물선의 궤적들. 우체부에게 물었다.

저, 근데, 혹시, 아들 얘기는 하지 않던가요?

아들? 잘 모르겠는데. 왜요. 무슨 사이요?

우체부는 갑자기 날 경계했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아들이라 말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거지. 왜 갑자기 나에게.

아니요. 뭐. 그냥요.

그렇습니까.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편지를 챙겨 넣고는 뒤돌았다. 오토바이를 끌고 가며 나를 흘긋흘긋 쳐다봤다.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도 가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포물선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직선으로 힘껏 내 마음을 보내도 힘없이 툭 떨어져버렸다. 어쩔 땐 너무 짧은 거리에서 떨어졌고 어쩔 땐 너무 멀리 나아가 버렸다. 어머니에게도, 그녀에게도 나는 포물선 같은 남자였다.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이 가닿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마음을 보내야 하는지, 왜 직선으로 바로 가지 않는지, 힘 조절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장소에 도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언제나 힘없이 툭툭 떨어져 그들의 발 언저리에 맴돌았다. 그들은 내 마음을 주워 올리지 않았다. 내 마음은 포물선이었다.

돌을 주웠다. 이번엔 제대로 던져볼 생각이었다. 선의로 가득했던 내 마음이 닿질 않는다면, 악의로 가득한 마음은 닿을 수 있을까. 직선으로 던졌다. 힘껏, 멀리, 아주 멀리 던졌다. 우체부에게 이 악의가 닿길 바라며 아주 멀리 던졌다.

돌은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힘없이 떨어졌다. 오토바이는 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의 악의는 닿질 않았다.

우체부는 몸을 한껏 떨었다. 불길한 것을 떨쳐내려 하듯.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는 눈이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어깨를 털고 몸을 떨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불길한 것을 떨쳐내기 위해.

어머니는 나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아니, 어머니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얼마 후면 그녀에게 소포가 도착할 것이다.


82. 20년 동안 만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지냈던 어머니와 아들이 12월 어느날 우체국에서 양손 가득 소포를 들고 줄 서 있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상황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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