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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단 Feb 20. 2016

반짝반짝 빛나는

   유치원 교사의 하루는 고달프다. 아홉시가 등원시간이어도 그 전에 아기들이 밀려오지, 애들은 말을 해도 듣지를 않지, 울기는 또 엄청 울고, 세 살짜리들이 고집은 있는 대로 부리는데다가, 까다로운 엄마들을 신경써야하고, cctv는 달려있지, 그렇다고 보육지원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맞벌이 엄마가 있으면 일곱시까지 당직을 서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보육교사에 대해 이토록 잘 알고 있는 것은 엄마가 유치원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사범대 학생으로서 엄마가 참 부럽다. 다른 교사가 아닌, “유치원”교사이기 때문이다. 질풍노도의 중고등학생을 상대하는 것보다야 좋은 일이지 않은가. 엄마도 내 의견에 동의한다. 원아들은 선생님 해바라기라고. 힘든 때가 많아도, 아이들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홀딱 넘어갈 때가 많다고.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화 하나.


- 민재야-. 엄마 오셨네? 이제 옷 갈아입어야지!

- 응.

   세 살짜리들에게 존댓말을 기대하면 안 된다. 민재는 제 엄마를 보지도 않고 옷장으로 곧장 걸어갔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랐다. 탄탄하게 말랐다. 얼마나 정신없이 장난을 하는지, 살이 찔 틈이 없다. 힘겹게 아디다스 패딩을 꺼내온 아이는 밤톨 같은 얼굴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 입혀줘.

- 왜. 민재가 입을 수 있잖아요.

- 선생님이. 선생님이 입혀줘.

   유난히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인지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얼마 전 밥먹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똘똘이를 지켜줄꺼야” 하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여동생을 지켜주겠다던 오빠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패딩은 대충 살펴봐도 값이 많이 나가 보였다. 메이커의 옷이었고, 가벼우나 보온감이 좋았다. 후드에 달린 라쿤털과 새파란 색이 눈에 띄었다.

- 어머. 우리 민재, 이 옷 멋지다!

   참고로 남자아이는 이쁘다는 말보단 멋지다는 말을 해줘야 좋아한다.

- 응. 멋지지.

- 그러게. 정말이네. 선생님도 입고 싶다!

   민재는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 선생님은 이런 옷 없어?

   이럴 땐 아이에게 맞춰줘야 한다.

- 응. 선생님은 이런 옷 없어. 멋지다, 민재야. 하나도 춥지 않겠네! 선생님은 이런 옷 없어서 추워.

   나는 울상을 지으며 추운 시늉을 했다. 아이는 옷을 입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오른팔까지 마저 입고 지퍼를 채우려는데, 민재가 손으로 제 가슴을 꾹 눌렀다.

- 선생님 여기 대.

   경력 30년의 교사라고 아이들과의 대화가 늘 쉽게 풀리는 건 아니다. 되묻고 또 되물어야 할 때가 많다.

- 응? 대라고?

- 응. 대.

- 여기 대? 왜?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아이는 늘 그렇듯, 침착한 어투로, 무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 안아주려구. 내가 녹여주려구.

   순간, 교실을 둘러싼 공기 위로 봄이 밀려왔다. 어두워진 길옆으로 가로등 불빛이 비춰들었다. 아이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안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좋아, 민재야. 선생님 좀 따뜻하게 해줘.

   우리는 현관에 엄마를 내버려둔 채, 잠시 동안 서로를 안았다. 패딩을 입어 부풀어 오른 아이의 몸이 품에 쏙 들어왔다. 민재는 끝까지 무덤덤했고, 봄은 떠나지 않았다. cctv아래에서 우리는 가장 따뜻한 봄을 맞고 있었다. 아이의 까만 눈이 어두운 창문위에 별이 되어 반짝였다.

   겨울이 소리 없이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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