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전 부인으로 되어 버렸다. 솔직히 지금 말하면 그때 나는 개인 사업을 해볼까 하여 생각 중에 있었다. 집안 형편도 가난하여 내세울 것도 없던 나인데. 결혼해 준 것만으로도 생각하면 고마울 따름이다. 결혼생활을 부모님 집에서 시작했다.
고부간의 갈등과 때마침 임신으로 작은 원룸에서 신혼을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다. 예쁜 딸도 얻게 되었고 없는 형편이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개인 사업도 꾸준히 하여 밥 안 굶을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결혼 4년 차 딸의 나이 4살 그리고 나의 나이 37세에 집안이 기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을 볼 수 없기에 시간이 흐른 뒤 여러 가지 사항으로 알게 되었다. 사업은 이혼 직전쯤에 상황이 좋지 않아 나 스스로도 고민과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집에 오면 밥 먹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초기에 전처는 ‘많이 힘들겠지.’
하며 나를 그냥 두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육아 우울증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전처는 집안의 막내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랄까? 이것은 이혼 후 여러 책을 보면서 나 스스로 생각한 것이다. 정답이다, 아니 다할 사항이 아니기에 내가 생각하는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 하는 아름다운 생명체이다. 지금 생각하면 시간이 얼마나 흘러 이혼을 생각하게 만든 것인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나중에 긴 장문의 메일로 온 이혼에 대한 글을 다시금 보니
‘내가 이래서 잘못한 게 많았네.’
이런저런 생각들로 아쉬움과 미안함 마음이 생겼다.
내용 중 글 하나가 기억난다.
“오빠 나도 딸을 사랑해 그리고 매일 밤마다 딸을 내 품에 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어, 오빠의 숨소리만 들어도 피부 닭살이 돋을 정도로 힘들었다.”
이혼을 해야 할지 그냥 살아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혼 결정을 하게 된 시점은 눈물이 더 이상 나지 않아, 이혼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나 자신도 시간이 흐르니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