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조금 더 믿을 만해진 나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by 에시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이미 마음은 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하지 말자고.

굳이 오늘일 필요는 없다고.


하기 싫은 일은 늘 그렇게 다가온다.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먼저 무거워진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빠져 있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일.


그래서 나는 안다.

이걸 해내는 순간의 기쁨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버텨냈다는 감각에서 온다는 것을.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한 줄을 쓰고,

파일 하나를 열고,

책 한권을 펼친다.

손은 느리고 마음은 자꾸 다른 데로 도망가지만

그래도 멈추지는 않는다.


그 과정은 전혀 멋있지 않다.

집중력도 완벽하지 않고

결과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내고 나면

내 안에 조용한 온기가 남는다.


“그래도 했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과로 드러나지 않아도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하나 지켜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믿게 된다.


이 대견함은

자존감이 무너질 때마다

천천히 쌓아 올린 작은 증거 같다.

나는 늘 의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일 수는 있다는 증거.


하기 싫은 일을 해낸 날의 밤은

이상하게도 조용히 편안하다.

잘 해냈다는 환희보다는

도망치지 않았다는 안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안도는

다음번에도 다시

한 발짝 나아가게 만든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날에도

자기 자신을 데리고 끝까지 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마지못해 해낸 어떤 일 하나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믿을 만해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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