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별로인 어른이다.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by 에시

‘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어른이 된다는 건 충분히 단단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누군가의 기대에 적어도 절반쯤은 부응할 줄 아는

존재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어른이 된 뒤에

오히려 더 자주 흔들리고,

더 자주 작아지고,

더 자주 후회한다.


어릴 때는 ‘나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 그대로가

‘내가 살아온 결과’ 같아서,

때때로 숨이 막힐 만큼 무겁다.


실수하면 ‘미숙함’이 아니라 ‘한계’처럼 느껴지고,

버거우면 ‘성장이 필요하다’가 아니라

‘역시 난 안 되는구나’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는 생각보다 별로인 어른이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될 때도 있고,

해야 할 일을 마지막까지 미루기도 하고,

타인의 인정에 과하게 흔들릴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나쁜 선택인 걸 알면서도 편한 길로 돌아갈 때가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나를 가장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주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별로인 나’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어른이 됐다고 해서 완성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시행착오로 만들어지는 존재이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업그레이드되는 상품도 아니다.

내가 별로인 어른인 순간들 또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일 뿐이다.


어쩌면 별로인 날들이 쌓인 덕분에

중요한 걸 배웠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선택하는 힘이라는 걸.


감정이 흔들렸던 날,

멈췄던 날,

도망치고 싶었던 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조차도

그날을 지나온 나에게는 작은 의미가 남는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른답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또 별로인 어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말해본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계속 살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이 모습대로도 충분히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때로는 별로인 어른인 채로 살아도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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