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황장목은 사라졌지만
거듭 태어난 황장산

경상도의 산 11

by 장순영

전국에서 손꼽는 오지마을에 토박이보다 많은 귀농 인구가 늘어

오미자를 재배하고 가공하며 또 오미자 맥주까지 생산하고 있다.

황장산을 찾는 산객들까지 늘어나며

두메산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경상북도 문경시에 소재하는 황장산黃腸山은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皇廷山이라고도 하였으며 봉산이라는 표지석이 있기도 한데, 봉산封山이란 나라에서 궁전, 재궁 혹은 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해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보호하는 산을 말한다.

1680년 조선 숙종 때 이 산에서의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시 황장목을 베면 곤장 100대의 중형이 내려졌다고 한다. 황장산에서 생산되는 금강송인 황장목은 일반 소나무와 달리 재질이 단단하고 굵고 길며 목재의 균열이 거의 없어 왕실의 장례용 관棺이나 대궐을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

흥선 대원군이 이 산의 황장목을 베어 경복궁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당하여 지금은 황장산에 황장목이 사라졌다. 어쨌거나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황장산의 황장목도 자취를 감춘 셈이다.



월악산 국립공원의 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었더니 안생달 마을에 도착했다고 한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에 소재한 생달 계곡을 기준으로 그 바깥을 외생달이라 하고 상류를 안생달이라고 부른단다. 주차장에서 차로를 따라 이동해서 들머리인 황장산 공원 지킴터로 간다.

암벽이 드러난 맷등 바위를 좌측으로 두고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길이 이어지면서 오미자 고장답게 지천에 오미자밭이다. 원래 이곳 생달리 일대는 탄광촌이었다. 광산으로, 혹은 광부로 생업을 잇다가 지금은 오미자를 재배하며 시대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밭이 끝나는 곳에 황장산까지 2.4km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진 지점부터 산길로 접어든다. 계단을 오르고 가뭄으로 메마른 협곡을 지난다. 마을에서는 어리시골이라고 부르는 원시계곡이다. 계곡을 거슬러 너덜 돌길의 경사가 이어진다. 백두대간 황장산 능선에 이르러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훔친다.

오른쪽으로는 비법정탐방로임을 알리는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려있지만 대간 종주를 목표로 한 이들에게는 이미 금줄로서의 규제 권한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34. 비탐방구간의 촛대바위와 낙타바위는 군침만 흘리며 지나친다.jpg 비탐방구간의 촛대바위와 낙타바위는 군침만 흘리며 지나친다


이곳 월악산 국립공원은 마골치에서 대미산, 황장산을 거쳐 벌재에 이르는 20.8km의 긴 구간이 비법정탐방로로 묶여있다. 그쪽의 산들에 시선을 박으면 같은 산줄기임에도 산행을 제한한 자락은 왠지 우울해 보인다. 그 바깥에서 보아도 그렇고, 안에 들어가서는 더더욱 혼자 소외된 것처럼 느껴진다. 심하게는 비무장지대에 들어선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눌재 쪽을 바라보며 닭 쫓던 개처럼 멍했던 때가 생각나더니 설악산 마등령에서 황철봉 바라보기를 오작교 너머 직녀를 바라보는 견우처럼 먹먹했던 때가 떠오르는 것이다.

안전과 자연보호를 위해 탐방로를 제한하는 산림청,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취지 이행 노력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의 목표의식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두 주체 모두에게 불안한 결과물을 제공하는 것이 현실인지라 비법정탐방로의 산들은 그저 우울하고 침침할 수밖에 없다.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예약 산행, 동반산행 혹은 한정적 개방 등 어떤 방법으로든 탄력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막으려 자는 결코 통과하려는 자를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백두대간이 산객들 종주를 위해 생겨난 건 아니었잖아.”


그렇게 짧은 생각을 접고 눈앞에 놓인 길로 걸음을 내디딘다. 계단을 오르자 문경새재 주흘산이 먼저 보인다. 조령산과 연계해 산행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정상에 이르자 정상석(해발 1077m) 앞에 꽤 많은 산객들이 줄을 서있다. 헬기장인 주변에 나무들이 높이 솟아 벌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빼고는 달리 볼거리를 찾을 수 없다.

하산하며 월악산 국립공원 내의 도락산과 준봉들을 눈에 담지만, 영봉은 보이지 않는다. 암벽에 바짝 붙여 세운 쇠 난간을 잡고 그 길을 통과하자 그제야 우뚝한 만수봉의 왼쪽 후미로 영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반가운 자태이다.


“무탈하시지요?”

“덕분에 잘 있다네.”

“곧 찾아뵙겠습니다.”

35. 능선에서 보는 맷등바위는 다소 위험스러워 보인다.jpg 능선에서 보는 맷등바위는 다소 위험스러워 보인다


영봉과 속내를 주고받다가 능선을 따라 맷등 바위에 이른다. 맷등 바위 칼날 능선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영상으로 보았던 것처럼 위험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난간에 바짝 다가가면 서늘할 정도의 고도 감을 느끼게 된다. 이 구간이 예산을 들여 안전시설을 보완하여 대간 일부를 개방한 곳이다.

전망대에서는 도락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그 너머로 소백산도 상체를 드러냈다. 대미산에 시선을 주며 맷등 바위를 내려선다. 경사 급한 바위 구역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내려서고 사면 바윗길을 조심스레 걸어 안생달 마을 쪽으로 고도를 낮춰가니 잣나무 수림을 지나 헬기장에 닿는다.

헬기장을 지나 우만골이라고도 부르는 생달 계곡 상류 지역에서 대간 줄기인 작은 차갓재로 이어진다. 날머리에 이르기 전 마지막 쉼터로서 적합한 곳이다. 여기서 노란 금계국과 분홍 금강초롱의 마중을 받으며 내려가다가 시멘트 차도를 걸어 공원 지킴터에 도착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산행이다. 촛대바위와 낙타바위가 있는 능선이 열리고 백두대간 코스의 금줄이 사라지면 다시 오마고 생각할 뿐이다.

문경시 동로면, 전국에서 손꼽는 오지마을에 토박이보다 많은 귀농 인구가 늘어 오미자를 재배하고 가공하며 또 오미자 맥주까지 생산하고 있다.

황장산을 찾는 산객들까지 늘어나며 두메산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탄광에 이어 특산물 농사를 짓고 외지인이 번거롭게 드나드는 마을이 되었다. 황장산에 비록 황장목이 사라지긴 했지만 더 이상 남은 다른 것들까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 마을에도 싱그러움 그대로의 자연미가 생생하게 남아있기를 소망하며 생달리를 뒤로 한다.



때 / 여름

곳 / 공원 지킴터 - 황장산 - 맷등 바위 – 작은 차갓재 - 원점회귀






https://www.youtube.com/watch?v=JCCGa06Fu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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