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산 27
천황산 정상에서 고원을 사이에 둔 재약산을 바라보고
멀리 신불산 능선을 바라보노라니 겨우 오늘 한나절을
보내는 중일뿐인데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아주 오래도록
거대한 개미굴을 이동하는 느낌이다.
“작년 가을에 시간을 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아쉬움을 곱씹다가 또 한해를 넘기고 봄이 오는 길목에 영남알프스를 찾았다. 초조함 가누지 못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애태워 기다린 적이 있었다. 영남알프스로 향하며 그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너무나 멀고 시간 내기 어려워 늦고 말았다는 건 실제 부닥쳐보면 허접스러운 핑계였다는 게 여실히 밝혀진다. 집착일지도, 아니면 순간의 감성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속 안의 움직임마저 거기 일곱 개의 산으로 다가서며 생애 손꼽을 만남에 설렘 누그러뜨리기가 쉽지 않다.
울산광역시, 밀양시, 양산시, 청도군과 경주시로 이어지는 경상남북도의 경계지역에 해발고도 1000m를 넘고 전체면적이 약 255㎢에 달하는 광활한 산악지대를 일컬어 영남알프스라 부르고 있다. 가지산, 운문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에 고헌산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들 육중한 산들의 수려한 능선과 풍광이 가히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 칭한다.
사계절 모두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뽐내거니와 특히 가을에는 사자평을 비롯해 신불재, 간월재 등 곳곳마다 억새군락이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내기에 알프스라는 수식을 붙인 것인데 그다지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단호하고도 강인하며 동시에 유연한 포용을 느끼게끔 꼿꼿한 바위 봉우리와 급준한 단애, 광대하고 부드러운 고원이 조화를 이뤄 찾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또한, 각 산자락에 통도사, 표충사, 운문사, 석남사 등 유서 깊은 사찰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유적지로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운문산을 오르며 영남알프스의 시발점을 내딛다
친근한 지인 중에 긴 산행의 동행을 권할만한 산우가 얼른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나 홀로 산행에 익숙할 때라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혼자 떠난다. 호젓한 유람이 될지, 아니면 고독하고도 지독한 고행이 될지는 직접 부딪쳐서 결과를 얻기로 한다.
집에서 네 번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석골교에 도착한 건 밤 열 시가 넘어서였다. 열심히 검색해서 예약한 운문산 아래의 청림 산장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기로 한 것이다.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운문산 위로 별들이 쏟아지는 걸 보다가 잠을 청한다. 낯선 지방에서의 수면이 달콤할 리 없겠지만 새벽 네 시 반에 눈을 떴을 때는 머리도 맑고 몸 상태도 개운한 편이었다. 어젯밤 쏟아지던 별빛 대신 촉촉하게 습기 머금은 새벽 기운이 산 아래로 퍼져 내려오고 있다.
“잘 쉬고 갑니다.”
“이거 받으세요. 나물 몇 가지랑 잡곡밥 조금 쌌어요. 운문산에서 가지산으로 가시다가 경치 좋은 곳에서 드세요.”
맘씨 후덕한 산장지기는 환한 웃음으로 배웅을 해주며 도시락까지 건네준다. 지갑을 열려는데 강하게 만류한다.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하세요.”
출발 직전부터 느낌 좋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늘과 내일로 이어질 종주 코스를 도상으로 이으면 태극 모양을 보여 영남알프스 태극 종주라 일컫기도 한다. 내디딜 첫 산이 운문산이며 그 시발점이 경남 밀양의 석골사 입구이다.
겨울 녹아 물 흐르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없으므로 행복이 뭔지 불행이 무언지 가늠할 게 없을 터. 태풍 전야처럼 고요해서 산골에 동트기만 기다리니 진정한 자유가 이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정표의 거리는 의미가 없어.”
첫 이정표를 보지만 거기 적힌 숫자에 속박되지 않기로 했다. 염두에 둘 건 오로지 처녀 산행에서 방향을 잘 잡아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면 행복한 유람의 충분한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멀고도 긴 대장정의 진입로에 들어서면서 밀양아리랑을 흥얼거리게 되는 건 밀양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경상도의 대표적 통속 민요인 밀양아리랑은 이 지역 영남루에 얽힌 비극, 아랑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밀양에는 순결을 지키려다 한을 남기고 숨져간 아랑阿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가 매년 음력 4월 16일에 열렸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규수가 제관이 되어 제사를 모시는 아랑제이다. 봄에 지내던 아랑제와 가을의 밀양문화제를 합하여 밀양 아랑제라 개칭하고 그 시기를 음력 4월 말에서 5월 초의 농한기에 열고 있다.
밀양 부사의 딸이며 어질고 아름다운 여인 아랑을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이 사모하게 된다. 영남루에서 통인에게 욕을 당할 지경에 이르자 끝까지 반항하다가 통인에게 칼에 찔려 살해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자 밤이면 이 고을 태수의 방에 귀신이 나타나 놀란 태수들이 부임 첫날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밀양 태수 자리가 비었으나 아무도 가려하지 않자 조정에서는 자원자를 구해 보냈다. 새로 부임한 태수가 불을 밝히고 앉아있는데 불이 꺼지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에는 칼이 꽂힌 귀신이 들어왔다.
“네가 그 귀신이냐? 기다리던 참이다.”
이제까지와 달리 태수가 담대하게 다그치자 귀신은 자신의 원통한 사연을 밝혔다.
“너무 원통하여 이런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태수가 아랑을 죽인 통인을 잡아 처형하자 그 뒤로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장화홍련전처럼 익숙한 설화를 떠올리며 급경사의 너덜 오르막에 접어든다. 억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른 봄 새벽녘 산길은 무척 서늘하다. 어슴푸레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홀로 산자락은 서늘하기는 해도 조금도 을씨년스럽지 않다. 산중 특유의 고즈넉함과 새벽 낭만이 속속 배어 있어 기분이 들떠있다.
저만치 운문산 정상이 우뚝 모습을 드러내고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도 다감하게 미소를 짓는다. 거친 너덜바위 위에 억산億山 정상석(해발 944m)이 세워져 있다. 들머리에서 4km를 걸어왔고 운문산까지 4.3km를 더 가야 한다. 운문산 서쪽 능선에 솟은 억산은 하늘과 땅 사이 수많은 명산 중의 명산이라는 의미의 억만지곤億萬之坤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억만산億萬山 또는 덕산德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운문산과 그 뒤로 옅은 운무를 끌어안은 가지산을 훑어보고는 억산을 떠난다. 궤적 뚜렷한 길 따라, 신선한 공기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고 유유자적 걷다가 삼지봉(해발 904m)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 번째 봉우리인 범봉(해발 962m)에서 바람막이를 벗는다. 해가 뜨면서 서늘한 산 기운은 온화한 봄볕으로 바뀌었다.
억산과 운문산을 이어주고 석골사와 운문사가 갈라지는 사거리 고개 딱밭재에서 행동식을 꺼내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운문산을 1.8km 남겨둔 딱밭재까지 석골사를 통해 올라왔으면 거리를 단축할 수 있었겠지만 영남알프스에 온 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곳곳을 섭렵하고 싶어서였으므로 꽤 긴 거리를 우회한 셈이다.
2.6km 아래의 석골사는 애초 석굴사로 불리었듯 예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로 이름난 사찰이란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태조 왕건이 풍요한 도움을 주어 고려 건국 후 아홉 개의 암자를 거느리게 되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활약하던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딱밭재를 지나 헐벗은 나목들이 겨울은 지났는지 모르지만 봄이 오지는 않았다는 걸 표현하듯 뻗은 가지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상운암 계곡의 암벽들은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그다지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거칠고도 냉랭한 모습으로 눈길마저 피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아직 썰렁한 계절의 홀로 방문이 의아스러운 밧줄이다. 청승맞게 혼자 산길 오르는 걸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곳곳에 아직 녹지 못하고 고드름처럼 매달린 얼음기둥들도 저들보다 더 썰렁한 방문객을 경계하는 눈치다.
“유별나게들 보지 말게나. 나도 똑같은 코리언일세.”
첫눈에 허름하고도 다소 부실해 보이는 상운암에 도착하여 수통 가득 약수를 채운다. 물맛은 너무 시원하여 세 시간 30분여의 수고로움을 단번에 덜어준다. 석골사의 산내 암자인 상운암은 예로부터 천진보탑으로 이름난 정진 장소였는데 6·25 전쟁 직후 빨치산 소탕 작전의 목적으로 모든 당우가 소실되어 1960년에 지어진 현존 암자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촘촘하고도 수북한 뭉게구름 아래로 막 지나온 억산, 삼지봉, 범봉 능선과 주변 조망에 고루 눈길을 던진다. 이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동굴이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자연 동굴이다.
거리를 더욱 좁혀 운문산雲門山 정상(해발 1188m)에 이르자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남알프스 첫 정상에서 가슴 울렁임을 느끼니 마지막 정상에서의 감동이 어떠할지 쉽게 상상이 된다.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에 접한 운문산은 신란 진흥왕 때 창건하고 고려 태조가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려 운문사라 칭하게 된 사찰명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가르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운문사에서 딱밭재를 거쳐 이곳 운문산으로 오를 수도 있다.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으로
“오늘이 첨이자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천년이 지나도 부디 지금의 모습 그대로 변함없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잘 가시게. 가지산 형님한테 안부 전해 주시게.”
오늘 지나게 될 능동산 능선을 바라보고 가지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넓은 능선을 지나 비좁은 산죽 오솔길을 걷다가 동굴 앞에서 멈춰 선다. 암반 아래 그늘진 바위에 고드름이 달려있고 얼음 바닥인 동굴을 들여다보는데 싸한 냉기가 돈다. 동굴 크기로 보아 허준이 수술한 얼음동굴은 아닌 듯하다.
이곳 산내천 계곡지대에는 지형 특성상 초여름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처서가 지난 뒤에야 녹는 시례빙곡時禮氷谷, 즉 얼음계곡인 밀양 남명리 얼음골이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참을 내려와 닿은 아랫재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햇살 좋은 암릉에 자리를 잡는다. 출발할 때 산장지기가 싸준 도시락을 여는데 입안 가득 군침이 고인다. 조미되지 않은 담백한 자연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자 몸도 마음도 포만감으로 나른해진다. 10여 분 지났을까. 잠깐이지만 눈을 붙였다가 떼니 들머리에 들어섰을 때처럼 개운하다.
가지산 정상 아래의 헬기장에서 걸음을 빨리하여 산장에 이르자 눈썹을 그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덩치는 큰데 무척 순하다. 산장 오른쪽의 바위지대인 정상까지 꼬리를 흔들며 앞서간다. 개의 안내를 받아 정상에 올라서기는 처음이다. 가지산加智山 정상석(해발 1241m) 앞에 몇몇 산객들이 환한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옆에 낙동정맥의 구간임을 표시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영남알프스의 산군 절반 이상이 낙동정맥 상에 걸쳐있다.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의 순으로 영남알프스 한복판을 낙동정맥이 관통하며 양옆으로 운문산이나 재약산 등을 끼고 있는 형국이다.
“운문산 아우님이 안부 전하더군요.”
“아, 거기서 오는 길이신가. 우리 아우 잘 있던가?”
“네. 안색이 밝으시더군요.”
“그래. 신불 아우, 간 월 아우 등 아직 남은 다섯 아우와도 기쁜 만남 가지시게.”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에 걸쳐있는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가지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화재나 관광명소가 많아 통도사 지구, 내원사 지구 및 석남사 지구와 더불어 1979년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가지산과 운문산은 암산女山이라 수도승이 각성할 무렵이면 여자가 나타나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석남사는 주변의 운문사, 대비사와 더불어 비구니 전문 수도장으로 지금도 많은 비구니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과연 유럽의 알프스를 인용한 표현이 과장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첩첩이, 겹겹이 산들이 포개지고 골골 깊숙이 우거진 수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멀리 막 지나온 운문산과 약 10㎞ 거리의 이곳 가지산이 나란히 솟아있어 하나의 산에 두 개의 봉우리처럼 보일 듯하다.
이 일대는 화강암 지질 기암괴석의 바위 봉우리가 많지만, 가지산의 북동쪽 사면은 완만하여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니 참으로 복잡다단한 형세를 갖춘 산군이라 하겠다. 이런 만큼 영남알프스의 산행 행태 또한 동서 혹은 남북으로 넘나들기도 하는 등 매우 다채롭다.
영남알프스의 7 산군은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과 천황산, 재약산, 그리고 운문산, 가지산에 고헌산을 포함한 3개 권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세 지역은 배내천, 동천 등의 하천을 이룬 커다란 계곡으로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높고, 깊고, 넓은 산에 들어서서도 이정표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어 방향과 거리에 대해 세세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무얼 망설이랴
구름 흘러 걸리는 곳
거기가 내 갈 곳
그래도 그게 아니라
산허리에 세운 이정표
걸을 거리, 갈 방향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하네
쭉 뻗은 산줄기 멈춰 둘러보라
오른 길만큼, 솟은 태양만큼
큰마음 지녀보라
가파르고 궂은 삶
묵은 세월에 묻어두라
내려가거든
더욱 지혜롭게 살으라
그래서 산허리에 이정표 있는 거라 하네
사자평전 천황산과 재약산 거쳐 노을 길 하산
능동산과 천왕산 일대에 눈길을 담갔다가 가지산과 작별한다. 700여 m를 내려와 중봉(해발 1167m)에서 가지산을 올려다보고 석탑 터널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철쭉나무 군락지에 다다른다.
이곳 철쭉 군락지는 가지산의 날머리 석남터널 입구 위까지 이어지는데 2005년에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지정되었다. 추정 수령 약 100∼450년인 40여 수의 철쭉나무 노거수와 약 20여만 수의 철쭉나무가 산 정상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지역을 희고 붉게 물들일 것이다.
한방에서는 철쭉꽃을 척촉躑躅이라 하는데 독성이 강해 마취작용을 일으키므로 악창에 외용하며 사지 마비를 풀어주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철쭉의 독성은 경련 발작을 일으키고 호흡을 마비시켜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 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다시 돌무더기가 있는 석남령을 지나고 입석봉으로 내려섰다가 떡봉이라고도 부르는 격산(해발 813m)에서 숨을 고른 후 길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능동산(해발 983m)에 이른다. 석골사 입구 출발지부터 20km가 지난 지점이다.
힘이 부칠 즈음이지만 처음과 달리 서두르게 된다. 천황산과 재약산을 거쳐 오늘 밤 숙박하게 될 죽전마을까지 이르려면 시간이 촉박할지 모른다.
쇠점골 약수터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임도를 따라 걷다가 다시 산길로 올라 능동 2봉(해발 968m)에 닿았다. 멀리 가지산을 바라보고는 영남알프스 하늘정원으로 이동하여 신불산의 수평 능선에 눈길을 머문다. 산정 휴게소라 할 수 있는 샘물 상회에서 음료수라도 사서 마시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이 문이 닫혀있다.
양옆으로 광활하게 억새밭이 펼쳐진 나무계단을 길게 오르면서 천황산으로 다가간다. 갑자기 모세가 홍해를 가르며 바닷길을 걷는 착각에 빠진다. 가을이면 국내 최대의 억새평원을 가르는 이 목재 계단길이 일렁이는 은빛 파도를 뚫고 지나는 기분일 것만 같았다. 이곳부터 천황산에 이어 재약산 수미봉을 거쳐 죽전마을로 내려서는 구간을 사자평 억새길이라 하는데 125만 평에 달하는 면적이라 한다.
“아아~ 한 사람의 개인은 얼마나 작은 미물이던가.”
천황산天皇山 정상(해발 1189m)에서 고원을 사이에 둔 재약산을 바라보고 멀리 신불산 능선을 바라보노라니 겨우 오늘 한나절을 보내는 중일뿐인데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아주 오래도록 거대한 개미굴을 이동하는 느낌이다. 잠시 물리적으로 느끼는 거대함에 위축되고 만다.
경남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걸친 천황산의 서남쪽 험준한 바위 형태가 사자 머리와 흡사하여 사자봉이라고도 불렀다. 산세가 수려하여 삼남 금강三南金剛이라 일컫기도 하지만 정상 일대에는 거대한 암벽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심한 천황산 정상에서 천황재로 내려선다. 천황산의 동북쪽 표고 1000m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완경사를 나타내는 사면은 높이 800m 부근에서 분지 상의 평탄면을 이루어 사자평獅子坪이라 불리는데 약간의 기복을 이루면서 재약산 남서부까지 온통 억새로 뒤덮여 있다.
사자평 억새는 매년 9월 말쯤 피기 시작해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고 하니 이때 억새의 흔들림은 포효하며 내달리는 사자의 갈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이 주변은 농경지로 이용되던 논과 밭이 습지로 바뀌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약 580,000㎡의 고산 습지가 그것인데 재약산 정상부의 평탄한 곳에 형성되어 2006년에 환경부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재약산 산들늪으로 알려졌다.
사람이 떠난 곳에는 다시 자연이 머문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이곳 화전촌에는 고사리 분교를 비롯하여 약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사자평에 텃밭을 일구면서 생활해 오다가 모두 떠나고 집터마저 자연에 귀화한 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멸종위기종인 삵, 하늘다람쥐, 매 등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천황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재약산載藥山 정상(해발 1108m)에 다다르자 여기도 바람이 심하다. 신라 흥덕왕의 셋째 아들이 이 산의 약수를 마시고 고질병이 나은 뒤 약수를 가진 산이라 하여 재약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재약산도 행정구역상 천황산과 마찬가지로 경남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경계에 있는데 일부 산악인들은 천황산을 재약산 사자봉으로, 재약산을 재약산 수미봉으로 부르며 지명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정상석은 천황산과 재약산을 구분하여 세워놓았다.
점차 노을이 짙게 물드는 중이다. 표충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내일 남은 구간인 영축산부터 신불산과 간월산을 가려면 배내골 죽전마을로 하산해야 수월하다. 재약산에서 죽전마을까지 5.1km의 거리가 묵직한 부담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내려가 꿀맛 휴식을 취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주암 삼거리를 지나고 죽전 삼거리를 가리키는 이정표의 방향대로 길게 내려가기만 한다. 고개 숙인 억새밭을 따르다가 뒤돌아보니 재약산이 거뭇하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헤드 랜턴을 꺼낼까 하다가 걸음 속도를 높인다.
죽전마을이 가까워지면서 경사가 급해진다. 완급을 조절해가며 근근이 죽전마을 도로까지 내려섰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고 마을 곳곳마다 불이 켜진 후이다. 예약한 펜션에 들어서자 장기간 해외 출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어둠이 짙게 깔린 밤중까지 걷고 또 걸으며 하루를 꽉 채운 셈이다.
영축산과 사랑에 빠졌나 보다
이튿날,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알람이 그리 귀찮지 않다. 몸을 일으켜 팔다리를 흔들어본다. 혹여 다리 근육이라도 뭉칠까 걱정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몸 상태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은 것 같다.
바깥공기를 살펴보았는데 이슬이 축축하긴 하지만 기상도 걱정할 상황은 아닌 듯싶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어제보다 많이 짧은 편이다. 새벽 다섯 시 펜션을 나선다.
배내골 주변은 아직 조용하다. 사람들 기척도 없고 산장이나 음식점도 문을 열지 않았다. 69번 지방도로 아래 단장천도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양산시 원동면에 소재한 청수골로 걸어와 스틱을 펴고 등산화 끈도 조여 맨다. 이곳 영축산 들머리에서 오늘의 본격 산행을 앞두고는 팔다리를 움직여가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크게 심호흡도 해본다.
청수좌골, 중앙 능선과 청수우골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청수우골로 방향을 잡았다. 죽바우등을 통해 오르는 능선의 풍광이 뛰어나다는 조언을 들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계곡을 건너고 이슬 머금은 조릿대 샛길도 걸으며 또다시 이른 봄, 이른 아침에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자 한다.
영축 능선 사거리 한피기 고개에서 300m 떨어진 시살등(해발 981m)에 닿았을 때도 해는 구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붉게 서기만 어리고 있다. 어제 지났던 가지산, 능동산과 천황산이 길게 능선을 늘어뜨렸는데 곧 지나치게 될 죽바우등이 가깝고 그 뒤로 신불산이 반신을 드러낸 게 보인다. 이젠 낯익어 친근감이 드는 광경들이다.
산 아래에는 양산팔경의 제1 경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가 있다.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의 하나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큰절이다. 몇 해 전 여름, 부산에 사는 옛 직장동료와 함께 통도사와 영축산에 온 적이 있었다.
그의 안내로 이 산에 소재한 19 암자 순례길을 걸었는데 관음암부터 시작해 축서암을 지나 영축산 정상에 올랐다가 백운암으로 내려서서 다시 보타암까지 19 암자를 거쳐 통도사로 회귀하는 약 24km의 트레킹 코스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찾은 영축산이 반갑고 영남알프스의 새 아침이 열리는 걸 보면서 내면이 후련해지는 걸 체감한다. 다시 능선 사거리로 돌아와 죽바우등으로 향한다. 오룡산 능선을 뒤로하고 어제 걸었던 알프스 마루금에 눈길을 머물며 걷게 된다. 거대한 암릉을 눈앞에 두었다가 거기 오르면 죽바우등(해발 1064m)이다.
영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체이등, 함박등의 능선이 구름 벗어난 햇빛을 받아 신선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영축산으로 향하며 돌아보면 우람하게 솟은 죽바우등과 암벽에 솟은 몇 그루의 소나무, 그 위로 흐르듯 깔린 엷은 구름이 발길을 잡아당긴다.
영축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어제 걸었던 산들의 마루금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광활한 억새평원이 펼쳐짐과 동시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제 그토록 오래 보아왔음에도 다시 하늘길이 열리는 순간 신선이 되고 마는 것이다.
몇 해 만에 다시 해후하게 된 영축산 정상(해발 1081m)이다. 아무도 없지만, 적막하다거나 쓸쓸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변의 산군들을 감싸 안으려 낮아진 구름, 소소한 바람에 하늘거리는 겨운 억새의 허리춤이 모두 부드럽고 평온하다.
취서산鷲栖山이라고도 불리는 영축산靈鷲山은 경남 양산시와 울주군에 걸쳐있으며 가지산 도립공원에 속한다.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천황산, 재약산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줄기는 신불산, 간월산과 연결되니 영남알프스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겠다.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정상 일대의 펑퍼짐하고도 광활한 능선은 굳이 억새 물결이 아니더라도 하늘 맞닿은 천국 트레킹 코스이다. 이 산과 연애에 빠졌나 보다. 아니라 싶으면 사랑도 갈라지는데 영축산에 안기니 숨이 꽉 막히는데도 빠져나오기가 싫다.
“그래도 이만 가보렵니다.”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그러나.”
영축산 품을 벗어나 천국 길에 접어들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다시 그 품에 파고들 것만 같다. 가까이 죽바우등부터 향로산, 재약산, 천황산과 운문산, 가지산, 신불산을 두루 돌아보고 신불재로 향한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완만한 평원이 줄곧 이어지고 하늘 아랫사람 사는 세상도 간간이 보여 이보다 훌륭한 유람이 있을 쏜 가 싶다.
신불산에 도레미 송이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죽전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오늘 아침 세상과 연을 끊고 영혼이 그 위를 부유한다는 상상에 빠져본다. 삶을 마치고도 이렇기만 하다면 그 마침표가 두려울 리 없으리라. 그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일지도 모르겠다. 고행에서의 일탈이자 아늑한 휴가를 위한 여행…….
신불재로 내려서는 긴 데크 계단에서 눈길을 끄는 암릉을 보게 되는데 신불 공룡능선이라고 한다. 보기엔 칼날처럼 날카로운 절벽이다. 억새 고원 사방으로 데크 계단이 설치된 신불재는 영축산에서 2.2km를 왔고 신불산까지 700m를 남겨둔 지점이다.
밀양, 김해 등 낙동강 주변 사람들과 동해안 인근 사람들의 장이 열리던 곳으로 소금, 생선 등 울산의 해산물과 밀양의 산나물, 쌀 등을 교환했다고 한다. 지리산의 화개재처럼 하늘에 올라 식생활을 해결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비즈니스가 아닐 수 없다.
아직 개방되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지은 대피소 자리에 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양훈 시인은 작시 ‘신불재’에서 가을과 주막을 추억하고 싶어 한다.
장날이 좋으냐
주모가 좋으냐
막걸리 취하면
주모 허리 잡네
가을에 하염없이
젖어가는 신불재
전설과 이야기에도
또한 젖어가네
이 자리 신불산 주막에서는 예쁜 주모가 술을 팔았는데 신불神佛에게 빌어 인간으로 환생한 암컷 호랑이였다. 하룻밤 정분을 나눈 나그네들을 어김없이 잡아먹던 주모는 신불의 노여움을 사서 하늘로 잡혀갔다.
혹자는 이 설화에 살을 붙여 슬쩍 풍자하기도 한다. 주모는 잡혀가기 전 얼른 주막을 팔아 2000만 원의 권리금을 건졌다는데 그 돈을 하늘 감옥의 사식비로 썼는지, 신불에게 뇌물로 상납했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주모에게 잡아먹힌 나그네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신불산 방향의 계단으로 올라섰다. 정상석이 세워진 신불산神佛山 정상(해발 1159m) 일대는 각진 암반이 드러나 있다. 지금까지 거쳐 온 다른 산들과 다른 점이다.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 경계에 위치하여 협곡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으로 이 일대는 1983년 신불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 전망대에서 가지산과 운문산의 방향 바뀐 모습을 눈에 담고 이어 가게 될 배내봉과 간월산을 바라보노라니 전 세계의 공통 동요 도레미 송의 낭랑한 멜로디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웅장한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춤을 추는 마리아의 모습까지 선하게 그려내다가 마지막 목적지 간월산으로 향한다.
구름 모자 쓰고 간월산에서 마무리하다
급경사 계단이 영남알프스 막바지 걸음을 수고롭게 한다. 내려다보이는 간월재의 풍광은 영남알프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계단에 앉아 바람도 쉬어 넘는다는 간월재의 풍경에 심취하게 되는데 산자락 경사면으로 꾸불꾸불한 임도까지 포함해 감상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간월재를 지나 900m 거리의 간월산으로 오르며 돌아본 간월재는 건너편에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르게 비친다. 마찬가지로 드넓은 억새평원 사이를 오르게 되는데 이곳의 산정 일대에도 경사 완만한 산정 평탄면이 발달하여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팔을 뻗으면 바로 구름이 잡힐 것만 같은 간월산肝月山 정상(해발 1069m)에 이른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명산에 올라 주변 산군을 둘러보는데 슬그머니 서운함 같은 게 몰려든다. 이틀 동안 내내 저 산들의 품에 안겼었다.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처음 만나 가까워졌는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 때 쓸쓸해지고 만다. 정이 들었다는 게 원망스러워진다.
“다시 또 오면 되지.”
간월산을 끝으로 하산하였으니 다음엔 간월산을 시작으로 다시 오르면 되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을 추스른다.
교동리에서 등억리에 이르는 작괘천 입구에는 작천정酌川亭이 있는데 주위에는 간월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 울주 지방의 선비들과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특히 35m 물기둥 아래로 자욱하게 물안개가 피는 홍류폭포는 간월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간월산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배내봉으로 향한다. 그래도 아쉬워 뒤돌아보는데 신불산도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배내봉으로 가면서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경사면 바윗길에 안전밧줄을 길게 설치해 놓았다. 배내봉이 600m 앞에 있다는 이정표가 수고했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멀고도 긴 영남알프스 태극 종주를 마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다른 종주 때와 달리 뿌듯한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짙게 고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배내봉(해발 966m)에 도착해서도 햇살이 창창하지 않고 눅눅하게 가라앉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머물러 어제 새벽부터의 여정을 짚어본다. 일곱 산의 마루금을 쭉 이어가며 고개를 끄덕인다.
“잘했어. 실수도 없이 차분히 잘 해냈어.”
자신을 위안하고 배내봉을 뒤로한다. 1.4km만 내려서면 최종 날머리 배내고개이다. 그리 향한다. 속도를 높인다. 배내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대부분 완만한 나무계단이다. 배내고개에 도착하자 오후 2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석남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석남사에서 울산행 시외버스를 타면 오늘 중에 집에 갈 수 있다. 긴 시간, 긴 길을 돌고 돌아 귀가하게 된다.
때 / 초봄
곳 / 1일 차 : 산내면 석골사 입구 - 억산 - 범봉 - 딱밭재 - 운문산 - 아랫재 - 가지산 - 중봉 - 석남재 - 능동산 - 샘물 산장 - 천황산 - 천황재 - 재약산 - 사자평 - 죽전마을
2일 차 : 죽전 마을 - 청수우골 - 한피기재 - 영축 능선 - 죽바우등 - 영축산 - 신불평원 - 신불재 - 신불산 - 간월재 - 간월산 - 배내봉 – 배내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