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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영 Dec 22. 2021

백두대간 영취산 찍고
호남의 종산, 장안산으로

전라도의 산 19

회문산에서 철수한 전북도당이 덕유산에서 이현상의 

남부군과 합류하여 오백 명 빨치산이 옷을 벗고 목욕했던 

장면이다. 바로 이 계곡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만큼 

덕산계곡은 깊고 은밀하며 맑고 깨끗하다.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인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장안산은 기암괴석과 원시 수림이 울창하고 심산유곡에 형성된 못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관광지로 1986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주, 진안과 함께 전북 동부 산악권에 속하며 전형적인 분지 내에 있는 장수군은 논개의 고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해 추모대제를 지내던 중 1968년부터 논개 탄생일인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제정하여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해 논개제, 무용제, 음악제 등 주논개 대축제를 치르고 있다. 

호남의 고원지대이며 오지에 속한 장안산도 혼자 차를 몰고 내려와 산행하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함이 있어 이번에도 버스를 대절한 산악회와 동반했다. 


          

30분 남짓 걸려 오른 1075m의 영취산 정상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장안산 들머리로 잡은 무룡고개에 내리자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행정구역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 속하는 무룡고개는 장안산과 경남 함양의 백운산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로 금남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장안산은 예전과 달리 이곳 무룡고개까지 교통망이 형성되어 보다 쉽게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살짝 옆으로 영취산을 올라 백두대간을 잇게 되어 점차 등산객들의 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이 고개에서 지지계곡으로 가는 길은 심심산천 절경을 감상하고 동화댐이 있어 호반의 정취까지 맛볼 수 있는 멋진 드라이브코스라 할 수 있다. 

일행 중 반 정도의 인원은 무룡고개에서 먼저 왕복 1km 남짓 거리의 영취산을 오르기로 하고 나머지 반은 바로 장안산 들머리로 오른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파했던 인도의 영축산을 닮아 연유된 영취산은 취서산, 영축산으로 표기된 곳도 많다. 나무계단을 올라 잘 정비된 등산로를 또 오르면 그리 멀리 지나지 않아 금남 호남정맥 분기점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지금 올라온 길이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9 정맥 중 하나인 금남 호남정맥 구간이다.

조금만 더 오르면 해발 1075.6m의 영취산 정상석 앞에 서게 된다. 이만한 높이를 들머리에서 30분도 채 못 미쳐 올라온 것이다. 덕유산 육구 종주를 할라치면 시점으로 잡는 육십령이 11.8km 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장안산과 백운산은 각각 3.5km이니 그리 먼 길은 아니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솟아있는 영취산은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백운산을 거친 다음 이곳을 지나 장안산과 다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이다. 

또 동쪽으로 낙동강, 서쪽으로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세 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며 대동여지도에서는 장안산보다 영취산을 더 상세히 적어놓았고 신 증 동국여지승람에도 영취산을 장수의 진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취산에서 다시 무룡고개로 내려가 벽계 쉼터에서 장안산 들머리로 진입할 수도 있겠으나 대간 행로를 택하기로 한다. 어느 쪽으로 길을 가든 곧 합류하게 된다. 

백운산은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왼편으로 서래봉이 우뚝 솟아 오는 이를 맞이한다. 우거진 숲길을 걸어 무룡고개 삼거리를 지나고 1085m 봉에 닿자 백운산이 보인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산이라 무척 반갑다. 

대부분 육산인 등로에 산죽이 무성하다. 다행히 구름이 햇빛을 가려 더위에 시달리지 않아 좋다. 느긋하게 행렬을 이어 장안산 첫 전망대에 이른다. 드넓은 억새평원이다. 장안산의 가을 억새평원은 영남알프스로 일컫는 재약산 사자평원과 함께 알아주는 억새 군락지이다. 

지그시 눈을 감으면 흐드러지게 핀 억새밭에 만추의 바람이 불면서 온통 은빛 파도가 넘실댄다. 아직 밋밋한 평원에 일렁이는 억새 물결을 삽입하자 구름을 막 벗어나 이때다 싶어 내리쬐는 햇볕이 감미로운 가을 햇살로 바뀌는 착각에 빠진다.

다시 여름으로 돌아와 걸음을 내딛자 지리산 주릉이 구름 사이로 빛을 받아 찬연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고개를 돌리면 남덕유산과 서봉까지 반가움을 표시한다. 억새밭으로 빠른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눈은 노고단과 반야봉에서 떼지 못하고 천왕봉까지 담게 된다. 마치 지리산을 종주하는 느낌마저 든다. 두 번째 전망대에 이르기 전에 장안산으로 곧장 오른 일행들과 합류한다.  

데크계단 전망대와 그 뒤로 장안산 정상이 그리 멀지않다

        

호남 종산에서 덕산계곡으로 내려가 논개 생가 마을로


통신기지국이 세워진 장안산 전망대가 뚜렷이 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황석산도 보게 된다. 함께 걷는 산우들뿐 아니라 여기서 보는 산들은 모두 구면에 친근감 넘치는 지인들이다. 눈 여김만으로도 메아리가 울릴 것만 같은 추억의 공간이다. 거기서 길을 놓쳐 진땀 뺐던 일들, 비에 흠뻑 젖어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추웠던 그때가 모두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현장이었고 시간이었다. 

꾸준히 누런 억새밭이 이어지다가 또 하나의 전망소를 지나 129계단을 오르고 다시 103계단을 올라 장안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석 뒷면에 새긴 글을 읽고서야 장안산이 호남의 종산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해발 1237m로 장수, 번암, 계남, 장계 등 4개 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백두대간이 뻗어 전국의 8대 종산 중 제일 광활한 위치를 차지한 금남 호남정맥의 기봉인 호남의 종산’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덕유산, 치악산과 함께 종산의 반열에 있는 장안산의 존재감을 다시 느끼게 된다.


“대단한 분이셨군요. 몰라 뵈었습니다.”

“다른 종산들이 원체 뛰어나다 보니 내 존재감이 떨어졌지 뭔가.” 


헬기장이 있고 통신기지국이 설치되어 있으며 삼각점이 있는 넓은 정상에 또 하나 특이한 팻말을 보게 된다.


‘이곳을 지나는 자여, 조국은 그대를 믿나니!’


2012년 11월 14일, 7733부대 기동중대에서 100km 행군을 기념하여 새긴 표식이다.

 

“어휴, 산이라면 신물이 납니다.”


동시에 군에서 막 제대한 젊은이들이 산을 싫어하는 이유를 적은 패찰이기도 하다. 

둘러보면 주변은 높고 깊은 산중 오지이다. 걸어온 무룡고개 능선도 와서 보니 온통 숲이다. 전라북도 무주, 진안, 장수 세 고장을 일컬어 무진장이라고 표현해 왔다. 지독히 오지인 산골에 파묻혀 있어 세인들의 왕래가 뜸해 ‘아주 많이’라는 부사어의 무진장으로 인근 세 곳을 엮어 불렀다. 그중에도 장수는 더욱 오지였으며, 특히 외지고 인적 뜸한 심산유곡이 저 아래 덕산계곡 일대이다. 

이제는 덕산계곡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계곡과 윗 용소, 아랫 용소 등 많은 소와 지소 반석 등 십 수 개의 기암괴석들이 울창한 수림에 덮여 여름이면 많은 외지인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 덕산계곡의 맑고 찬 물에서 오늘 산행의 피로를 풀기로 했으니 무덥지만, 힘을 뽑아내기로 한다. 

범연동 쪽으로 길을 잡아 하산한다. 중봉 삼거리를 지나 연주 마을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내려선다. 활엽수림 울창한 숲길을 걷다가 계곡으로 내려서서 완만한 경사로로 이동하자 오매불망 그리던 덕산계곡이다.


“여기가 바로 거기야.”


계곡을 내려가다가 바로 그 자리,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옷을 벗고 목욕하던 자리였을 걸로 추정되는 너른 소에 자리를 잡는다. 영화 ‘남부군’의 장면이 떠오른다. 회문산에서 철수한 전북도당이 덕유산에서 이현상의 남부군과 합류하여 오백 명의 빨치산들이 옷을 벗고 목욕했던 장면이다. 바로 이 계곡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만큼 덕산계곡은 깊고 은밀하며 맑고 깨끗하다. 


“이참에 우리도 빨치산이 돼볼까.”


빨치산들처럼 심하게 알탕을 할 수는 없지만 젖은 땀과 눅진하게 몰려들기 시작한 피로를 씻기에 충분한 수량이라 일행들 모두 천진한 물놀이 동심에 젖어든다. 이런 순간이 있어서 여름은 그 계절 값을 한다. 물을 떼놓고 여름을 생각할 수 없다. 

덕산계곡으로 내려와 방화폭포를 보며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피서를 마치고 긴 계곡을 따라 내려가서 방화 폭포를 보고 버스에 오른다. 일행들 모두 피로함보다는 뿌듯하게 하루를 즐긴 넉넉한 표정들을 짓고 있다.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논개 생가 마을에 정차한다. 장수 논개 생가 마을은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 의절한 주논개가 태어난 마을이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며 생가를 복원해 마을 전체를 민속 마을로 꾸몄다. 마을 어귀를 지나 비탈진 동네로 들어서면 한 채 한 채 초가집과 물레방아, 텃밭에서 풀을 뜯는 장수 한우도 민속촌 분위기를 한층 살려준다.   


                 

때 / 여름

곳 / 무룡고개 - 영취산 – 무룡고개 삼거리 - 전망대 – 억새 능선 - 장안산 – 중봉 삼거리 - 덕산계곡 - 연주 마을 – 논개 생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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