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3
표고 402m 세봉의 너럭바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닷가로 이어지는 자락 어귀의
소담한 마을들이 시골 외가처럼 정답다.
순간적으로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서해의 파라다이스
산에 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눈앞에 바다가 아른거린다. 지금 세상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건 욕심을 표현하는 속담에 머물지 않는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기로 한다. 그러면 어진 이仁者, 슬기로운 이智者가 동시에 될 수 있다.
누군가 아름다움에 취하여 해도 달도 머무는 산해 절승山海絶勝이라고 변산을 표현했다. 변산 8경을 간결하게 묘사한 시구를 되새기며 변산반도에 들어선다.
월명암 돋는 달은 볼수록 아름답고
낙조대 지는 해는 못 보면 한이 된다
청산의 직소폭포 떨어지는 은하수요
우금암 높고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방포의 해수욕장 여름의 낙원이요
격포의 채석강은 서해의 금강이다
서해의 어업밭은 용궁의 꽃밭이요
내소사 은경소리 선인들의 운율이네
- 변산팔경 / 소송 김길중 -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총 스물두 곳의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해상과 산악을 겸하는 최초의 반도 국립공원이다. 바다를 접하는 외변산은 채석강, 적벽강, 격포항 등이 있고 내륙 쪽으로 관음봉, 신선봉, 쌍선봉 등 봉우리들이 내변산을 형성하고 있다.
변산반도의 절경, 변산 8경 중 하나이자 천연기념물 28호인 채석강採石江. 물이 빠진 썰물 때라야 제 모습 드러내는 채석강은 약 1.5km 길이에 수만 권의 책을 빼곡하게 쌓아놓은 모습의 층암절벽이다.
강한 파랑의 영향으로 자연 형성되었는데 당나라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그 자연미가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을 주태백이라 빗대 부른다더니 당대의 시성詩聖 이태백도 술에 취하니 하늘과 강을 분간 못 했나 보다.
서해안 반도의 가장 모서리에 있어서일까. 채석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곳이라고 한다. 1999년 12월 31일, 마지막 햇빛이 채석강에서 채화되어 경북 구룡포 해맞이공원에 영구보관 중이란다.
서해의 20세기 마지막 일몰을 일출의 고장 동해에서 감상한다. 이 얼마나 동화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가. 세상사 모든 일의 기승전결이 이처럼 연하게 풀어지고 맺어진다면……. 천국이 이보다 더 멋진 곳일 수 있을까. 채석강은 그래서 두고두고 파라다이스로 각인되는 장소가 된다.
채석강에 장서는 읽지 않아도 되겠다.
긴 해안을 이룬 바위 벼랑에
격랑과 고요의 자국이 차곡차곡 쌓였는데
종의 기원에서 소멸까지
하늘과 바다가 전폭 몸 섞는 일
그 기쁨에 대해
지금도 계속 저술되고 있는 것인지
또 한 페이지 철썩, 거대한 수평선 넘어오는
책 찍어내는 소리가 여전히 광활하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작은 각다귀들
각다귀들의 분분한 흘레질에도
저 일망무제의 필치가 번듯한 배경으로 있다.
이 바닥 모를 깊이를 잴 수 있겠느냐
미친 듯 몸부림치며 헐뜯으며 울부짖는
사랑아, 옆으로 널어 오래 말리는
채석강엔 강이 없어서 이별 또한 없다.
- 바다책, 채석강 / 문인수 -
채석강에서 적벽강까지 약 1.8km의 변산 마실길 구간을 걸어가면 적벽강赤壁江이 있다. 물이 빠진 썰물 때라야 걸을 수 있다.
후박나무 군락지가 있는 격포리부터 용두산을 감싸는 약 2km의 해안선을 일컫는 적벽강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3호로 지정된 만큼 붉은색의 기묘한 바위에 높은 절벽과 동굴이 만물의 형상과 비교되는 변산반도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파도가 깎아낸 붉은 해안 단층의 절벽은 채석강보다 훨씬 장대하고 분위기 또한 특출하다. 적벽강 언덕 위의 당집인 수성당은 바로 앞 칠산바다의 여신인 개양 할미를 모시는 곳이다.
부안 사람들은 변산의 기운이 한 곳에 응집돼 그 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매년 정월 보름이면 전국의 내로라하는 무당 300여 명이 모여 큰 굿을 펼친다.
1992년 이곳 수성당 아래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항아리와 잔, 병과 토기류, 청동과 철제유물, 석제 모조품 등이 출토되었다. 만선과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어부들의 제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변산은 깊은 골짜기가 많고 나무가 울창하여 많은 산짐승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으려 서해의 여신인 개양 할미는 변산의 끝인 격포 바닷가에 청동으로 만든 큰 사자 한 마리를 갖다 놓고 호랑이의 극성을 다스렸다.
청동 사자의 머리를 고창 선운산 쪽으로 돌려놓으면 하룻밤 사이에 변산의 호랑이들이 떼 지어 선운산으로 갔다. 고창에서 호랑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면 개양 할미는 청동 사자의 머리를 다시 부안의 변산 쪽으로 돌려놓아 변산과 고창의 호랑이를 조정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이 청동 사자상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데 대신 적벽강에 사자 형상을 한 사자바위가 있고, 호랑이들도 언제부턴가 변산에서든 고창에서든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 변산반도에서 내륙의 내변산으로
슬기로움은 그 맛만 보는 정도로 바다 구경을 마치고 변산반도의 내륙으로 향한다. 남서부 산악지의 내변산은 능가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의상봉 주변으로 쌍선봉,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이 제각각 특색 있게 솟아있다.
내변사 초입에 들어서면 울창한 전나무 터널이 먼 곳 찾아온 수고로움을 제일 먼저 덜어준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 100선에 속하는 명함이 무색하지 않다.
그리고 내변산의 명찰 내소사 대웅보전 앞에서 속되고 고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중생의 소생을 기원해본다. 예술성이 높이 평가된다는 대웅보전의 꽃살문 역시 그 정교함이 보는 이의 발길을 잡아 세운다.
선운사의 말사 내소사의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는데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찾아와 군중재軍中財에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내소사來蘇寺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전나무숲길에 적힌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의미의 명칭 유래가 훨씬 듣기 좋거니와 내소사 어깨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관음봉과 세봉은 허약한 병자라도 허리 펴서 시선 박을 만큼 그 풍광이 맛깔스럽기에 공감이 더한다.
전나무숲길 중간쯤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자그마한 암자인 지장암이 있다. 해마다 사월 초파일에 많은 사람이 이 암자를 찾아와서 촛불을 켜고 그 촛불의 타는 모양으로 그 사람의 한해 신수를 점친다고 한다. 촛불의 흔들림만큼이나 나약한 존재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내소사 경내에서 청련암까지 가면 거기서 비탐방 사면 등산로를 통해 세봉까지 갈 수 있겠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착한 길을 택해 힐링에 치중하기로 하고 다시 일주문을 나가 세봉 삼거리로 가는 입암마을로 들어선다.
다소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가을 물씬한 숲길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암반 지대가 나타나면서 내변산이 육중한 바위산임을 각인시킨다.
날카로운 편마암의 바위 능선을 조심스레 딛고 오르며 변산의 풍광에 젖고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닿은 세봉 삼거리는 내소사 일주문에서 2km의 거리이다. 조금 더 가 세봉에서 숨을 고르면서 내소사를 품은 내변산을 두루 조망한다.
세월 흘러 나이깨나 먹었다는 말 들을 정도가 되었어도 만추 내변산은 사내에게 가을을 타게 한다. 그리 높지 않은 내변산의 산세 때문에 더 그럴까, 가라앉은 듯 낮고 좁아진 주변이 답답하지 않으면서 오랜 세월을 소급해 되돌아가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 올린다. 그 추억의 장마다 살갑게 웃음 짓는 정겹고 푸근한 이들이 떠오른다.
표고 402m 세봉의 너럭바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닷가로 이어지는 자락 어귀의 소담한 마을들이 시골 외가처럼 정답다. 순간적으로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 이동한 것처럼 아주 잠깐 데자뷔 Deja-vu의 신비로움에 젖어들고 만다.
불그레한 만추 석양 녘에 하늬바람 가늘게 불어오고 초가 굴뚝에 군불 연기 피어오르는데 갈색과 진홍으로 채색된 시골 외가, 허리 굽은 외할머니와 늙으신 친정엄마 손 꼭 잡은 어머니가 나란히 서서 저무는 노을을 바라본다.
그렇지 않은데도 꼭 접했던 느낌을 강력하게 받으면서 관음봉으로 향하는데도 그 여운이 짙게 따라붙는다. 주름 깊이 팬 바위 언저리의 울타리 바깥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햇볕 찬연히 내리쬐는 우측 숲과 발아래 칼바위를 조심조심 눈 여김 하며 부는 바람을 한껏 들이마신다.
관음봉(해발 424m)에 도착해서야 산객들이 북적인다. 봉래구곡을 내려다보고 고요한 서해로 시선을 옮겨 아기자기한 원암마을 뒤로 줄포에서 곰소를 지나는 곰소만의 평평한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직소폭포로 향한다. 천천히 걷다 보니 가을빛을 담은 산중의 호수, 중계 계곡의 직소보가 눈길을 잡아끈다.
많은 사람이 쉬며 담소하고 간식을 먹는 마당바위를 지나 재백이고개(해발 160m)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곰소만 바다에 눈길을 주었다가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쌍선봉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춰 선다. 이곳 인근 보안면 우신 마을에 선계골이 있다.
청년 이성계가 부안 선계골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련에 열중하던 중 옷차림은 남루하나 높은 기상이 엿보이는 두 노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우리는 그저 이산 저산 떠도는 늙은이들인데 과한 대접을 받아 고맙구려.”
이성계는 노인들에게 글과 무예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더니 아무 막힘이 없이 척척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분 어르신께 청이 있사온데 허락하여 주십시오.”
“신세도 졌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들어주지요.”
“오늘부터 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여 큰 뜻을 펴보고자 하오니 물리치지 마시고 시생의 앞날을 지도하여주시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성계가 엎드려 청하자 두 노인은 한사코 사양하다가 끈질긴 간청과 정성에 감복하여 쾌히 승낙하고 사제의 의를 맺게 되었다. 두 노인은 선계골에 묵으면서 한 사람은 학문을, 또 다른 한 노인은 무예를 지도하였는데 어찌나 총명하던지 이성계는 날로 달로 발전하여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세상에 나가 큰 뜻을 펼치도록 하여라.”
이성계는 그동안의 가르침에 대해 마음 깊이 사례하고 작별을 하려는데 사제의 정이 어찌나 깊었던지 서로 헤어지기 안타까워 이야기 나누며 걷다가 선계골 암자에서 북쪽으로 삼천 걸음이나 떨어진 어느 봉우리까지 오게 되었다.
“이젠 그만 헤어지자꾸나.”
어쩔 수 없이 두 스승에게 하직의 절을 올리고 일어서자 두 스승은 온데간데없고 그 앞에 높은 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있는 것이었다.
이 봉우리가 쌍선봉이라 하니 두 선인의 실루엣이나마 찾으려 유심히 올려다본다. 지금도 선계골에는 이성계가 공부했다는 암자의 주춧돌과 그가 심었다는 대나무밭이 남아있으며, 활을 쏘고 말 달린 자리라고 전하는 반석 위에 말발굽 흔적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다고 한다.
쌍선봉에서 시선을 거두고 우측으로 틀어 직소폭포에 닿는다. 변산 8경 중에서도 손꼽는 직소폭포는 조선의 여류시인 매창 이계생, 유희경과 함께 부안 3절로 꼽는다.
부안 출신의 신석정 시인은 시와 거문고에 능한 기생 매창과 대쪽 선비 유희경이 변산에서 나눈 사랑을 황진이와 서경덕에 비유하고, 박연폭포와 직소폭포를 견주어 송도 3절을 패러디하였다.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을 보지 않고는 변산을 논하지 말라고도 하는데 2단 전망대의 상단에서 시선을 머물면 그런 말들에 공감이 간다.
폭포 밑의 용소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검푸르다. 물줄기는 제2, 제3폭포로 이어지고 분옥담과 선녀탕에 고였다가 아래로 흘려낸다. 다시 직소보를 가까이 접하게 되는데 위에서 본 것과 달리 꽤 큰 인공저수지이다. 부안댐이 생겨 지금 상수원의 기능은 없어졌지만, 물이 귀했던 변산의 식수로 사용했던 이력을 지니고 있다.
직소보로 인해 더욱 넓어진 산상 호수에 묵연히 시선을 담그고 생각마저 끊어내자 속은 수면처럼 잔잔하고 아늑해진다. 하트 모양의 직소보 전망대에서 보를 앞에 두고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전경이 그림처럼 멋지다.
폭포의 물줄기도 폭포답지만, 폭포수를 담았다가 흘러내리는 물길들이 더욱 직소폭포의 이름값을 높여주는 듯 깊고 맑고 짙푸르다. 월명암으로 갈라지는 자연보호 헌장 탑 삼거리에서 시계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남여치 방향으로 향하면서 보폭을 넓힌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조금 서두르면 쌍선봉을 넘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마음을 정하고 월명암 쪽으로의 조망을 만끽하며 풍부한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를 한껏 흡입하니 속속들이 개운하다.
“이젠 훌훌 떠나가도 붙들지 않으마. 가을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붉고 노란 공간에서 무척 행복했었구나.”
고요한 월명암을 지나 오솔 숲길 사색에 젖어 걷다가 쌍선봉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남여치, 최종 날머리에서 뿌듯한 포만감에 젖으며 내변산과 그리고 지는 가을과 작별한다.
때 / 늦가을
곳 / 내소사 매표소 - 내소사 – 세봉 삼거리 - 세봉 – 관음봉 삼거리 - 관음봉 – 관음봉 삼거리 - 재백이고개 - 직소폭포 - 직소보 – 자연보호 헌장 탑 - 월명암 - 쌍선봉 - 남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