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22
허름한 바위 앞에 을씨년스럽게 서대산 전적비가
안내문도 없이 세워져 있다.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역이었던 서대산 일대는 동학혁명 때
관군을 피해 농민군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다
남한의 중앙부에 있는 충남 금산군은 동쪽으로 충북 영동군, 서쪽으로 전북 완주군과 접하고, 남쪽은 전북 무주군과 진안군, 북쪽은 대전광역시 및 충북 옥천군과 접하니 4개 광역단체에 고루 접하고 있는 셈이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두 산지 사이의 산간 분지로 형성되어 서대산, 대성산, 천태산, 대둔산과 마이산 등의 산악군을 형성하며 도내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에 해당한다.
금산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인삼의 고장이다. 세계 최대의 인삼과 약초상이 밀집한 인삼, 약초 타운을 중심으로 금산 인삼 축제가 열린다. 금산의 주요 문화행사로 대통령 수상작인 금산 좌도 풍물놀이, 살무사 농요를 비롯하여 인삼의 신비가 서려 있는 진악산 산신제와 금산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 전국 최초의 환상적인 촛불잔치가 열려 금산 특유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바로 그곳, 금산에 있는 서대산西臺山은 충남에서 가장 고지대인 금산 고원의 주봉으로 충남의 여러 산중 최고봉이다. 높이에 비해 산세가 온후하고 아름다우나 원추형의 암산을 이루고 있어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
땅속에서 그대로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는 서대산은 산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비래산에 가까운 형태라 하겠다. 동북으로 옥천읍에 가깝고 서쪽으로 금산읍에 접하여 완사면은 금산 인삼재배에 활용도가 높다.
생기 가득하여 여유롭고 풍요 충만한 서대산에서의 조망
드림리조트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서대산 들머리에 세워진 산행 안내판을 보니 1코스부터 4코스까지 네 군데의 등산코스로 구분해 놓았다.
리조트로서의 활용도는 떨어진 듯 보이는데 계단 옆으로 빨간 지붕의 몽골식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몽골촌이라 이름 지은 곳이다. 몽골촌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1, 2 등산로와 3, 4 등산로로 길이 갈라진다. 1, 2 등산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삼거리에서 좌측 1코스로 향한다.
다녀간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우측 2코스도 주 능선에 합류하게 된다. 주 능선까지 다소 급한 경사길이지만 여유롭게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서이다. 주 능선에서 다시 내려와 정상 쪽으로 고도차가 거의 없는 육산의 헬기장을 거치고 흥국사 갈림길을 지나면서 바위 봉우리를 크게 돌아 우회한다.
정상 일대에는 강우 레이더 기지가 있다. 항시 개방하는 듯 문이 열려있고 레이더 기지에 필요 물품을 실어 나르는 삭도가 있다. 돌탑이 쌓인 서대산 정상(해발 904m)에서 대둔산과 계룡산을 두루 둘러보다가 멀리 대전시가지에서 좁혀 들어와 금산군 일대를 내려다본다. 파란 하늘, 아직 무성한 푸름 아래로 마을과 그 주변에 생기가 가득하다. 여유롭고 풍요 충만한 광경이다.
파스텔톤 하늘, 창창한 푸름
노상 수려한 환상만 쫓았다면
어찌 되돌아와 만날 수 있었을까
현기증 노랗게 일으키도록 햇빛 찬연한 건
산이 있고 구름이 있고
거기 고혹한 안개가 있었기 때문이지
침침하게 주름져 헐거운 속살 드러낸들
결코, 외면 않는 그대이기에
애절하도록 숨찬 속 가다듬고
예 왔음이지
허한 육신 더 지탱해 비록
오래 머물지 못할지언정
손 뻗으면 하늘 닿을 산정에서 노래 부름에
겨운 행복 아무리 해도
감출 수 없음이지
여기 서대산에 오기 전에 들렀던 추부면 요광리 방향으로 시선을 모은다. 금산의 명물이며 천연기념물 제84호인 금산 행정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다. 수령 1000년 이상으로 추정하는데 어찌나 크고 우람한지 나무 옆의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정자가 아주 작아 보였다.
무더운 여름밤 나무 밑에서 개를 데리고 잤는데 호랑이가 다가왔다가 거목의 형체에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전설이 있고,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며 잎을 삶아 먹으면 노인의 해소병에 효험이 있다고도 한다.
원줄기가 성하게 자랐다면 용문사 은행나무보다 컸을지도 모르겠다. 재난이 닥칠라치면 큰소리로 미리 알려주어 지역민을 보호해 주는 신목으로 여겨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흘 자정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치성을 드린다.
잎은 무성하지만, 아직 제대로 물들지 않아 신성이 덜한 행정 나무를 새기다가 이곳 정상 아래에 있는 옥녀 탄금대가 어디쯤인지 가늠해본다. 거기엔 영험한 샘이 있는데 일곱 번 이상 샘물을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 길이 열리고 첫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내로라하는 성형외과를 가기 전에 먼저 옥녀 탄금대를 찾아볼 만할 것이다.
머리가 하얘지는 전설을 되뇌다가 정상에서 내려선다. 장군바위라 명명한 커다란 바위에서 돌아서면 레이더 기지 일대의 풍광이 그런대로 볼만하다. 바위를 돌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사자를 닮지 않은 사자바위에 이르는데 여기도 좋은 조망 장소다.
덕유산과 민주지산, 대둔산과 계룡산으로 이어지면서 굽이치는 마루금을 눈에 담을 수 있어 휴식처로서도 그만이다. 기암괴석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산로 군데군데 바위들이 숱하게 널려있어 눈길을 스치게 한다.
용바위 위쪽으로 길이 10여 m쯤 되는 굴이 있는데 굴 아래쪽에 시멘트로 만들어놓은 용은 부식되어서인지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허름한 바위 앞에 을씨년스럽게 서대산 전적비가 안내문도 없이 세워져 있다.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역이었던 서대산 일대는 동학혁명 때 관군을 피해 농민군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1·4 후퇴를 하게 되면서 옥천지역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는데 서대산에 은거하던 빨치산들과 싸움이었다. 정규군끼리의 대규모 전투는 없었지만, 빨치산들과의 비정규전으로 옥천읍 내 행정관서와 주요 기관이 불에 타는 등 폐허를 경험하였다. 이래저래 전적비가 세워질 만한 서대산이다.
등로를 모두 벗어나면 산신각이 나타난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개덕폭포는 서산대사가 기도하여 득도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최근에 서대폭포로 명칭을 바꾸었다.
서대산은 입구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매머드가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개덕사는 매머드의 번식을 위한 생명줄인 생산을 하는 자리에 있다고 한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나 내력이 전하지 않아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이곳 개덕사 앞 무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이곳을 들머리로 하여 산을 오르는 이들도 많다. 아담한 사찰 개덕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서대산 탐방을 마친다.
산에서 내려와 금산군 금성면에 소재한 칠백의총七百義塚(사적 제105호)을 들러본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 선생과 의승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의 의병이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1만 5천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를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나흘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이곳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명명하였다.
칠백의총 앞의 종용사에 의병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여기서 잠시 묵념을 하고 칠백의사 순의탑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면서 금산과 서대산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때 / 초가을
곳 / 드림리조트 주차장 - 제1 산행로 - 흥국사 갈림길 – 강우 레이더 기지 - 서대산 - 장군바위 - 용바위 - 개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