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산 5
순백純白이란 다 용서하여 다 덮어줄 수 있는 것,
드러내어 시빗거리 삼을 게 아니라 품어주고
감싸주어 속으로 녹여지게 만드는 것.
산은 책이다.
찬찬하게 사람들의 웃음 가득한 걸음 뒤쫓다가 바위의 실체를 꿰뚫으려 걸음 멈추고,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파란 하늘을 올려보며 다다른 정상에서 가끔은 산을 오른 것인지 한 권의 책에 푹 빠졌었는지 혼동하게 될 때가 있다.
읽으면서 쏠쏠한 재미, 다 읽은 후의 개운한 여운, 페이지 다시 열어 가슴 문지르는 잔잔한 감동을 되새기노라면 얼른 다음 권을 펼치게 된다. 산과 산을 잇는 연계 산행은 그래서 두 권 이상의 장편 소설을 읽는 것과 비유하곤 한다.
교통상황이 불편해 마음에 담아두고도 쉬이 접근하지 못했던 용화산, 오봉산, 부용산의 종주 기회가 생겼다. 모 산악회에서 세 산을 잇는 산행 계획을 잡았는데 거기 편승하기로 한 것이다. 용화산과 오봉산은 각각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부용산까지 약 17km의 중장거리 산행에 합류했다.
승자 승천勝者昇天의 용화산
아침 8시 조금 지나 화천 큰 고개에 도착한다. 바로 용화산 들머리로 정상까지 오르는 최단거리 진입로이다.
수십 족의 다리가 마구 뜯긴 지네 한 마리가 낮은 몸뚱이를 더욱 낮게 낮추어 상대를 노려본다. 상대는 비늘이 뜯기고 등짝 곳곳이 찔려 흉측해졌지만, 이빨에 독을 품고 공격 자세를 가다듬으며 꼬리를 움직인다. 절지동물과 파충류의 자존심 걸린 2라운드 격전이 펼쳐질 조짐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하늘로 올라간다.
“누가 이겼을까.”
승자 승천勝者昇天, 지네와 뱀이 싸워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화산龍華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누가 이겼는지는 통 언급이 없어 궁금해하며 오르는데 주로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답게 나무 사이로 기묘하게 생긴 바위 봉우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화산에는 처서에 즈음해 전국 각지의 심마니들이 몰려들 정도로 산삼이 많이 나는 데다 소나무 군락지에서 자생하는 송이버섯은 그 향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상어바위를 지나 전망대에 이르도록 산삼은 고사하고 송이 향조차 냄새 맡지 못했지만, 시야가 확 트인 신록의 조망이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바위를 뚫고 솟은 건지 아니면 바위에 뿌리를 내린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암목 일체가 된 소나무들이 기둥이며 가지를 크게 비틀어 마치 춤을 추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주봉인 만장봉의 수직 단애가 단단한 위엄을 풍기고 그 뒤로 촛대바위가 오뚝하게 하늘을 찌른다. 왼쪽 측면에서 본 촛대바위는 도봉산의 우이암처럼도 보이고 무소의 뿔을 연상하게도 한다. 날카로운 칼날을 세워놓은 형상이라 칼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용화산의 암릉 미를 돋보이게 하는 위풍당당한 바위임에 이의를 달 수 없다.
굵은 밧줄 길게 이어진 이 칼바위를 지나 삼거리에서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00m, 수풀 사이 나무계단을 오르니 만장봉(해발 878m)이다.
춘천 일대의 산야가 쭉쭉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삼악산, 금병산, 대룡산의 산군과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와 파로호까지 시야를 꽉 채운다. 저만치 경기 최고봉 화악산까지 조망된다.
지네와 뱀, 누가 용이 되었을까. 급히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훔치는데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누가 용이 되었든 비늘 찢어지고 다리 뜯어져 하늘인들 제대로 올랐을까. 여기 화천,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중 격전지였던 곳. 저 아래 파로호는 그 당시 생포한 포로가 부지기수라 인공호수를 만들어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화천댐이 건설되기 전 이 지역 마을 주민들은 큰 봉황을 숭배했는데, 봉황이 날개를 펴면 구만리를 날았다고 하여 인근 마을 이름이 구만리였다. 주민들은 이 호수를 큰 봉황을 뜻하는 대붕호大鵬湖라 불렀다.
한참이 지나 6·25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말, 이곳 대붕호 근방에서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펼쳐 2만 4천여 명을 사살하고 7천9백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린다.
이때 사살된 수많은 중공군이 수장되면서 대붕호는 치열한 전장 혹은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후일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 현장을 방문하여 깨뜨릴 파破, 오랑캐 로虜의 휘호를 적어 파로호破虜湖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과연 승자가 있던가. 이 산 오기 바로 전, 작금의 저 세상 안은 또 어떻던가. 용으로 화하려 물고 뜯고 죽이는 게 어디 지네나 뱀뿐이겠나. 제 배 채우려, 제 욕구 채우려 필요의 한계를 넘는 이들이 좀 많은가 말일세.
바위 뚫고도 곧게 뻗은 노송처럼 작금에 와서도 산에서든 세상에서든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기는 어려운 걸까. 겨울이면 백설로 다 덮어 하얘지고 여름이면 초록 물 뚝뚝 떨어지도록 녹음 무성한데 우리네 삶 무어 그리 대단한 허물이라고 저만큼도 덮어두지 못할쏜가.
순백純白이란 다 용서하여 다 덮어줄 수 있는 것, 드러내어 시빗거리 삼을 게 아니라 품어주고 감싸주어 속으로 녹여지게 만드는 것. 지네와 뱀이 상대를 이기려 싸운다는 게 얼마나 기막힌 발상인가. 세상사의 황당한 억지 이기심을 빗댄 풍자 아니겠는가.
나잇살깨나 먹으니 이젠 계산하여 선별할 때가 아니라, 보내고 돌아설 때가 아니라 서로 합유 하며 감사하고 흡입해야 할 때란 생각이 자꾸 든다.
무르팍 튼실하고 에너지 소진되기 전에 하염없이 올랐다가 내려와서 생각만큼 못 따라주는 처세까지 긍정하며 또 오르면 되지 않겠나 싶다.
산에 오르면
헤아리고 또 헤아려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다.
가파른 등성이 호흡마저 거칠어지면
없어져도 그만일 흘린 부스러기
줍고 쓸어 담아 여미고 포개 놓게 된다.
눈에 가득 아름답던 날들
마음에 가득 아스라한 날들
속으로 또 속으로 까맣게 타들어 가던 날들까지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과 바위의 유연한 포용력
만장봉에서 내려와 7.5km 거리의 배후령으로 향한다. 숲길과 바윗길이 반복되고 발밑으로 한가롭게 조팝나무, 금마타리 등의 야생초가 피어있다. 고탄령을 지나 사여령 가는 길로 접어들면서는 기암 바위들과 바위 구간은 자취를 감추고 흙산으로 접어든다.
수불무산 갈림길을 지나고 우측 1.2km 내리막의 휴양림으로 가는 사여령에 이르렀다가 다시 배후령을 향해 직진한다. 춘천 시내와 화악산에 눈길을 주면서 잠깐씩 오르고 내려서다 보니 임도 지나 해발 600m라는 표지판과 이곳이 38선이라는 바위 표지도 보인다.
춘천시 신북읍과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46번 국도상의 배후령은 용화산과 오봉산을 연결하는 날머리이자 들머리이다.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어 교통은 편리하고 안전해졌으나 고갯길 옛 정취는 그만큼 반감된 듯하다.
경운산, 경수산, 청평산이라고도 불려 왔던 오봉산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가 연이어 있어 오봉산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막상 올라가서는 그 구분이 쉽지 않다. 정상 일대에는 일곱 혹은 여덟 개까지 봉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같은 이름의 오봉산은 함양, 보성, 완도에도 있다. 완도 오봉산에서 아득하게나마 한라산을 조망한 적이 있었고 다른 오봉산들은 아직 미답지이다. 배후령에서는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땀방울이 송송 맺힐 즈음 배후령 너머로 지나온 용화산과 시선이 마주친다.
“더 이상은 이전투구의 싸움 장소가 아니길 바랍니다.”
“그래야지. 싸움의 상처 아물거들랑 한 번 더 오시게. 지네랑 뱀이랑 푹 고아서 보양식 준비하겠네.”
“산삼이랑 송이도 같이 넣어 끓여주신다면.”
양옆으로 손잡이 난간이 있는 바위 오르막을 넘어서면 몇 조각의 큰 바위틈에서 사선으로 기울어진 소나무가 그래도 강건하게 가지를 뻗치고 있다. 솔잎도 무성한데 더욱 경이로운 건 바위를 헤집고 뻗어 내린 뿌리가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과 바위의 유연한 포용력이 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가 싶더니 참한 교훈을 새기게도 한다. 청솔 바위라고 새겨져 있다. 오봉산의 경계표 중 하나이다.
오봉산의 손꼽는 칭찬거리 중 하나가 소나무라 생각한다. 배치고개라고도 부르는 백치 고개에서 올라오는 오봉산 등산로에도 조경수처럼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많은 소나무가 바위와 어우러지고 기둥이 붉은빛을 띠었는데 여기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그루 소나무를 보게 된다. 하늘 높은 건 모르고 땅 넓다는 것만 아는지 바위틈으로 뿌리내린 소나무가 기둥과 가지를 높이 뻗지 못하고 납작하게 거의 수평으로 펼치고 있다.
중국 한나라의 한신은 저잣거리에서 한낱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어 사소한 다툼을 피한다. 때가 되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한나라 대장군으로서 초나라 항우를 사면초가에 빠뜨려 결국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중국 통일의 일등 공신 한신은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모두 마다하고 주저 없이 시골로 내려가 촌부의 삶을 택한다.
세상은 무한하게 넓기에 몸 낮춰서도 얼마든지 뻗어 나갈 공간이 있음을 웅변하는 소나무에서 문득 한신의 처세가 떠오르는 것이다. 수평으로 누워 제 가지들을 늘어뜨리는 고귀한 응집력, 진정 제 할 바가 무언지 아는 무한, 무조건의 책임감을 보는 듯하다.
짙푸른 우거짐 아래로 소양호가 잔잔하다. 소양호 우측으로 볼록 솟은 가리산도 보인다. 구름이 흘러가면서 가평, 양평, 화천과 홍천 일대의 일면식 있는 산들이 고개를 내민다.
산화한 산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진혼 비를 지나고 거듭되는 밧줄 구간을 또 지나 암봉 꼭대기에 다다르자 아래로 배후령이 재단 선처럼 길게 가로금을 긋고 있다.
약간의 가파름이 있기는 하지만 배후령에서 오르는 오봉산 정상은 청평사로 오르는 길에 비해 무척 수월한 편이다. 화천 쪽으로 넓게 트인 풍광과 명품 소나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음미하다 보면 능선에 닿게 된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지나면서 용화산의 정상석보다 아담한 정상석을 만나게 된다. 3년여의 세월이 지나 다시 오봉산 정상(해발 779m)에 서니 반갑고도 감회가 새롭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청평 나루까지 운항하는 배편을 통해 왔었다.
“그땐 만산홍엽 붉게 물든 가을이었지요.”
“지금도 청평사 쪽의 가을 단풍이 죽여주거든.”
“다시 찾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안산 하게나.”
잠시 해후의 인사를 나누다가 길을 재촉한다. 부용산과 청평사로 갈라서는 오봉산 3 지점에 이르자 3년 전 초겨울 급경사 구간인 소요대와 천단으로 올라와 홈통 바위에 이르면서 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때가 떠오른다.
느닷없이 나타난 암벽 구간에서 초긴장했던 그때를 회상하다가 2.1km 이정표의 부용산이 있는 길로 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도로 백치 고개가 나온다. 여기서 부용산 정상까지는 어수룩하다.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깔딱 고개를 오르면서 땀깨나 뽑는다.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 경계에 있는 부용산芙蓉山(해발 882m)은 오늘 걸어온 것처럼 백치 고개를 가운데 두고 오봉산과 마주하고 있어 소양호 선착장을 이용하거나 배후령에서 진입할 수 있다. 길게 머물지 않고 호반으로 내려간다.
선녀봉이라 일컫는 871m 고지를 지나자 내리막길 숲 사이로 소양호가 모습을 드러내고 호반 도로도 보인다. 하늘소 민박이 있는 날머리에 도착하면서 지네와 뱀의 혈투, 연합군과 중공군의 격전으로 시작된 액션은 소나무와 바위가 창출하는 휴머니즘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다소 모호한 장르의 책을 덮고 아침에 타고 왔던 산악회 버스에 오르자 눈이 침침해지면서 눅진하게 피로가 몰려온다.
때 / 초여름
곳 / 큰 고개 - 칼바위 - 용화산 만장봉 - 고탄령 - 수불무산 갈림길 - 사여령 - 배후령 - 청솔 바위 - 오봉산 - 삼거리 - 백치 고개 - 부용산 - 선녀봉 - 하늘소 민박
https://www.youtube.com/watch?v=t5UDfk0c_4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