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설악산
펑펑 쏟아져 길마저 덮으려나 아침나절 사뿐 나부꼈는데
한계령 굽이 비탈 낮게 안개 깔리고 바람 제법 거칠다.
여심폭포 비껴 돌아 등선대 닿을 즈음 하늘 검어지나 싶더니
뽀얀 눈꽃송이 드리운 구름 거둬간다.
등선폭포 십이폭포 오색까지 소외될 새라
봉우리 틈틈새새 은빛 햇살 내비친다.
남설악 흘림골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언제나 안개가 끼고 흐린 것 같다고 하여 이름 지어졌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어 내리막길에 위치한 흘림골은 그 이름값을 하려는 건지, 거기 더해 눈 뿌림까지 있어서인지 역시나 온 사방이 뿌옇게 흐려있었다.
꿩 대신 닭이던가. 아님 꿩 잡는 게 매던가. 설악 종주, 공룡능선을 맘에 두고 출발했던 길이 적설로 인한 입산통제라니 어쩌랴.
허다한 갈림길
헤매고 헤매는 게 삶
바위길, 샛길
이끄는 대로 가는 게 산
찾아 멈춘 곳이 정착할 곳 아닌데
발 닳도록 헤매며 허우적이는 건
타고난 본능에 불과할 뿐
한 움큼 햇빛 손바닥에 쥐어지고
한 자락 달빛 가슴에 스며들기에
어디로 향하든
어디에 머물든
나, 낯설지 않네
물소리조차 얼어붙은 계곡에 싸락눈이 흩날린다. 수많은 바위와 나무들 아우성 거릴 법도 한데 고요하기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불던 바람마저 멈춘 계곡에 다시 정적이 인다.
흘림골과 등선대 중간지점에 있는 여심폭포는 여인의 몸과 흡사하여 여신女身폭포라고도 불린다.
오밀조밀 모인 칠형제봉의 모습에서 깊은 우애를 보게 된다.
심설 남설악 자락에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고독하단 생각이 들게 한다. 숱한 실체가 이리저리 존재하거늘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는 건 어둠보다 큰 고독이다.
사방 펼쳐진 기암괴석이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는 만물상의 중심 등선대 바로 아래까지 왔다.
내려다보이는 구불구불 계단길이 가도 가도 그 자리 벗어나지 못하는 판박이 고된 삶처럼 인식되는가 싶더니 부처님 손바닥을 헤매다 지치는 처량한 인생역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등선대 꼭대기에 오르니 신선이 아니더라도 공중 부양하듯 하늘로 치솟을 것만 같다.
고독해서 왔지 않은가. 얼음처럼 뭉친 고독 잘게 으깨려 온 곳이 산이잖은가.
내려가 보세, 내려가 하얀 눈길 걷다 보면 거기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거기서 털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
햇살, 물, 꽃…
여명, 안개, 단풍…
노을, 서리, 낙엽…
바람, 눈, 고목…
수없이 거듭되고
끝없는 생동生動의 부침浮沈이 있건마는
자연은 산과 함께 침묵하는데…
우리네 일들은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밤톨만 한 배려에도 생색 투성인가
서북주릉은 내설악과 남설악을 구분 짓는 약 20km의 험준한 경계 능선으로 12 선녀탕, 안산,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으로 이어진다.
점봉산 자락에 시선을 담그고 있으면 육산으로서의 뚜렷한 등선과 기기묘묘한 바위가 조화로운 드넓은 품에 안긴듯한 착각에 빠지고 만다.
한계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마주한 점봉산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면서 남설악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설악산의 더부살이 일가가 아닌 엄연한 독립 주체이다. 그 속함의 여부가 무어 중요하겠냐마는 굳이 설악산과 분리해서 점봉산을 존중하고 싶은 건 천연기념물이나 법정 보호식물 등 생물종의 다양함이 그렇고 설악산과 달리 야단스럽지 않아 자연생태의 훼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또한 단목령, 점봉산, 망대암산을 지나 한계령을 지나는 백두대간 종주의 주릉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등산로를 통제하고 특히 곰배령은 사전에 입산허가를 얻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보존에 신경을 쓰고 있다. 범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점봉산의 카리스마에 매료되는 것 같다.
구불구불 굴곡진 길 오르는 수고로움, 내려오며 풀어지고 송송 맺힌 땀방울일랑 내려서서 씻어내니 오름과 내림이 함께 산행인 것처럼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겠나. 눈 오면 눈 밟고 비 내리면 물 밟으며 이고 지고 바람에 실려 둥둥, 훨훨 떠가는 게 삶 아니겠나.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터까지를 주전골이라 부른다.
계곡에 들어서면 불상 1만 개가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만불동 계곡이라고도 칭하는 주전골이다.
오밀조밀 밀착하여 전체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주전골이야말로 이해타산과 부귀영화에 집착하여 이합집산, 합종연횡 등 배신을 타당하게 명분 삼는 정치인들에게 정치윤리의 교육장으로 추천하고픈 생각이 든다.
십이폭포, 용소폭포 등 주전골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여 금강문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여기부터 잡귀의 출몰이 없다고 여겼었나 보다.
주전골 입구 오색천 아래 너럭바위의 암반 세 군데 구멍에서 철분 함량이 많은 알칼리성 약수가 솟는데 이곳 오색약수터가 남설악 산행의 종착지이자 역산행의 시점이다.
때 / 겨울
곳 / 흘림골 매표소 - 여심폭포 - 등선대 - 등선폭포 - 주전폭포 - 십이폭포 - 금강문 - 선녀탕 - 성국사 - 오색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