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 평강을 위해,
그리고 내 나라 고구려를 위해

태화산 - 온달의 진면목을 살려내고자

by 장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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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팔경의 명승으로 이름을 알리고 고수동굴, 온달동굴, 천동동굴 등 동굴지대로 유명한 충청북도 단양군은 2012년 개장된 아쿠아리움 다누리센터가 주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민물고기 생태관인 다누리 아쿠아리움에는 국내 어류 63종 2만여 마리, 해외 어류 87종 1600여 마리가 있는데 수족관은 단양팔경을 테마로 꾸며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소백산, 금수산과 용두산이 있어 단양과 친근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태화산을 탐방하기 위해 단양을 찾게 되었다.


‘남한강 굽이도는 북벽’, ‘상 2리 느티’


두 개의 자연 석비가 나란히 세워진 곳에 버스가 섰고 그곳에서 스무 명의 일행이 모두 하차하였다.

북벽은 온달산성, 다리안산, 칠성암, 일광 굴, 금수산, 죽령폭포, 구봉팔문과 함께 제2 단양팔경에 속하는데 그중 제1경으로 영춘면 상리 느티마을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 변에 깎아지른 듯 병풍처럼 늘어선 석벽을 말한다. 봄 철쭉과 가을 단풍이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 당시의 태수 이보상이 이 절의 벽면에 북벽北壁이라 암각 한 후 지금까지 그렇게 불려 오고 있다.



삼국의 각축장이자 온달 장군이 전사한 태화산


충북 단양군과 강원도 영월군에 걸쳐 남한강 유역에 솟은 태화산太華山은 이곳 상리교차로 옆의 상리 농장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산을 오르게 된다. 오르면서 보면 남한강을 끼고 왼쪽으로 늘어선 마을 풍경도 한산하고 오른쪽으로 솟은 산들도 묵묵히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52. 동강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jpg 동강 일대가 한눈에 잡힌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고도가 높아진다. 소나무 숲을 지나 지능선에서 완만한 사면을 걸으면 화장암이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표지가 가리키는 곳으로 따라가면 임도에 이르게 되고 다시 등산로를 거슬러 올라 휴석동 갈림길에서 태화산 방향으로 직행한다.

지도상 세이봉이라고 표기된 899m 봉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소백산 자락은 떠오를 때마다 눈꽃 핀 주목 군락, 철쭉 만발한 고원이 생생하다.

잡목 우거진 숲길 능선을 따라 1022m 봉에 이르자 정상까지 10분 남았다는 표시가 있다. 우측으로 그쯤 되는 거리에 정상이 보인다. 단양과 영월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약간의 산길을 오르내린 후 태화산(해발 1027m)에 다다른다.

단양군과 영월군에서 각각 정상석을 설치했다. 충청북도와 강원도가 만나는 2도 봉인 셈이다. 정상에 이르는 산행 중에도 태화산은 그저 그럴 정도로 밋밋하고 완만하여 험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산세가 험해 전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다.

단양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되짚어보면 태화산이 얼마나 험준한 요새지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삼국시대에 일시 백제에 속했으나 곧 고구려에 복속된 단양은 신라 진흥왕 때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신라의 영토로 만든다. 이때가 서기 551년이었는데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후삼국 시대에는 태봉국의 영역이 되기도 하였다.


“넌 울보라 귀한 사람의 아내는 못되겠다. 아무래도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내야겠다.”


평강왕(평원왕이라고도 함)은 평강공주가 울 때마다 그렇게 놀리곤 하였다.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 온달은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을 입고 해진 신으로 저잣거리를 다니니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왕께서 거짓말을 하신다면 누가 왕명을 따르오리까.”


후에 평강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평강왕은 공주를 상부上部 고 씨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평강공주는 예전에 아버지에게 들었던 농담을 들먹이며 온달에게 시집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화가 난 평강왕은 공주를 궁 밖으로 내쫓았는데, 이때 공주는 금팔찌 등의 패물을 잔뜩 가지고 나와 온달에게 시집가서 가난에 시달리던 온달의 집안을 일으켜 세웠으며, 온달에게 무술과 병법을 가르쳐 온달을 훌륭한 장수로 성장시킨다.

고구려는 해마다 3월 3일이면 낙랑樂浪의 언덕에 왕과 신하, 5부의 병사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그날 잡은 산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평강공주는 비루먹은 말을 한 마리 사서 잘 보살펴 훌륭한 준마로 키워 온달이 이 말을 타도록 했는데 온달은 이 말을 타고 낙랑의 언덕 사냥대회에 나가서 많은 산짐승을 잡아들였다. 평강왕은 평강공주가 시집갔다던 온달이 엄청나게 성장하여 나타나자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 작위를 내릴 것이니 예를 갖추어 맞이하라.”


중국 후주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 온달이 크게 전공을 세워 비로소 평강왕으로부터 사위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게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설화의 줄거리이다.

설화는 그렇더라도 실제로는 평강왕이 귀족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한 집안 출신들을 등용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딸을 유력한 신흥세력이었던 온 씨 집안에 시집보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만 이 신흥세력이 하급 귀족 출신인지 아니면 지위 자체는 높지만, 기존 세력과 대립하던 세력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어 말하였다.


“신라가 한강 이북의 우리 땅을 빼앗았습니다. 대왕께서 어리석은 저를 믿어주신다면 군사를 주시기 바랍니다. 가서 반드시 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영양왕이 허락했다. 온달은 전장으로 떠나면서 결연하게 맹세하였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


단양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각축전을 벌였음을 알려주는 크고 작은 성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영춘에는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축조했다는 성산고성(일명 온달성)이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성산의 정상 일대에 돌로 쌓은 산성(사적 제264호)으로 삼국사기에 신라가 침입해 오자 고구려 평강왕의 사위 온달 장군이 이 성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온달의 죽음을 슬퍼한 고구려인들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려 하였는데 시신을 담은 관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이제 편안히 가시옵소서.”


평강공주가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위로하자 관이 움직였다.


바람,

눈,

흔들리는 솔가지

성벽 저편 두툼한 상흔

바위 너머 은빛 햇살

한 서린 영혼 푸근히 깨어나니

검은 용 승천하듯 열정 넘쳐나고

잰걸음 내디딜 때마다 푸른 에너지

무량하게 뿜어내네.


영춘면 하리 남한강 변에 있는 총길이 800여 m의 석회암 동굴이 14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온달굴(천연기념물 제261호)이다. 온달 장군이 수양하였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온달굴에서는 매년 10월 온달문화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온달이 전사한 위치에 대해서는 서울 광진구 아차산의 아차산성이라는 설과 충청북도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설이 엇갈린다. 두 곳에 모두 온달과 관련된 설화와 유적이 전해지고 있다. 아차산성이 온달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라는 게 다수설이다. 사학자들은 당시 삼국의 형세로 보아 고구려군은 남한강 상류인 단양까지 진출한 것이 아니라 한강 유역의 탈환에 나섰던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보온달과 울보 평강공주가 혼례를 올리고 온달이 문무를 익혀 장군이 되고 고구려 영웅으로서 전사하기까지의 역사를 되짚어보다가 하산 길로 내려선다.


“평강공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평강공주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연개소문이 반란을 일으켰던 642년에 즈음하여 생존했었다면 당시 고구려왕이던 영류왕과 남매이기 때문에 연개소문 측근에 의해 변을 당했을 거라는 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제 온씨 가문에서 고씨 가문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바위 경사가 나타나고 정상에서 600m 지점에 고씨굴과 큰골이 나뉘는 갈림길이 보인다. 여기서 5.1km 거리 표시가 되어있는 고씨굴로 향한다.

바위가 있는 조망터에서 북벽과 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줄기에 시선을 담갔다가 팔괴리 갈림길에서 고구려 때의 토성인 태화산성 터를 지난다. 줄곧 나타나는 이정표 상의 고씨굴 방향으로만 내려선다.

하산 직전 전망대 아래로 남한강이 유유하게 흐름을 이어간다. 임진왜란 때 고 씨 일가가 숨어 살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고씨굴(천연기념물 제219호)은 4억 년 전부터 형성된 석회암 동굴로 길이는 6.3km에 달한다.

동굴 안에는 온갖 형태의 종유석과 호수, 10여 개의 폭포 및 광장이 천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24종의 동굴 미생물과 박쥐 등이 서식하고 있다.

고씨굴을 둘러보고 나와 남한강 물길을 굽어보다가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한다.

53. 고씨굴교 앞에서 남한강과 태화산 일대를 둘러본다.jpg 고씨굴교 앞에서 남한강과 태화산 일대를 둘러본다



때 / 늦여름

곳 / 북벽 주차장 - 세이봉 - 1022m 봉 - 태화산 – 큰골 갈림길 - 태화산성 터 - 고씨굴교 - 고씨굴 – 고씨굴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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