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거슬러서라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막고 싶다

백운산 - 단종의 비운은 과연 속수무책이었던 걸까

by 장순영

남한강 수계에 속하는 동강은 강원도 정선에서 영월까지 57km에 이르는 긴 물줄기이다. 동강 12경이 말해주듯 퇴적작용으로 모래톱과 자갈톱이 자연 형성되고 돌리네, 우발레, 싱크홀과 같은 카르스트 지형이 많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검독수리, 수달 등 멸종위기의 희귀 동물이 서식하여 특별한 생태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2002년도에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된 백룡동굴을 비롯해 인근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동굴들이 있다.

동강을 거론하면 어라연을 빼놓을 수가 없다. 강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의 비늘이 비단처럼 빛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어라연, 동강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울창한 송림이 천혜의 절경을 이루어 2004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4호로 지정된 어라연은 래프팅을 즐기며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철쭉꽃잎 모두 떨어졌으나 이 산,

녹음 짙어 더욱 푸르기만 하네

골짜기 짙게 드리운 초록향기,

소쩍새 울음소리

더없이 청아하기만 하네

초여름 신록 딛고 오른 산정에서 나,

땀에 젖고 강물에 젖었다가

다시 푸름에 젖는다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다.’


초여름 뙤약볕을 쪼이며 점재마을 다리를 건넌다. 동강에서 바라보는 백운산은 정상에서 왼편으로 봉우리 여섯 개가 나란히 이어져 있고 동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한 급경사의 단애가 물살에 잠겨 단단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이 백운산 봉우리에 찔려 스크래치가 생길 것만 같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온통 푸릇하다. 코발트 빛 하늘과 진초록 녹음이 제대로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점재마을과의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곱게 핀 도라지 꽃밭을 끼고 백운산으로 향한다.

백운산-동강 나리소와 바리소.jpg 나리소와 바리소를 끼고 동강이 유유히 회전한다


급경사 길을 오르자 곧바로 건너온 점재교와 구불구불 동강 물줄기가 발아래 놓인다. 곧 동강이 회전하는 기암절벽의 왼편 물길, 동강 12경 중 3경에 해당하는 나리소와 그 오른편으로 바리소도 보인다.

유유한 흐름이 벼랑에 막혀 휘돌면서 이루어 놓은 나리소는 동강 유역 가파른 산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강변의 수직 단애, 백운산 자락의 소나무 숲과 제대로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다. 나리소 바로 아래로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과 비슷한 모양새의 바리소가 있다.

무성한 초록을 지나 백운산 정상(해발 882.4m)에 올랐을 땐 이마에서 철철 땀이 흐른다. 덥기도 하지만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무척 가파른 길을 올라왔다. 여기서 두루 시선을 옮기노라면 조선 6대 왕 단종과 7대 왕 세조의 비틀린 인연이 생생하게 재생된다.




"대군!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입니다. 취할 수 있을 때 취해야 합니다."


역사상 수많은 쿠데타가 있었다. 실패한 자에게는 피를 토하는 응징에 더해 서러운 낙인이 찍히지만, 성공하면 명분과 권력이 쥐어진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으므로 때가 끼었을지라도 과정쯤은 얼마든지 수정하고 왜곡할 수 있음이다. 불의도, 역사도.

되짚어 회고해 보건대 조선 6대 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그런 가설을 통해서라도 역사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건 세조와 그 일파의 찬탈 과정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왕실의 어른인 대왕대비나 왕대비가 발을 치고 왕을 도와 정치를 운영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바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이다.

조선 5대 왕 문종이 승하하자 열두 살의 어린 세자 단종이 왕위를 계승한다. 단종이 어리기는 했지만 후대에 단종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국정을 운영한 사례가 여럿 있다. 그들이 친정을 펼친 것과 비교하면 단종 또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으로 수양대군의 상승세를 누르고 점차 역량을 키워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후대에 중종의 비 문정왕후, 영조의 비 정순왕후, 순조의 비 순원왕후들도 열 살 전후한 왕들을 수렴청정으로 이끌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단종에게는 어머니인 현덕왕후와 할머니 소헌왕후가 모두 사망했기에 수렴청정으로 어린 왕을 보호해 줄 왕실 어른이 있지 않았다. 만약 소헌왕후가 대왕대비로서 강력하게 수렴청정을 하고 단종이 더 성장하여 친정을 펼칠 수 있게끔 하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거란 가설에 매달려보는 것이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을 때가 15세였다. 단종 복위를 위한 계획이 발각되어 이곳 영월로 귀양을 와서 사약을 받은 때가 17세였다. 그저 나이가 어려 아직 능력이 부족해 왕위를 빼앗겼다는 현실은 극복해낼 수 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쿠데타는 쿠데타일 뿐이다.’


왕권을 욕심낸 수양대군은 조카인 어린 임금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1454년 선대의 충신들을 처참하게 학살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영의정 자리를 꿰찬다. 단종을 제쳐두고 직접 정무를 관장하며 왕권을 장악하더니 실정이나 정책 과오가 없는 단종을 왕좌에서 물러나게 했고 급기야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유배를 보내기에 이른다.

잠시 투박해진 호흡을 가라앉히고 둘러보니 영월의 진산 봉래산 지붕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숨이 거칠어진다. 봉래산 또한 이곳 동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다. 단종의 몸종들이 그 아래 강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숙부인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아 마신 단종과 그런 단종을 슬퍼한 몸종들의 뒤 헝클어진 신세, 참담한 그들의 운명을 끌어안은 동강의 물살이 성삼문의 단심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하리라


왕위에 오른 세조는 집권 내내 역모 사건에 시달려야 했다. 반 세조 세력의 반발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 지은 이 단심가가 그 정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실패하고 처형장에 끌려가며 읊조렸다던가. 단심가의 봉래산은 중국 전설 속의 영산이 아닌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을 그리는 마음으로 저기 보이는 봉래산을 거명했다고 한다.


“이 사람아, 인두가 다 식었어. 더 뜨겁게 해서 지져!”


성삼문이 인두에 등을 지지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의연히 내지른 소리가 동강을 끼고 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위험한 싹은 애초에 뽑아 없애야 했기에."


비록 세조가 즉위함으로써 탁월한 정치를 펼쳤고 이전보다 나은 행정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데 그치지 않고 단종과 사육신까지 죽인 일마저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합리적이라 해서 옳은 일일 수는 없음이다. 결과에만 급급하여 수단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현실과 역사를 쥐락펴락하는 건 공평치 못하다. 후세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의 잣대로 세조의 과오를 헤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자꾸 드는 건 단지 선한 약자의 불행이 안타깝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에는 사육신 등이 국문을 받던 바로 그날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신숙주의 부인이 목매어 자살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소설로 각색한 허구이지만 성삼문과 신숙주의 두터운 우의, 그들의 판이하고도 아이러니한 결말을 후세 사람들이 얼마나 안쓰러워했는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성리학적 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시대에 유배된 단종에게 사약을 먹여 죽인 사례로 인해 조선 9대 왕 성종 대에 이르러 어린 왕을 보호하고자 하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은 그 당위성을 갖게 된다.

1979년 12·12 사태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다시 세우고 수많은 역사를 왜곡, 날조한 그들 정부에서 살아왔기에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게 멀미를 하는 것보다 더 메스껍다. 동강을 아래 두고 토할 수가 없어 맑은 공기 들이마시며 속을 진정하고 하산하기로 한다.

소나무 한 그루가파른 절벽에서도 몸을 비틀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트는 몸짓을 보며


이곳 제장마을에 사는 한 선비가 가마솥에 옻을 끓이고 있었는데 기르던 개가 사라져서 찾으러 나선다. 다행히 개가 발에 옻을 묻힌 채로 나가 그 흔적을 따라가다가 백운산까지 들어서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황홀한 절경을 대하게 된다.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한 선비가 옻 칠漆 자에 발 족足 자를 써서 그곳을 칠족령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지금의 제장마을과 문희마을을 잇는 고개다.

정상에서 2.4km 벗어난 지점의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동강 물줄기는 한 마리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트는 몸짓이다. 구렁이는 아무런 기척 없이 저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이 사는 세상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바짝 몸뚱이를 가라앉혀 세상 끝 언저리를 골라 기어가고 있다.

산과 산을 가르며 흐르는 곡류천을 바라보자니 사람 살아가는 인생사를 보는 듯하다. 부딪치다가 휘어 피하고, 가로막혀서 투쟁하여 뚫고 지나가는 개 인생살이의 단면 아니던가. 굽혔다가 곧추세워 흐르고 다시 굽이치는 동강의 흐름에 견주게 된다.

백운산-등로에서 내려다보는 동강.jpg 꺾어 도는 동강 곡류에 굴곡진 인생을 견주니 현기증이 인다


다시 보며 거듭 되짚어도 강물의 흐름이 삶의 그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거침이 덜하다. 막혀버린 삶을 어찌하지 못해 그녀들은 저 강물에 몸을 내던지지 않았던가. 도통 유연함이 없는 세상살이가 역사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맥없이 이어지고 있음에 저도 모르게 큰 숨이 새어 나온다.

어떻게 표현하든 산자락과 물줄기의 조화로움을 흠뻑 만끽할 수 있는 최적지 중 한 곳이 여기일 것이다. 날머리 제장마을에서 알알이 실하게 익어가는 청포도가 무척 탐스럽게 보인다. 정선의 산골 마을은 움직임이 없이도 그 정적 속에서 튼실하게 가꾸어지고 푸르러짐에 게으르지 않다. 유유한 동강의 흐름처럼 그저 차분히 생장하는 산중 촌락이 마냥 정겹다. 이곳만큼은 쿠데타니 혁명이니 하는 거추장스럽고 뾰족한 사안들에 영원토록 관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 / 초여름

곳 / 점재마을 - 병매기고개 - 백운산 정상 - 칠족령 - 하늘벽 구름다리(유리 다리) - 칠족령 전망대 - 제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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