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도청소재지인 홍성군은 서쪽 해안으로 천수만과 접해있고 동·남·북 쪽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홍성 8경 중 1경이자 1991년 자연휴양림으로 고시된 용봉산龍鳳山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형상이라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홍성 주민들은 홍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용봉산을 내세울 만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산 중에는 1000m가 넘는 고산 못지않게 절경인 산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용봉산이다.
발 닿는 곳마다 기암 묘봉의 파노라마를 연출
용봉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길이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입장료 1000원을 내고 휴양림 매표소를 통과한다.
“자연휴양림?”
산에 가면 자연휴양림이란 곳을 많이 보게 된다.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자연휴양림에 대해 정의해 놓았다. 국민의 정서함양·보건휴양 및 산림교육 등을 위하여 조성한 산림으로 휴양시설과 그 토지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국가, 지방자치단체 혹은 민간차원에서 하이킹, 캠프, 산림욕, 레저 등 자연에서의 관광이나 숙박을 위해 조성한 종합시설이다. 관광객 유치에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
휴양림 내부 도로에서 왼편의 운동장 쪽으로 가면 우측에 돌계단이 보인다. 용봉산 들머리이다. 삼거리에서 최영 장군 활터를 가리키는 좌측으로 간다. 바위산답게 돌계단과 바위 오르막이 이어진다. 바위가 있는 곳은 거의 조망이 트였다. 내포신도시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를수록 제2의 금강산이니 충남의 금강산이란 수식어를 붙인 게 마냥 부풀린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가야산, 도봉산, 월출산 등 수많은 바위 명산들이 있지만 여기 용봉산은 그 산들의 축소판 같은 모습이다.
병풍바위는 우람한 암벽들의 중첩된 모습이다
각양각색의 기암이 도열한 듯한 두꺼비바위
수백 장의 한국화를 보듯 시시각각 풍경이 바뀌는 것이 용봉산의 특징이란 말을 실감한다. 경사 급한 돌계단 길이 많아 높지 않은 정상까지 금세 닿을 것도 같은데 걸음이 빨라지지 않는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눈길을 잡아끌고 주변 산세가 걸음을 더디게 한다. 그렇게 두루두루 둘러보며 팔각정에 이르렀다.
“내가 화살을 쏠 거여. 네가 빠르면 엄청 후한 상을 주고 화살이 빠르면 네 목을 칠 거여. 할 거여, 말 거여?”
소년 최영은 애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위험한 내기를 걸었다.
“히히힝.”
최영의 애마가 하겠노라고 대답한다. 말에 올라탄 최영은 건너편 5km 지점의 은행정 방향으로 시위를 당겼다. 동시에 최영을 태운 말이 쏜살같이 달렸다. 단숨에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최영이 애마를 칼로 내리침과 동시에 피융 하며 화살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경솔했구먼. 미안혀.”
최영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후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함께 하고자 했던 애마를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홍성읍 국도변 은행정 옆의 금마총이란 곳이 최영 애마의 무덤이다. 최영 장군 활터. 바로 여기서 최영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고 활을 당겼던 곳이란다.
“최영은 삼국지도 읽지 않았나? 쯧쯧, 적토마에 뒤지지 않을 말이었을 텐데.”
조조의 군사에게 패해 죽임을 당한 여포의 적토마를 조조는 관우를 회유하기 위해 주었고, 관우는 적토마를 타고 오관 돌파를 하며 무수한 영웅담을 만들지 않았던가.
옹고집 노인네 최영은 어린 시절부터 올곧은 기질이었기에 이런 설화가 전해 내려왔을 것이다. 조선 선조 때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랴.”라는 주장을 펴고 대동계를 조직했다가 모반에 휩쓸린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도 최영과 똑같은 설화의 중심에 있다. 정여립 역시 자기 소신에 철두철미한 왕조시대의 공화주의자로 대변되는 인물이기에 자신의 애마를 죽인 설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의 명장이며 재상인 최영은 1316년, 여기 홍성의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났다. 공민왕 원년인 1352년에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였고 1358년 400척의 배로 오예포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면서 무반 장군으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1359년 홍건적 4만 명이 고려를 침입하였고 1361년에 다시 10만 병력이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자 이듬해 안우, 이방실, 이성계 등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개성을 탈환하였다.
고려는 홍건적 외에도 왜구의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었는데 이 시기에 최영은 신흥무장 이성계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왜구 격멸에 힘을 쏟으며 정치적 거목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내정 개혁을 둘러싼 이념 차이로 혁명파의 표적이 되어 역사적 소용돌이의 제물이 되고 만다. 73세의 노구에 보수 세력의 중심인물로서 혁명파의 지목을 받아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내가 평생에 탐욕의 마음을 가졌다면 무덤에 풀이 날 것이며 그렇지 않았다면 풀 한 포기 나지 아니하리라.”
최영이 참형을 당할 때 이렇게 말했는데 경기도 고양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는다. 그가 죽던 날 개경 사람들은 시장을 모두 닫았으며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심지어 부녀자나 어린아이까지도 모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하고 6년이 지나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최영의 넋을 위로하였다. 최영은 조선조 개국공신 혁명파들에 의하여 처단당한 인물이었음에도 조선조에 지어진 역사서에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그가 특별히 교훈적이고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최영은 재물에 뜻을 두지 않고 거처하는 집이 초라하였으나 만족하며 살았고 의복과 음식을 검소하게 하여 간혹 식량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지위는 비록 재상과 장군을 겸하고 오랫동안 병권을 장악하였으나 뇌물과 청탁을 받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그 청백함에 탄복하였다.'
고려사에 적힌 최영에 대한 기록이다.
“너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선친의 이러한 유훈을 깊이 새기고 재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최영 장군이었다.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어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용봉산 정기를 이어받은 충절의 고장답게 주변 10km 내외에서 최영 장군뿐 아니라,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 만해 한용운,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등 수많은 충신열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생가와 9백의총 등 위인들 삶의 흔적과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 등 많은 역사유적지가 곳곳에 남아있다.
활터에서 주 능선에 이르자 흙길이 반질반질하게 굳어있다. 그만큼 많은 산객들이 걷는다는 걸 보여준다. 험해 보이는 산세와 달리 크게 가파르지 않아 힘이 들지는 않는다.
용봉산 정상(해발 381m)의 좁은 정상석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에워싸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 노적봉을 보고 왼쪽의 악귀봉을 둘러본다. 역시 바위 봉우리다.
노적봉과 뒤편 왼쪽으로 악귀봉이 이어진다
다음 행로도 암릉 구간은 안전시설이 잘되어있어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다. 곳곳마다 바위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하여 여전히 눈은 호강한다.
노적봉(해발 350m)에서 면면이 새로운 형상의 주변을 살펴보고 다시 좁은 바위틈을 내려간다. 바위 위에 돌을 던져 올려놓으면 행운이 따른다는 행운 바위를 지나면서 흙길을 걷게 된다. 암릉 산행이 좋아 찾았지만 바윗길만 걷다 보니 짧은 흙길이 반갑다.
다시 바위를 딛고 도착한 악귀봉(해발 369m)도 바윗덩어리이다. 시설이 정비되어있지 않았으면 악귀처럼 험난한 길이라 그렇게 이름 붙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악귀봉을 내려서서 튼실하게 잘 만든 다리를 건너고 또 바위를 내디뎌 용봉산 전망대에 다다르자 전망대답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내로라하는 명산들을 조금씩 옮겨놓은 것처럼 다양한 풍광을 보여준다.
2013년 충남도청이 대전에서 홍성으로 이전함으로써 앞으로 충남의 행정 중심이 될 내포신도시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주변에 홍성온천, 덕산온천, 수덕사, 간월, 남당항 등 관광유원지까지 많은 지역이라 혼잡한 대도시가 될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겨 물개바위를 지나고 이어 용바위 삼거리에서 300m 떨어진 병풍바위를 들러본다. 모양에 따라 명찰을 붙인 바위들이 많아 자꾸 이름과 생김새를 비교하며 웃음도 흘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수암산 자락에 접어들었다.
내포 문화숲길로 명명한 능선을 따라 홍성군에서 예산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장군바위라고 적힌 명찰과 바위를 번갈아 살펴보고 붉은 풍차를 지어놓은 수암산 데크전망대에 이르니 아래로 개발단계의 토지가 넓게 펼쳐져 휑한 느낌을 준다. 그 너른 땅 위로 구름이 뗏목처럼 맑은 하늘을 가볍게 얹고 흐르는 중이다. 높고 엷은 하늘엔 어젯밤 머물던 자국처럼 희뿌연 보름달이 떠 있다.
가을을 보내며 울긋불긋 절정의 색감을 잃어가는 시간의 변화 때문인지 무언가를 잃는 느낌이 들고 누군가로부터 소외되는 느낌까지 든다. 가는 계절을 심하게 아쉬워하고 있음이다.
아직 아무것도 그려 넣지 못한
백지 그대로인데
지난밤 살 섞어 더욱 섹시한 여인
언제 그런 일 있었느냐며
차갑게 등 돌리듯
붉게 물들어 더욱 황홀한 가을이여!
벌써 떠나려 하느냐
다시 평탄한 오솔 숲길을 걸어 자그마한 정상석이 있는 수암산(해발 280m)에 닿는다. 수려한 암봉을 뜻하는 명칭이라 한다. 여기서 편안하게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개울가의 아기자기한 돌다리를 건너 덕산온천 지구에서 산행을 마친다.
때 / 늦가을
곳 / 용봉산 자연휴양림 - 최영 장군 활터 - 용봉산 - 노적봉 - 악귀봉 - 용봉산 전망대 - 수암산 - 덕산온천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