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
세세https://www.bookk.co.kr/search?keyword=%EC%9E%A5%EC%88%9C%EC%98%81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컨드 레이디second lady컨드 레이디second lady
<차 례>
지존의 죽음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대통령의 여자
유일한 용의자
신데렐라와 사탄의 시녀
오누이와 동거남
딜, 은밀한 거래
유착
동반자
아리아드네의 실
송곳 살인의 재현
익명의 제보
상사화
이중 복선
역린
고독한 도주
서러운 해후
지존의 죽음
1.
양수리에서 청평 방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검은색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북한강을 낀 한적한 도로변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앞바퀴가 틀어진 채 대각선으로 세워진 벤츠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으로 주차한 것 같지 않았다. 승용차의 지붕은 진작부터 내린 눈으로 이미 하얗게 덮였다.
부는 바람이 제법 드센데도 지붕에 쌓인 눈이 흩날리지 않는 거로 보아 차가 멈춰선 지 꽤 지난 것처럼 보인다. 승용차 전면 은빛 화살의 로고에 묻은 눈은 얼음알갱이처럼 들러붙고 말았다.
무엇엔가 놀라 잔뜩 겁먹은 얼굴의 두 여자가 서종파출소에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쯤 전이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세요. 흑흑,”
파출소 문을 열어젖힌 두 여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부터 터뜨렸다. 핏기를 잃어 낯빛이 창백한 데다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눈을 맞아 긴 머리가 축축하게 젖었고 메이크업이 지워지기는 했지만, 한눈에도 두 여자 모두 상당한 미인들임을 알 수 있었다. 파출소 문의 맞은편에서 별 할 일 없이 자리를 지키던 김호성 경장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달려나가 두 여자를 부축했다.
김 경장은 두 미인을 거의 동시에 일으켜 소파에 앉히고는 후다닥 주전자에서 따뜻한 보리차 두 잔을 따라 한 잔씩 건넸다. 누런 플라스틱 잔이 지저분해 보였지만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재미 딱지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야간근무시간이었다. 그럴 때 방문한 두 명의 미인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구급약 상자를 꺼내오면서도 김 경장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두 여자를 번갈아 살폈다. 무스탕 점퍼를 입은 생머리 여자는 입술이 찢어져 피가 엉겨 붙어있었다.
김호성 경장이 벤츠주위의 이곳저곳에 랜턴을 비춘다. 차 상태는 비교적 깨끗했다. 차체에 충격이 가해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랜턴을 들고 반대편 조수석으로 걷는 김 경장의 뒤를 흰색 파카의 여자가 바짝 붙어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다. 선글라스가 작은 얼굴을 온통 가렸다고 생각한 최태훈 순경이 답답하게 느꼈는지 힐끔힐끔 그녀를 눈여겨본다.
두툼한 옷차림이었지만 금세라도 날아갈 것처럼 가냘픈 몸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랜턴 불빛에 스친 그녀의 작은 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최 순경이 벤츠의 타이어를 툭 차고는 운전석 쪽으로 느릿하게 걸었다. 다시 차 내부로 랜턴을 들이댄 김 경장이 멈칫했다.
“아아악!”
잔뜩 겁먹은 채 김 경장의 어깨너머로 차 내부를 들여다본 흰색 파카가 까무러칠 듯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오히려 김 경장이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어떡해, 어쩌면 좋아.”
흰색 파카는 그대로 주저앉더니 실신하고 말았다. 밤색 무스탕을 입은 또 한 명의 여자도 흰 파카 못지않게 놀란 모습으로 입을 가렸다가 쓰러진 파카의 여자를 끌어안았다.
차 내에서 고개를 돌린 김 경장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경장은 조수석 문을 열고는 운전석 쪽으로 기울여진 피투성이 중년 사내의 손목을 짚었다.
그가 다시 몸을 빼내 최태훈 순경을 보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최 순경은 바로 무전기를 열고 소속파출소로 상황을 알렸다. 그때, 차체를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트렁크 안에서 나는 소리다.
김 경장은 트렁크를 쏘아보더니 허겁지겁 차 안의 버튼을 눌러 트렁크를 열리게 했다. 칼바람에 웅크려진 몸이 더욱 수축하는 느낌이다. 김 경장에게 그녀들이 나타났을 때처럼 흥미로움을 느낄 여유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트렁크에는 청색 테이프로 입이 틀어 막히고 손목이 뒤로 묶인 또 다른 사내가 눕혀져 있었다. 흙빛이 된 사내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떠는 바람에 단단하게 동여맨 테이프를 푸는 게 더뎌졌다.
“이젠 안심하셔도 됩니다.”
간신히 테이프를 풀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밤색 무스탕의 여자가 사내에게 안기며 흐느낀다. 엉거주춤 일어난 흰색 파카의 여자가 그때까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더니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낸다.
상황보고를 마친 최 순경은 얼굴이 드러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입을 벌린 채 눈을 반짝거린 최 순경은 “현소영 씨 아닙니까? 맞죠?”라며 반색을 하더니 김 경장을 향해 “김 경장님! 현소영 씨입니다, 영화배우 현소영 씨요.”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김 경장 역시 놀라기는 했지만, 최 순경처럼 수선을 피우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눈짓을 보내 행동을 자제시켰다.
두 시간가량 더 지나 새벽 1시쯤 되었을 때는 이미 주변에 많은 차가 몰려있었다. 양평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벤츠의 주변과 내부를 샅샅이 채취하는 중이었다.
필터 가까이 타들어 간 담배를 엄지와 검지로 말아 쥐고 빨간 불꽃이 보이도록 빨아대던 이규태 형사는 신경질적으로 꽁초를 뱉어냈다.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벤츠 주변을 서성이다가 차 내부로 고개를 들이밀어 피살자의 목덜미를 살핀다. 양평경찰서의 몇몇 형사들이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행동으로 보아 어디 소속인지는 몰라도 형사임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이규태 형사는 죽은 자의 목덜미와 가슴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직도 흥건한 핏물이 채 마르지 않은 거로 보아 신고자의 말 그대로 신고 직전에 살해된 것 같았다.
찔린 부위는 목덜미와 가슴뿐이 아니었다. 하복부 옆구리 부분에서도 선지 같은 핏덩이가 엉켜져 있다. 그러니까 범인들은 약 네 시간 전에 예리한 흉기로 조수석의 중년 남자를 찔러 살해하고 도주해 버렸다.
건장한 체구의 두 사내가 운전석의 남자에게 먼저 테러를 가한 뒤 트렁크에 처넣고는 조수석 남자를 해코지하려 들자 그가 반항하며 몸싸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들과 함께 탄 두 여자가 맨 먼저 출동한 서종파출소의 근무자한테 진술한 내용이다.
이규태 형사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뿌연 연기가 잽싸게 자취를 감춘다.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었지만, 눈은 더 내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 추워죽겠네. 니미럴, 비번인 날까지 불러내서 출동시키고 지랄이야.
이규태 형사가 구시렁거렸다. 이규태의 고향은 용문산자락에 있는 양평의 용문면이다. 형님 내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자주 오기는 어렵지만, 가끔 근무가 없는 날을 택해 들르고는 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어머니와 형한테 “장가 안 갈 거냐.”는 성화에 시달리다 돌아오기 일쑤다. 오늘도 그런 소리 외에는 달리 화젯거리가 없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김계현 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서울로 오는 길에 현장을 둘러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건이 될지도 몰라서 그래. 수고 좀 해줘.”
피살자의 주소가 청담동이기도 했거니와 그와 강남경찰서와의 관계상 사건을 이첩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유였다. 이규태는 간간이 호통을 쳐대며 수사를 지휘하는 양평경찰서의 형사계장 김현석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쏘나타에 올라탔다.
더 길게 현장을 살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살펴본 바로는 강도 사건일 가능성이 큰데 놈들은 지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는 범인들이 타고 온 자동차의 타이어 흔적마저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즉시 도주하지 않았다. 증거로 남을만한 것들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유유자적 사건 현장을 떴다. 용의주도한 놈들이다.
눈은 그쳤지만 길은 더욱 미끄러워 보인다. 나 죽기 전에 며느리는 볼 수 있는 거냐? 어머니의 잔소리는 갈수록 심했다. 더욱 유난스러운 어머니의 성화도 그렇거니와 피해자들까지 만나보고 오라는 김 팀장의 지시가 오늘은 마냥 성가시기만 하다. 심한 거부감이 들자 운전까지 거칠어진다.
- 사람을 죽여 놓고 토막까지 내다니. 그런 놈은 인권이고 나발이고 권총을 꺼내 쏴 죽이고 싶다니까.
변심한 애인을 죽이고 토막을 내서 유기한 사건 때문이다. 담당 사건은 아니지만, 어제 수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개요를 듣고 이규태는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형사답지 않게 묘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어디에서건 토막살인 사건만 터졌다 하면 이규태는 생리 중인 히스테리 처녀처럼 유별스럽게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 그런 놈들에 비하면 사람을 찌르고 도망친 놈들은 양반 축에 속하는 편이야.
양평경찰서는 커다란 혹을 떼어낸 기분이다.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사건을 서울의 강남경찰서에서 맡겠다니 그야말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문뿐 아니라 증거가 될 만한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범인들은 사라졌다. 어두운 밤에 얼굴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몽타주를 만들 수도 없다. 무엇보다 피살자가 J 대학의 남현태 교수라는 점이다.
남현태. 현직 교수의 신분이지만 한국 영화계의 지존이니 영화산업의 대부니 할 정도로 문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영화인으로서, 교수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한껏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인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입지전적 인물이 죽었다. 안됐지만 부담스러운 존재다.
피살의 이유나 범인의 윤곽은 폭설에 덮인 자갈처럼 요원하기 그지없다. 그 2인조 살인강도를 이른 시일 안에 잡지 못하면 언론과 방송에서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이미 9시 정규뉴스에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내 영화산업에 이바지한 공로로 최근에 문화훈장까지 받은 남 교수의 프로필이 소개되었고 작년 말에 개봉되어 초대박 히트를 친 영화, 국내 영화사상 초유의 관객동원기록을 세운 ‘세컨드 레이디second lady’의 원작자이자 총연출자임을 부각했다.
사건 발생 당시 ‘세컨드 레이디’의 여주인공을 맡아 단숨에 인기스타로 주목받은 현소영과 함께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요란스러웠다. 어찌 그뿐인가. 국내 최대의 영화사이자 ‘세컨드 레이디’를 제작한 JM 시네마의 박정민 사장이 동승해 있었고 또 다른 묘령의 여인까지 네 사람이 함께 있었다.
한적한 지방도로에서 남녀 쌍쌍이 탄 승용차를 세우고 그중 한 사람을 죽였다.
‘세컨드 레이디’의 흥행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일어난 살인사건은 세인의 관심을 끌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끄럽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은 만들어지고 말았다.
인터넷은 방송이나 신문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시끌벅적했다. 누리꾼들은 사건의 수사상황보다 네 사람의 관계에 훨씬 민감했다.
현소영이 죽은 남현태 교수의 정부情婦라는 소문은 근거도 없이 퍼져나갔다. 어느새 ‘세컨드 레이디’와 ‘남현태’ 그리고 ‘현소영’은 인기 검색어 최상위를 오르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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