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분단의 기적적 신드롬,
도솔산 펀치볼

강원도의 산 29

by 장순영

전망대 안보전시관 창밖으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 바로 코앞이다.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이라고 하는데

금세라도 총성이 울리고 포화가 날아들 것처럼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punch boul 마을은 해발 1100m 이상 고산지대의 분지이다. 한국전쟁 때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보니 노을 물든 해안면 지역이 칵테일 유리잔 속의 술 색깔과 흡사하고 마을 형상이 화채 그릇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해안면은 변성암으로 이루어진 세계 3대 침식분지로서 분지를 에워싼 변성암 산지와 산 아래 화강암 지역으로 인해 차별 침식이 이뤄진 탓에 형성되었고 한다.

마을 이름을 바꾸어 땅꾼들도 거처를 옮겼을까. 원래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조선 초, 마을에 뱀이 득실거려 고승 한 분이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 해 대신 돼지 해亥 자를 쓰라고 일러주어 지금의 해안면亥安面이 되었다. 그 후 마을 이름을 바꾸고 집마다 돼지를 기르면서 뱀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이념의 온도 차는 환절기의 일교차보다 훨씬 벌어졌다.

막상 펀치볼에 오니 오랜 기간 정전상태이긴 하지만 어렴풋이 한국전쟁 당시의 치열한 전황을 느끼게 한다. 이 지역은 현재 3군단 예하 21사단의 위수 담당 지역으로 DMZ를 끼고 대암산, 도솔산 등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함께 온 친구 진관이와 함께 숲길 안내인의 인솔에 따라 12.9km 평화의 숲길로 들어선다. 도솔산 지붕은 아직 안개를 걷어내지 못했다. 위로 을지전망대가 보인다. 저 너머가 바로 남방한계선GOP이고 군사분계선GP과 북방한계선이 그 뒤에 가로놓여있다. 숲길 트레킹을 마치고 올라갈 곳이다.

여의도의 여섯 배 정도라는 해안면 분지에는 1953년 휴전 후 난민 정착사업의 일환으로 재건촌을 조성하여 100세대씩 입촌했다. 정착 농민들의 부단한 개척으로 현재는 엄청난 규모의 고랭지 채소와 인삼, 더덕, 포도, 멜론, 사과, 오미자, 고추 등을 재배한다.


“저 많은 농작물을 누가 다 지은 거지?”


이리저리 둘러봐도 한적하고 조용하기만 한데 농사 규모를 보면 저걸 누가 다 짓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아우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봐도 마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검정 인삼밭을 포함하여 잘 다듬어진 농경지만 가득 눈에 띈다. 볼수록 깊은 산중의 외딴섬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정경마다 온화하다.


“전방이란 느낌이 전혀 안 들지?”

“그러게 말이야.”


지뢰가 연상되고 가끔 포탄 소리도 들릴 법한 위치인데 마을 분위기만 놓고 볼 때 그런 것들과는 딴판인 세상이다. 이 산 어딘가에 고즈넉한 암자가 있어 아직 봄볕 남은 석양 녘에 풍경 소리 가늘게 들려오거나 검게 그을린 초가 굴뚝에서 저녁밥 짓느라 모락모락 군불 연기라도 피어오르면 여긴, 비록 날 서서 냉랭한 최전선이지만 초록과 연홍으로 버무린 한 폭 수채화의 캔버스, 제법 잘 그려진 그림 속이다. 군사분계선이 지척이라는 인식만 지운다면 여기야말로 온화하게 채색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을지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안리 마을은 역시 펀치볼이다


마을 너머로 보이는 정중앙의 봉우리가 가칠봉加七峰인데 금강산에 속하는 봉우리로 지금은 우리 지역에 위치한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일곱 봉우리를 더해야 한다는 산술적 의미의 이름이다. 숲길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가 을지전망대로 올라왔다. 내려다보니 역시 화채 그릇처럼 보인다.


“생맥주잔이라도 들고 있으면 안주처럼 느껴지겠는데.”

“하하하!”


전망대 안보전시관 창밖으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이 바로 코앞이다.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마을과 달리 금세라도 총성이 울리고 포화가 날아들 것처럼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다시 입대한 기분이다.”

을지전망대에서 보니 북녘땅이 바로 코 앞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길게 누운 대암산 능선이 보인다. 대암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을 바라보았었는데 그때 보지 못했던 상반된 이념의 서슬 퍼런 모습을 지금 직접 보면서 체득하는 중이다.

여기는 태양마저 외면하나 보다. 구름 뒤로 숨은 건지 아니면 구름이 가린 건지 따사로이 봄볕 뿌리던 해는 자취를 감추었다. 서로 다른 이념의 온도 차는 환절기의 일교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벌어져 있다.


“여기서 내려가 제4땅굴을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내에 따라 을지전망대에서 내려와 찾은 곳이 제4땅굴. 그 격차는 땅속에서 더더욱 벌어져 언젠가 좁혀질 거란 생각을 아예 거둬간다.

입구로 들어오면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땅굴 안은 소름 돋을 정도로 춥다. 땅굴을 네 개씩이나 팠다는 것도 경이롭지만 온통 화강암 덩어리를 파낸 노력이 가상하고도 가련하다. 우리가 역으로 판 370m를 걸어 들어가 전동차를 타고 북한군이 파고 들어온 DMZ 라인까지 구경하게 된다.


“이건 관람이라기보다 우리 현실의 통증을 체험하는 거라고 밖에는…….”

“괜히 서글퍼지지?”


역시 입맛 씁쓸하게 하는 땅속이다. 얼른 나와 하늘을 올려보았는데 이념의 틀에 엮이기 싫다는 듯 구름 뒤로 숨은 태양은 아예 고개를 내밀지 않는다.


때 / 봄

곳 / 양구 해안면 펀치볼 마을 - 양구 통일관 - 평화의 숲길 - 을지전망대 - 제4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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