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에 초楚나라의 화씨和氏는 산에서 옥돌 원석을 발견하고 초 여왕厲王에게 진상했다. 여왕이 즉시 옥장玉匠을 불러 감정하게 하였다.
“이건 그저 평범한 돌멩이입니다.”
“감히 임금한테 장난을 쳐? 저 놈의 다리를 잘라라.”
화 씨는 여왕을 속인 죄로 왼쪽 다리가 잘렸다. 그 후 여왕에 이어 무왕武王이 즉위했다. 화 씨는 다시 옥돌을 무왕께 바쳤다. 무왕도 옥장에게 감정을 지시했는데 역시 평범한 돌덩이일 뿐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원래 옥은 세공하지 않으면 제대로 감정하기가 어려운 보석이다.
“네놈은 걸어 다니기가 싫은 모양이구나. 네 뜻대로 해주마.”
화 씨의 남은 오른쪽 다리가 잘렸다. 그 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내내 보관해오던 옥돌을 또다시 진상하려 했다. 그런데 양쪽 다리가 잘려 걸을 수 없었던 화 씨는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대성통곡했다. 화 씨의 눈은 눈물이 말라 피가 흐를 정도로 문드러졌다.
“두 다리가 없다고 이렇게 서글피 우는 것인가?”
기이한 소식이 궁궐까지 퍼지자 문왕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은 것이다.
“두 다리가 잘린 게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보옥을 돌덩이로 여기는 무지함이 서글픈 것이고, 충정으로 나라에 보옥을 바친 이를 사기꾼으로 모는 현실이 한심하고 분한 것입니다.”
사연을 들은 문왕은 옥장을 불러 전해받은 옥돌을 건내며서 일렀다.
“얼렁뚱땅 하지 말고 네 재주를 모두 동원해 제대로 감정을 해보거라.”
왕에게 특별 지시를 받은 옥장이 정성을 다해 옥돌을 다듬었다. 옥돌을 다듬고 닦아내니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그럼 그렇지. 다리까지 잘려가면서 보물을 바치려한 그 사람이야말로 충성스런 백성이로다.”
문왕은 화 씨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의 성씨를 따서 이 보옥을 ‘화씨지벽’이라고 명명했다.
화씨 벽 또는 화씨의 벽옥이라고도 하는 화씨지벽의 이야기는 한비자 ‘화씨和氏’에 기록되어 있다. 전설상의 보물이나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일컫기도 하며 깨우쳐 주기가 쉽지 않은 벽창호 같은 사람을 빗대어 쓰기도 한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여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이 이 화씨지벽으로 천자의 옥새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화씨 벽으로 만든 이 전국 옥새에도 신비스러운 전설이 따라붙었다.
시황제가 배를 타고 가다가 동정호 어귀에 이르렀을 때 배가 뒤집힐 정도로 풍랑이 일었다. 시황제가 황급히 옥새를 호수에 던지고 신령께 빌자 물결이 잠잠해졌다.
8년 뒤 시황제의 사신이 화음 지방을 지나가는데 어떤 이가 사신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용왕이 돌아가셨기에 이걸 다시 돌려주는 것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옥새를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천하의 귀한 보물임엔 틀림없는가 보다.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다는 뜻의 ‘완벽’이라는 단어도 화씨지벽에서 비롯되었다.
초나라 문왕의 수중에 있던 천하의 보옥 화씨 벽은 우여곡절 끝에 조나라 혜문왕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열다섯 개의 성을 주겠으니 화씨 벽을 우리에게 넘겨주시오.”
진나라 소양 왕이 화씨 벽을 탐내 자기네 성 15개를 주겠다며 조나라에 억지 제안을 했다. 소양 왕의 요구에 조나라 조정은 당황했다. 진나라에 화씨 벽을 보내자니 그대로 빼앗길 게 뻔하고 요구를 무시하자니 진나라의 보복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
“열다섯 성이 우리 조나라가 접수한 후에 화씨 벽을 넘겨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하게 다시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진나라에 파견 사신으로 결정된 인상여는 그렇게 다짐하고 길을 떠났다.
진나라에 도착한 인상여가 화씨 벽을 바치자 소양 왕은 감상만 할 뿐 15개의 성을 내주는 약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대왕께서는 약속을 이행할 마음이 없으십니다. 만약 강제로 이 화씨 벽을 빼앗으시겠다면 제 머리와 이 화씨 벽은 동시에 박살날 것입니다.”
인상여는 화씨 벽에 작은 흠이 있다면서 건네받고는 그렇게 말하며 기둥에 몸을 날리려 했다. 소양 왕이 놀라 만류하자 인상여는 몰래 화씨 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소양 왕이 보배를 탐해 사신을 죽였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 인상여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화씨 벽이 하자 없이 완전하게 조나라로 돌아오게 되면서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무런 하자 없이 완전한 모양새를 뜻하는 완벽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화씨지벽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초나라의 여왕과 무왕은 완벽하지 않은 검증으로 화 씨의 비극에 더해 천하의 보옥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리더로서의 지혜로운 안목을 지니고 소통의 가치를 중시한 문왕은 화 씨의 결말을 해피하게 했음은 물론 역사상 화씨지벽을 세상에 알리게끔 한 장본인이 되었다.
여당은 여당만의, 야당은 야당만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진정한 소통을 소홀히 하는 한 화씨지벽은 때를 벗기지 못한 채 돌멩이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조직사회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말을 잘 따르면 원활한 소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통이 되는 아집이 만연하는 한 세공된 보석은 창조되지 않을 것이다.
힘의 우위에 선 갑이 오로지 갑질로 일관한다면 을은 저항하거나 갑과 갈라서는 방법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상위자나 리더의 가치 판단 능력과 의사결정력은 자기 자신은 물론 함께 하는 이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화씨지벽을 되새기면서 아랫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올바른 방법론을 제시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앞선 리더가 갖춰야 할 요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