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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영 Apr 24. 2022

진정 빼어난 이는 그늘에서도 그림자가 생긴다

춘추시대에서 거듭 깨닫다 11_ 낭중지추囊中之錐 


전국시대 말엽,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침략했다. 공격이 워낙 거세 조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다급해진 조나라는 이웃 초楚나라에 구원병을 청하기 위해  합종의 맹약을 맺고자 했다.

     

 “재상께서 사신으로 다녀와 주시오.”  

   

조왕은 재상 평원군을 보내기로 했다. 평원군은 평소 어질기로 이름난 사람이라 수많은 식객이 그의 집에 문전 쇄도하는 중이었다.

평원군은 그의 식객 중 문무를 갖춘 스무 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열아홉 명까지는 얼굴상이 그럴듯한 인물들을 선임했는데 나머지 한 사람을 채우지 못했다. 그럴 때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나서 함께 가기를 청했다. 

     

“한 사람이 모자란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평원군은 자기 집의 식객이었지만 안면이 없었다. 몰골이 꾀죄죄하여 첫인상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대는 내 집에 온 지 몇 해나 되었소?”
“3년입니다.”

“3년이나 되었는데 나는 그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소. 무릇 현명한 선비는 송곳이 주머니에 있는 듯해서 세상이 알게 되어 그 끝이 밖으로 나타나기 마련이오. 그대는 내 집에서 꽤나 오래 머물렀는데 그대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었소. 그대가 특별한 재주가 없다는 뜻 아니겠소? 그러니 그냥 여기 그냥 남아 계시오.” 

    

평원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등을 돌리려 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를 주머니에 넣어 주십사 청을 드리는 겁니다. 저를 더 일찍 주머니에 넣어 주셨더라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서 그 끝뿐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드러났을 것입니다.”

“정 원한다면 같이 가기로 합시다.” 

    

평원군은 스무 명의 수행원에 모수를 포함해 함께 초나라로 향했다. 다른 열아홉 명이 억지 궤변으로 막차를 탄 모수를 비웃었다. 그런데 초나라에 도착하는 동안 그들은 모수의 언변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초 왕을 만나 동맹에 대해 협상에 들어갔으나 진나라와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탐탁지 않았는지 초 왕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회담이 한낮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었다.


“협상이 결렬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 주인님도 난감해지거니와 조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따라와서 도움이 되지 못하니 참으로 답답하구려.”

“내가 나서리다.” 

    

스무 명의 수행원이 전전긍긍하는 중에 모수가 나서더니 큰 칼을 뽑아 초 왕과 평원군이 회담하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합종의 이해관계는 두 마디면 결정되는 건데 해 뜰 때부터 시작한 회담이 중천에 걸리도록 결정이 안 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초왕이 평원군에게 물었다. 

     

“이 자는 누구요?”

“제가 데리고 온 수행원입니다.”  

    

초왕이 버럭 화를 내며 꾸짖었다. 

     

“나는 네 주인과 협상하는 중이다. 무엄하게 종놈이 나서서 칼을 빼 들다니.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모수가 칼을 바로 쥐며 초왕의 눈을 쏘아보았다. 

     

“전하께서 저를 꾸짖을 수 있는 건 여기가 초나라 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열 발짝 안에서 전하는 초나라 사람들을 의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하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수는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는 말을 이어갔다. 

       

“지난날, 초나라는 진나라와 여러 번 전쟁을 치렀지만, 그때마다 졌기 때문에 진나라가 두려워 우리와 동맹을 꺼리고 있습니다. 탕 임금은 겨우 70리의 땅으로 천하를 거느렸고, 문왕은 백 리의 땅으로 제후들을 신하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 리에 이르는 국토를 보유하고 군사가 백만으로 패자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조나라의 힘까지 보태면 얼마든지 진나라에 복수하고 천하의 패권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맹은 우리보다 초나라에 더 큰 득이 되는 일입니다.”

     

모수의 명료한 설득에 초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맹을 승인했다. 초나라에서 구원병을 보냄으로써 조나라는 진나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송곳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끝이 뾰족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뛰어난 사람은 많은 이들 무리에 섞여 있어도 두각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낭중지추로 빗댈 탁월한 인재는 평소 자기 실력을 꾸준히 갈고닦았을 때 비로소 기회를 포착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평원군은 동맹을 성사하고 조나라에 귀환한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선비들의 상을 보지 않겠다. 내가 수천 명의 선비를 접하고 그들 상을 보면서 천하에 이름을 드러낸 선비들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모 선생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의 상으로 선비의 깊이를 가늠하지 않을 것이다.”      

사기史記 ‘평원군 우경열전平原君 虞卿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러 무리에서 뛰어난 존재를 일컫는 낭중지추는 추처낭중錐處囊中과도 같은 의미이며,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것을 가리켜 탈영이출脫穎而出이라고 한다.

 

내면에 깊은 지식과 지혜로움을 갖춘 사람은 의도적으로 그 재능을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뿜어 나오는 법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을 밝히고 그가 소속된 조직에 긍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뾰족한 송곳이 작고 좁은 주머니에서 튈 수밖에 없듯 잠재력이 빵빵한 인재는 침침한 주머니에 머물러있게 놓아두지도 않는다. 세상이 알아주고 또 불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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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ookk.co.kr/book/view/138320



출처: https://hanlimwon.tistory.com/entry/춘추시대에서-거듭-깨닫다-10-문경지교刎頸之交 [등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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