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때 온화한 성품의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청렴결백하여 그를 아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태구현의 현감으로 있으면서도 화평한 마음으로 고을 주민들을 대했으며, 분쟁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확실히 하여 원성을 사는 일이 없었다.
심한 흉년이 들어 백성들 생활이 어려워지자 진식은 관의 창고를 열어 구호 양식으로 풀었지만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도둑이 그의 방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진식은 모른 체 책을 읽다가 가족들을 불렀다.
“사람은 본디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태어났느냐 아니면 악한 마음씨를 가지고 태어나겠느냐?”
장남인 진기가 대답했다.
“맹자께서는 본디 사람은 착하지만 잘못된 환경에서 나빠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세상에 근본이 나쁜 사람은 없느니라.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 작은 잘못을 자꾸 저지르다 보면 점점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게 사람이니라. 이를테면 저 위 대들보에 있는 군자처럼 말이다.”
도둑은 이 말을 듣고 스스로 대들보에서 뛰어내려 무릎을 꿇고 죄를 빌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한순간 잘못된 생각을 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보아하니 나쁜 사람 같진 않구먼. 흉년이 들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을 테지.”
진식은 도둑에게 비단 두 필을 꺼내 주며 용기를 주었다.
“이걸 밑천 삼아 장사라도 해 보게.”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소설 삼국지의 조조전으로 넘어가 보자.
자객에게 기습을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한 진기를 그의 집 하인이 뛰어난 무술로 지켜낸다. 진기가 물었다.
“왜 그대처럼 훌륭한 무사가 우리 집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가?”
“제가 선친께 은혜를 입은 양상군자입니다.”
진식이 벌을 내리지 않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내자 양상군자였던 그는 10년 동안 무예에 전념하고는 그때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진 씨 가문에 종복으로 들어왔다. 그가 훗날 위나라의 장수 등전이다.
조조가 하비를 함락한 후 설영이 조조를 습격하자 등전이 설영을 막아냈다. 조조가 휘하에 두기를 원했으나 등전은 진 씨 가문을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조조의 청을 거절했다. 진기가 죽은 후에야 조조를 섬기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양상군자梁上君子의 글자 풀이는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점잖은 표현 그대로 예전의 도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요즘엔 도둑이라는 말보다 강도, 살인강도라는 말이 익숙해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생계형 도둑질은 사라지다시피 하고 대개가 생명경시 풍조의 악질범죄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영유아 살인, 묻지마 범죄, 강도 살인을 수시로 접하는 현실세계와 비교할 때 당시의 양상군자는 풍류이고 해학으로 치장되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