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월 22일. 동지가 어제였습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언제고 한결같이 춥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도 조금씩 조금씩 봄으로 가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동안 낮의 길이가 계속 짧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 춥겠지만 머지않아 곧 따뜻해집니다. 오늘부터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니까요.
20여 일 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하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국회에서 저지당하고 10일 뒤인 12월 14일 탄핵당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루하루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여당인 국힘당은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뭐가 잘못됐냐고 큰소리를 칩니다. 윤석열 본인은 내란이 아니었다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뭔가 또 2차 내란을 시도하는지 공포스럽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오듯이, 이미 쿠데타가 실패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세는 정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강해지고 내란 가담자들은 엄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입니다. 12월 3일 내려진 계엄령은 '정말인가, 이게 꿈인가' 했지만 연습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그날 밤, 느꼈던 공포를 회상해 봅니다.
밤 11시경. 저는 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 충전기를 꽂으면서 문득 뉴스를 검색해 봤습니다. 평소에는 잘하지 않는 행동인데 이날은 뭔가 이상했습니다. 휴대폰에 떠오른 단어는 놀랍게도 '계엄령'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눈을 깜박이며 다시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했다는 것입니다. 급히 컴퓨터를 켰습니다. 포고령도 발령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에 몇 가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다음은 그것들입니다.
1) 나는?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내가 포고령에 위반될 일을 했을까? 내가 쓴 글들은 문제없을까? 윤석열을 비판하거나 그의 정책을 비꼬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저는 사실 은퇴한 사람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0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검열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게엄 사실을 전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조심해야 된다. 뭐든지."
2) 이번에는 어느 지역을 봉쇄할까? 제가 알고 있는 계엄령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은, 이유야 어떻든 그것은 통치자가 군대를 동원해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이 그렇고 1980년 5월 광주도 그랬습니다. 전자는 이승만 때, 후자는 전두환 때입니다. 박정희도 수시로 계엄령을 반포해서 집권연장을 꾀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학살'과 같은 말입니다.
더구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가 한 발언과 행동을 보면, 이번 계엄령은 분명히 또 어떤 한 지역을 희생시켜 즉, 그 지역을 봉쇄하고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군사 작전을 감행한 뒤, 언론 조작을 통해서 독재정치를 더욱더 마음껏 펼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 때 손바닥에 왕(王) 자를 써가지고 다닌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라를 조선시대로 돌릴 셈인가? 그럼 윤 씨들이 대대로 국왕이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3) 이번에도 또 광주일까? (광주항쟁이 일어났던 1980년 광주 인구는 약 86만 명, 2022년 현재 약 146만 명입니다.) 설마 광주를 또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다른 곳일까? 그럼 대전(인구 147만 명)일까? 전주(인구 65만 명)일까? 부산(인구 334만 명)일까? 울산(인구 111만 명)일까? 아니면 강릉(인구 21만 명)일까? 혹시 포항(인구 50만 명) 아니면 대구(인구 236만 명)일까? 설마 수도권(총 2600만 명)은 아니겠지. 인구 329만 명이 사는 인천? 110만 명이 사는 수원? 용인(100만)? 고양시(100만)? (그런데 이번 작전은 놀랍게도 수도권 중 한가운데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고 너무도 대담합니다. 그만큼 커다란 폭력과 많은 희생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4)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까?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일으킨 군사반란 때는 광주에서 시민들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군인들은 더 강하게 진압하고 국민들은 더 강하게 저항할 테니 희생은 더 크겠지,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이번 작전 이름이 충정 8000이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이 8천이 쿠데타 세력이 예상한 사망자 숫자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회를 둘러싸고 진압하려고 했다면 서울 인구 대비 이 정도 숫자는 아주 적은 것입니다. 광주로 쳐들어간 반란군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이었던 특전사령관 정호용은 '광주 시민 80%는 죽여도 된다'는 말을 했다고, 당시 시민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싹 쓸어버려야한다."라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본인은 나중에 이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으나(주 1) 많은 시민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주 2) "이번에는 국회의원 80%는 죽여도 된다." 이렇게 생각했을까? 80%라는 글씨 모양을 보면 8000과 비슷합니다. 계엄 당일, 반란군은 전국의 국립병원 7곳을 통제하고 준비했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5) 이번에 주모자들은 누구일까? 윤석열 뒤에 숨어서 쿠데타를 획책한 반란군 수뇌부 말입니다. 12.12군사반란과 1980년 광주항쟁 때는 여러 명의 핵심적인 주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했던 대통령 최규하 뒤에 숨어서 반란을 획책했던 군인들. 그 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주 3)
<반란 수괴>
전두환(소장, 12.12반란, 보안사령관, 육사 11기, 경남 합천)
<반란 주동자>
노태우(소장, 9 사단장, 12.12반란 후 수경사령관으로 승진, 육사 11기, 대구)
박준병(소장, 12.12반란, 육사 12기, 20사단을 이끌고 광주 유혈 진압, 충북 옥천)
정호용(소장, 50 사단장, 12.12반란 후 특전사령관. 육사 11기, 대구)
이희성(대장,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육사 8기, 경남 고성)
황영시(중장, 12.12반란, 육군참모차장, 경북 영주)
<반란 주요 종사자>
유학성(중장, 국방부 군수차관보로 12.12반란 가담, 80년 5월에는 제3야전군사령관, 경북 예천)
차규헌(중장, 12.12반란, 5.16 군사반란 참여, 수도군단장, 육사 8기, 경기 평택)
박희도(준장, 12.12반란, 제1공수여단장, 육사 12기, 경남 창녕)
권정달(대령, 12.12반란, 육사 15기, 경북 안동)
장세동(대령, 수도경비사령부 30 경비단장. 12.12반란. 육사 16기, 전남 고흥)
허삼수(대령, 12.12반란, 육사 17기, 부산)
허화평(대령, 12.12반란, 육사 17기, 경북 포항)
이학봉(중령, 12.12반란, 육사 18기, 부산)
<5.18 당시 진압부대로 출동한 공수부대>
3 공수 여단장 최세창(준장, 12.12반란, 3 공수여단장, 육사 13기, 대구)
7 공수 여단장 신우식(준장, 육사 14기, 출신지 미상)
11 공수 여단장 최웅(준장, 11 공수여단장, 육사 12기, 서울)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반란죄를 짓고 우리 공화국의 역적이 되었으니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들어가야 마땅한 사람들인데, 오히려 그들은 호의호식하고 장수를 누리고 재산을 모아 자기 자손들에게 많은 불량 재산을 남겼습니다. 이들의 해악은 반란도 반란이지만 나중에 국가의 고위공직을 꿰차고 우리 사회 내부를 곪고 병들고 썩게 만들었습니다. 윤석열은 이번 쿠데타로 이러한 반란 주동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좀비처럼. 얼굴과 이름을 새로 바꾸고 나타난 이들 사악한 좀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6) 이번에도 또 육사일까?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주동했을까?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교는 쿠데타를 세 번째 일으키는 것입니다. 박정희 때 1번, 전두환 때 1번, 이번에 또 한 번입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육군 쿠데타학교로 이름을 바꾸든지 폐교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망스럽습니다. 이 학교 출신들은 이번에 실패하더라도 언젠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것입니다.
7) 미국은 또 윤석열 쿠데타를 지지할까? 박정희 때도, 전두환 때도 미국은 독재자 편에 섰습니다. 광주항쟁 때는 시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계엄군으로 20사단, 31사단 병력이 출동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정상적인 군인 복장을 하고 헬맷에 하얀 띠를 두른 이들 군인들은 광주로 들어가면서(특히 사단장 박준병이 거느린 20사단) 길거리의 민간인들을 총으로 겨눠서 사살했습니다. 5월 27일 도청 집압 때(상무충정작전)는 또 다수의 시민들을 살해했습니다.
광주 진압 부대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곤봉을 치켜든 공수부대와 헬맷에 흰띠를 두른 계엄군입니다. 80년 5월 18일 광주에 들어가 학생들을 잔혹하게 진압하여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병사들은 공수부대원들입니다. 7공수, 3 공수, 11 공수. 이들은 진압용 특수 방망이를 들었고 총에 칼을 꼽고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습니다. 특정사령관 정호용이 현장에서 지휘했습니다. 이때 공수부대는 미국의 허락 없이 투입되었고 미국도 몰랐다고 합니다. 분노한 시민들에 쫓겨서 도청으로 쫓겨 들어간 공수부대원들은 5월 21일, 시민들을 향해서 발포를 했습니다. 그래서 광주 시민들도 무장을 하고 이들을 광주에서 몰아냈습니다.
당시, 미국이 추가 병력 투입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전두환 일당은 어쩔 수 없이 광주 시민들과 협상을 하고 평화롭게 사태가 마무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2만 명 가까운 병사와 무기 투입을 허가했습니다.(주 4) 그래서 진압군으로 들어간 부대가 20사단, 31사단, 그리고 공수부대(3, 7, 11 공수)였습니다. 전차 18대, APC 9대, 지휘용 500MD(헬기) 1대, 무장 500MD 헬기 4대, 수송용 헬기인 UH-1H와 코브라 무장헬기 AH-IJ 2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번에 계엄을 때린 윤석열은 이런 과정도 모두 계산했을 것입니다. 초기에 투입된 계엄군들은 미국 허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군인들이 되겠지만, 만약에 시민들과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면 결국 전방의 군인들을 대규모로 (적어도 5만 명 이상) 동원해야 되는데 이때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이번에도 어쩔수 없이 눈감아 주겠지요. 윤석열은 그것까지 계산했겠지요. 미국은 자기 앞에서 굽실거리는 한국 대통령, 약점 있는 한국 지도자를 선호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거기다 미국은 대통령 교체기입니다. "절호의 찬스다!" 이번 쿠데타 주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정말 사태가 악화되어 시민군이 등장하는 상황까지 된다면..... 미국도 섣불리 한쪽 편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 정치가들은, 반란 수괴 전두환의 광주 진압 요청을 허가해 준 뒤에, 1980년 이후 20여 년간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크게 일어난 것을 봤습니다.(주 5) 이번에 미국이 또 윤석열을 지원해 전방에서 군대를 빼다가 한국 국민들과 맞서게 한다면 미국은 동북아시아뿐 아니라 아시아와 태평양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윤석열이 일으킨 이번 쿠데타는 자칫하면 우리나라 국민 5천만 우리 민족 8천만을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날 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국회의 계엄해제 투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가 일상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밤 국회앞으로 달려나가 계엄군과 맞선 시민들과 국회의원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들의 수고가 없었으면 이런 글도 못쓰는 우리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주 1) 정호용, <5.18진 상조사위에 제출한 진정서>.
주 2) MBC 뉴스, '거짓말로 드러난 "유혈진압과 무관"‥정호용 돌연 미국행'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162419 , 2021.11.26. 김덕령, 광주 학살 키운 건 '전라도 싹쓸이' 구상?, <프레시안>, 2016.10.12.
주 3) 참고자료: 위키백과, 나무위키,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https://cnu518.jnu.ac.kr/), 아카이브 온라인자료실
주 4) 김상웅, <광주진압에 2만 병력 투입, 시민 살상 - 오마이뉴스>.
주 5) 장예지, <친미서 반미, 다시 호감… 국민들의 시대별 미국 인식 변천사>, 202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