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투스부터 로얄 익스클루시브 컬렉션까지
솔직히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는 어떤 향이 ‘좋은 향’인지조차 잘 몰랐다. 많이 들어본 브랜드 매장에 찾아가서 ‘뭐가 제일 잘 나가요?’를 물어볼 용기도 없었으니까.
‘30대 남자 향수 추천’
검색해도 별다른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몰라도 이건 알지 싶은 향수들의 프로모션 페이지나, 저렴한 카피 향수 소개로 끝나는 광고성 게시물들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자주 눈에 밟히는 이름이 있었다. 크리드(CREED). 날카롭고 럭셔리한 브랜드 심볼에 세련된 디자인. ‘있어 보이는’ 향수가 궁금해 찾아봤더니 정말로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후기가 이미 쌓여있었다. 향수 좀 안다는 남자들은 죄다 크리드를 뿌린다고 했다. 딱 거기서부터다.
"도대체 어떤 냄새길래?"
검색창에 ‘크리드 어벤투스’라고 입력했다가, 30만 원대 가격을 보고 반사적으로 브라우저를 닫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급기야 '나중에 내가 이걸 뿌려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까지. 비싼 향수는 많지만 구매하기도 전에 돈값 하는 향수 같다는 막연한 확신을 가졌다. 크리드는 단지 좋은 향으로 평가받는 브랜드는 아니다. 향기를 넘어 일종의 상징이 된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어벤투스’부터 떠올려보자.
“이 향은 성공한 남자의 냄새야.”
너무 많이 들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능력이 곧 섹시미가 되는 남자에겐 이 향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진짜 그렇게 느껴진다는 거다. 파인애플처럼 상큼한 첫인상, 이어지는 짙은 머스크와 드라이한 나뭇결. 향 자체가 주는 느낌도 있지만, 그 향을 착용한 사람들이 쌓아온 이미지가 더 크다.
이를테면 청년 CEO, 브랜드 창업자, 갓 승진한 팀장, 흐트러짐 없는 수트 차림의 남자. 그런 사람들이 어벤투스를 뿌렸고, 그걸 본 후배 남성들이 ‘저 향 뭐지?’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어벤투스는 하나의 ‘페르소나’가 된 거다. 놀랍게도 후각을 통해 리더십, 자신감, 결정력 같은 게 전해진다. 왠지 먼지 한 톨 없는 통유리 회의실에 계약서를 팔에 끼고 들어오는 단정한 남자의 향이랄까. 어벤투스를 뿌리면, 내가 아니라 내 주변이 나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사실 향수를 고를 때 냄새만 보고 고르지는 않는 법. 요즘 말로 ‘추구미’에 다가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내가 집어 드는 향에 스며든다.
차분하고 자신감 있는 이미지를 원하는 사람은 ‘실버 마운틴 워터’를 고른다. 어벤투스보다 더 젊고, 더 도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메탈릭한 느낌의 차가운 감촉이 아니라 알프스 설산의 공기처럼 맑고 시원하다.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절대 허술하지 않은 인상. 다가서기 어려운 강한 인상보다는, 부담 없는 세련됨을 지닌 사람을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 향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날엔 너무 강하지 않은, 하지만 오랫동안 산뜻하게 남는 향을 찾게 된다. ‘오리지널 베티버’는 그런 날에 꺼내 들기 딱 좋다. 맑은 초록의 세련된 보틀에 어울리게 이끼와 시트러스, 샌달우드가 적당한 밸런스로 섞여 있다. 오히려 여성들이 많이 찾는 산뜻한 향으로 누구에게나 호감형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부드럽고 청량한 첫인상 만들기에 제격이다. 쌉싸름한 흙냄새라고만 생각했던 베티버 향을 새롭게 재해석한 호감의 정석이랄까.
결국 우리는 크리드 향수를 고르며 향기를 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되는 ‘환상’을 사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향수를 만났을 때 보틀 디자인에 한 번 놀라고, 가격에 한 번 더 놀라고, 부정할 수 없는 럭셔리한 향에 또 한 번 놀랐다. 80만 원짜리 향수는 도대체 어떤 걸까 궁금했었는데, 이걸 마구 뿌려볼 수 있게 해둔 퍼퓸그라피 매장의 너그러움에 마지막까지 놀라는 마무리다.
로얄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의 ‘퓨어 화이트 코롱’. 이 향수는 코롱 같은 산뜻한 느낌을 내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오 드 퍼퓸이다. 가볍고 맑은 이 향이 진하게, 그리고 오래 간다는 뜻이다. 적당히 상큼한 자몽에 우아한 자스민, 촉촉하고 시원한 수박과 부드러운 화이트 머스크가 겹겹이 쌓여 다채로운 향을 만드는데,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고도 고급스러운 향이 차례차례로 펼쳐지는 거다.
‘오리지널 코롱’이라고도 불리는 이 향수는 나에게 럭셔리와 청량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새로 알게해주었다. 로열패밀리라면 왠지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진한 향수 냄새가 풍길 것 같다는 낡은 이미지를 완벽하게 비껴간다. 결국 나는 이 향수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환상’을 내 장바구니에 담았다.
물론 향수 하나로 삶이 뒤집히진 않는다. 무슨 부적도 아니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어벤투스’를 뿌렸다고 해서 없던 말주변이 생겨나거나, 고전하던 어려운 계약이 성사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외출 직전 크리드를 뿌리는 순간, 그때만큼은 ‘오늘 하루, 나 좀 괜찮을지도?’ 하는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하루를 다르게 만드는 열쇠 아닌가. 적어도 자기 안의 작은 확신 하나쯤은 크리드가 만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크리드는 여전히, 성공한 남자의 향수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언제나 성공의 원동력은 자신감이 아니었던가. 단순한 일상 속 아이템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남다른 존재감을 만들어주는 용기다. 한 병으로 인생이 바뀌진 않지만, 한 번만으로도 인상은 바뀔 수 있다.
Editor. Sonior
향수 브랜드 에세이를 기록합니다. 글에 등장하는 향수는 퍼퓸그라피 자사몰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