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by 난화

아빠는 감정을 잘 말로 옮기지 못한다.

기분이 좋은 날도, 나쁜 날도, 그저 말없이 티비를 켠다.

뉴스 소리가 거실에 흐르면,

그게 아빠의 하루 상태표다.


가끔, 아빠가 부엌 문틈에서 내 쪽을 본다.

시선이 마주치지 않아도 안다.

그건 아빠 나름의 신호다.


그리고 꼭 그때,

아빠가 꺼내는 말은 늘 같다.


“밥은?”


그 말 속에는 물음표 하나뿐이지만,

실은 쉼표도, 느낌표도,

줄글로 따지면 문단이 하나쯤 들어 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는지,

회사 사람들은 괜찮았는지,

너는 너답게 살고 있는지.


그 모든 걸 담아,

아빠는 단 두 글자로 묻는다.

“밥은?”


나는 늘 대답이 짧다.

“응, 먹었어.”

때로는 거짓말처럼, 때로는 진짜처럼.


사실 그날은 밥을 건너뛴 날이었다.

바쁜 업무 탓에

점심은 옆자리 동료와 대충

단팥빵 하나를 나눠 먹었고,

저녁은 피곤해서 요구르트 하나로 넘겼다.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응, 먹었어.”

그건 아빠를 안심시키는 주문 같은 말이기도 했다.


엄마는 조금 다르다.

밥 얘기로 시작하긴 하지만, 말의 결이 다르다.


“내일 도라지 무쳐줄까?”

“삼치조림 맛 어땠어?”

“이번엔 고추장을 좀 달게 해볼까?”


질문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전부 대화의 초대장이다.

네가 집 밥을 기억해줬으면,

이 집을 늘 기분 좋은 장소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


밥에 대해 묻는 부모의 말은,

밥을 핑계로 한 수많은 감정들의 다른 표현이다.

걱정, 사랑, 미안함, 그리고 조금은 어색한 그리움.


우리는 이상하게 “오늘 하루 어땠어?”보다

”밥은?“이 더 편한 가족이다.

“몸은 어때?” 대신 “국 따뜻할 때 먹어.”

“마음은 괜찮아?” 대신 “찬물 말고 따뜻한 물 마셔.”


그런 식으로,

우리는 매일 밥에 기대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어쩌면,

나에게만큼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밥은?“이 더 짙게 남을지도 모른다.


밥 한 공기만큼의 안부,

국물 한 그릇 속에 진하게 녹은 애정.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말보단 밥으로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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