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쑥 캐는 엄마의 봄 2

잔인한 마지막 선택. 준비되지 않은 '마음의 준비'

by 쿠크다스 이실장

​엄마와의 통화를 그렇게 끝낸 후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동기들과 빵과 커피를 맛있게 먹었고,

이어 동기의 고향인 해남 대흥사 인근 펜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은 동기 부모님이 은퇴 후 운영하시는 그곳 펜션 마당에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장어와 삼겹살, 잘 익은 김치를 우리들은 맛깔나게 구워 먹었다.


그 늦은 시간에 합류한 동기 한 명까지 펜션에 도착해 우리는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별과 꽃들을 눈에 담으며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쏟아지는 수다 속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넘어 슬슬 정리하고 방에 들어가 씻으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찰나, 갑자기 새벽의 고요를 깨고 내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신랑이 아닌 광주에 사는 남동생이었는데, 이 새벽에 걸려온 동생의 전화라니...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누나, 아빠가 새벽에 화장실 가시다 쓰러지셨대. 머리를 다치신 건지 아직 깨어나질 못하고 계신다는데 어쩌지."


​경황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고모가 남동생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동생은 회식이 끝나고 술을 마셔 잠든 상태에서 일어난 지라 지금 운전을 할 수 없다며, 내가 갈 수 있는 상황인지 다급히 물었다.


다행히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마침 사고 지점과 가까운 해남에 있다며 곧장 진도로 출발하겠다고 답했다.


​대흥사 인근 시골 마을의 새벽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배웅하는 동기들을 뒤로하고 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손발이 떨리고 금방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듯한 어둠이 무서웠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신랑에게 전화해 남동생을 태우고 빨리 와달라 부탁을 한 뒤, 한 시간 남짓 달려 겨우 진도읍에 위치한 한국병원에 도착했다.


​숨 가쁘게 응급실 접수대에 아버지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시골 지역이라 머리 쪽 진료는 불가능하니 당장 목포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뇌 질환은 시간이 생명인데, 이렇게 지체되는 1분 1초마다 희망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구급차를 타고 오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체 말고 목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우셨는지 힘이 하나도 없이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장녀로서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라는 책임감이 들었다.


광주에서 내려오고 있는 남동생에게도 전화를 해서 목포 한국병원으로 바로 가라고 말했고 ​나 역시 서둘러 목포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남동생과 신랑이 아빠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남동생은 아빠 손을 계속 잡고 얘기 중이었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의식 없이 누워 계신 아빠의 모습은 우리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 숱한 위기를 무섭고도 강인하게. 철인 같은 능력으로 극복해 가시는 뿌리깊은 나무 같은 아빠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난생처음 겪는 이 상황에 우리 가족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밖에서 엄마와 기다리다 응급실에서 울면서 전화한 남동생 콜을 받고 의사로부터 뇌 CT 결과를 같이 전해 들었다.

이미 뇌에 피가 너무 많이 고여 뇌손상이 심해져 있는 상태이고 마음의 준비까지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의사는 덧붙였다.

수술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아빠의 연세와 고혈압, 협심증 같은 지병을 고려할 때 수술 자체를 견뎌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그러니 수술 여부를 지금 당장 결정해 달라고 우리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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