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계신 쑥밭에서 돋아나는 그리움
퇴근길.
멀리 밭동무 하나 없이 홀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난 반갑게 엄마를 부르며 다가가 사무실에서 간식으로 나온 아껴둔 빵과 음료를 챙겨 와 건넨다.
엄마는 마침 배가 고팠다며 쑥을 캐느라 흙먼지가 잔뜩 묻은 손으로 환하게 웃으시며 받으시고는, 2년 전 갑작스레 곁을 떠나 저 너머에 묻혀 계신 아버지의 산소를 보며 말씀하신다.
“ 큰딸이 먹으라고 준 빵, 나 혼자 먹으요~”
엄마의 그 말이 왜 이리도 애잔한지.
겉으로는 난 무심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엄마가 낮에 홀로 쑥을 캐며 삼켰을 적막과 고독.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서둘러 장갑을 챙겨 온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아버지의 부재...
내 탓인 것만 같은 이 애통함과 미안함은 2024년 10월, 그 찬란했던 가을날의 기억과 깊게 닿아 있다.
그날은 나의 승진을 기원해 주기 위해 경기도에서 교행 동기들이 직접 기차를 타고 광주까지 내려와 준 날이었다. 나를 보러 먼 길을 와준 고마운 인연들을 태우고 난 목포로 식도락 여행을 떠났다.
낙지 요리로 동기들의 감탄을 받아 기뻤고,
바다뷰가 근사한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을 땐 눈앞에 달콤한 빵들을 보며, 빵순이인 난.
눈빛이 반짝반짝 얼굴엔 미소가 함박 지어져 있었다.
맑고 청명한 날씨까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때 갑자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평일 연가를 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내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거라 믿었을 엄마였는데 말이다.
“아빠가 어제 소고기를 드신 뒤로 설사가 심하네. 물도 못 드시고 지금 수액을 맞고 있어.”
섬에 계신 부모님인지라 병원이라고 해봤자 중심지에 있는 정형외과 1개뿐이었다.
얼마나 아프시면 섬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계신 건지, 그래도 난 보통 우리 아이들이 장염에 걸렸을 때 아동병원 가서 수액 하나 맞고 와서 음식 조절하면 괜찮아졌던 기억이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동기들을 내 차로 태우고 온 지라 아빠를 바로 모시러 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날 새벽, 아빠는 쓰러지신 후, 결국 영원히 깨어나질 못하셨다...